21.11.26(금)
아내가 가끔 아침에, 아직 차에서 쉬고 있을 때 영상통화를 걸곤 한다. 그때마다 서윤이가 마치 퇴근할 때처럼 나를 반겨줘서 그거 보는 낙이 아주 크다. 오늘 아침에도 ‘아빠아아아악’을 연호하며 남극기지에 파견 나간 아빠와 통화하는 것처럼 나를 반가워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오전에 처치홈스쿨 모임이 있어서 통화를 끊고 나면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 오전에 모임이 있으면 폭풍처럼 바쁘긴 해도 끝나고 나면 후련하게 오후를 보내는 게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 ‘폭풍’이 보통 폭풍이 아니라서 정신이 혼미할 때가 많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지만.
또 처치홈스쿨 모임은 어쨌든 아이들의 학습에 대부분의 시간을 쓴다. 그러다 보니 공식(?) 모임 시간이 끝나고 나면 아이들은 언제나 ‘조금 더 놀 시간’을 갈망하고 아이들의 요구를 수용해서 더 시간을 보내다 보면 한없이 늦어질 때도 많고. 그나마 오전 모임이면 늦어지더라도 오후니까 좀 괜찮기도 하고.
이러나저러나 아내가 정신없이 바쁜 건 마찬가지다.
오늘따라 퇴근하는 길이 유난히 더 막혔다. 평소에 비해 20-30분 늦게, 1시간이나 넘게 걸려서 집에 도착했다. 평소보다 늦은 시간이었는데도 아내는 여전히 저녁 준비하느라 바빠 보였다.
“오늘도 늦게 왔어?”
“아니. 그렇게 늦게 온 건 아닌데 이것저것 하다 보니까”
‘이것저것’에 아마 수많은 시간과 일이 담겨 있을 거다. 전업주부의 삶, 아이를 기르는 엄마의 삶, 아이 셋과 하루 종일 함께 보내는 엄마의 삶의 ‘이것저것’은 생각보다 크고 무겁다.
아내는 꼬막을 사서 삶았다. 식탁에 거의 오르지 않는 음식이었다. 요즘 꼬막이 제철이라 사 봤다고 했다. 아이들이 먹을 건 그냥 삶아서 줬고, 아내와 내가 먹을 건 따로 양념장을 만들어서 일일이 꼬막 위에 올렸다. 나도 나지만 소윤이와 시윤이가 엄마의 이 정성과 노력을 알까 싶었다. 제철 꼬막을 가족에게 먹이기 위해 애쓰는 엄마의 마음을.
소윤이는 갑자기 손등이 가렵다고 했다. 아내는 꼬막에서 나온 물이 묻어서 그런 거라고 했다. 자기도 그렇다면서. 난 처음 알았다. 꼬막 물이 피부에 닿으면 가려울 수 있다는 걸. 너무 가려우면 먹지 말라고 했는데 그걸 무릅쓰고도 먹을 만큼 맛있긴 했나 보다.
오늘은 오랜만에 금요철야예배에 가야 했다(지난 3주 동안은 다른 행사로 쉬었다). 오랜만에 가려니 발이 무겁긴 했다. 떠나는 내 발보다 아내의 마음이 더 무거웠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번개같이 밥을 먹고 일어나서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며 나왔다.
“소윤아, 시윤아, 서윤아. 아빠 이제 갈게. 안녕. 우리 내일 주말이니까 재밌게 놀자”
“아빠 안녕. 내일 보자여”
“아빠아아. 냐아앙”
아내는 내가 떠나고도 한참이나 더 있다가 자러 들어갔다고 했다. 이 또한 뭐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해야 할 기본치를 수행하다 보니 그런 거였다. 그렇게 들어가서도 잠들었다가 늦게 나왔고. 내가 교회에서 돌아오기 조금 전에 나왔다고 했다.
그토록 피곤했을 테지만 육아가 끝나면 체력이 잠시 회복되는 육아의 진리를 오늘도 확인했다. 오늘따라 애들도 안 깨서 아내와 엄청 늦은 시간까지 수다를 떨었다. 무려 4시까지. 주말이라고 자비를 베풀지 않는 아이들이 밝힐 내일 아침을 두려워하며 자리에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