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1.29(월)
아내와 아이들은 아침 먹고 할 일(집안일, 공부 등)을 마치면 바로 (내) 엄마에게 간다고 했다. 아내에게도 일용할 김치를 가지러 가는 거니 소중한 발걸음이었겠지만, 아이들이 느끼는 간절함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일찌감치 일어났을 뿐만 아니라 아내가 일어나기도 전에 자기들끼리 알아서 여러 일을 마쳤다고 했다. 말씀 읽기, 영어 공부, 신발 정리, 머리카락 줍기 등을 기꺼이, 기쁨으로 해 놨다고 했다. 자기주도 학습 및 집안일의 동기는 오직 ‘할머니’였다. 한시라도 빨리 할머니를 만나러 가기 위한 자발적, 능동적 움직임이었다. 백 마디 말보다 확실한 동기부여 한 방이 얼마나 효과가 넘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소윤이는 어제 할머니와 통화를 마치고 나서 아내와 나에게 얘기했다.
“내일 흥부갈비 가자고 할까? 아니면 강강술래?”
더 어릴 때에 비하면 제법 입맛이 까다로워지고 자기 취향이 분명해진 소윤이가 인정하는 고깃집 두 곳이었다.
“글쎄. 엄마가 너무 힘들지 않을까? 아빠도 없이 서윤이 데리고 가면?”
이라고 말은 했지만 소윤이와 시윤이가 할머니에게 얘기를 꺼내는 순간, 점심은 고기를 먹게 되지 않을까 싶기는 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내는 고깃집에서 할머니와 머리를 맞대고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소윤이와 시윤이, 혼자 부스터에 앉아 어딘가를 보는 서윤이 사진을 보냈다. 아무리 관계가 좋다 해도 시어머니는 시어머니고 고부관계는 고부관계라지만, 아내는 워낙 시어머니를 불편해하지 않으니 아내를 향한 걱정은 없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얼마나 신나고 기분이 좋을까’하는 생각만 났다.
아내는 오후 시간을 종일 보내고 돌아왔다. 내가 조금 먼저 도착해서 기다렸다. 김치를 비롯해서 짐이 많았다. 시윤이는 푹 자고 깼고, 서윤이는 아직 자고 있었다. 먼저 소윤이와 시윤이를 내려주고 짐도 내리려고 했는데 어디선가 애절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아아아악. 안냐아아아아앙”
날 본 것도 아니었는데 목소리를 들었나 보다. 처음 보는 사이가 아니어도 다른 사람, 특히 남자에게는 철저하게 낯을 가릴 뿐만 아니라 피로 맺어진 가족, 친지여도 할아버지나 삼촌에게는 거리를 두는 서윤이가, 아빠라고 나에게는 그렇게 허물없이 대하는 게 너무 좋다. 막 쾌감이 느껴진다. 할아버지, 삼촌, 고모부에게 심드렁한 걸 넘어서 아예 가지도 않았다는 얘기를 들을 때, 가끔은 뿌듯하다.
아빠는 다르구나.
저녁은 (내) 엄마가 사서 보낸 돈까스로 해결했다. 역시나 서윤이는 거의 먹지 않았다. 새우튀김도 있었는데 그것만 좀 먹었다. 밥도 열심히 안 먹었다. 아내도 나도 그러려니 한다. 그거 한 끼 안 먹었다고 전전긍긍하지는 않는다. 매번 그러는 것도 아니고 또 아무리 아기라고 해도 배고프면 먹는다는 걸 아니까. 또 아기라고 해도 자기 취향이라는 게 있을 테니까. 나를 만나기 전에는 거의 완만한 채식주의자의 삶에 가까웠던 아내의 피가 섞였으니까.
아내와 아이들이 방으로 들어간 지 얼마 안 됐을 때부터 방에서 소리가 났다. 서윤이 목소리였다. 소리만 들어도 서윤이가 얼마나 잠이 안 오는지 느껴질 정도였다. 해 질 녘에 푹 잤으니 그럴 만도 했다. 두어 번 내가 들어가서 조금 무서운 목소리로 얘기했더니 울기도 하고 자는 자세도 잡고 그랬지만 그때뿐이었다. 금방 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시윤이도 마찬가지였다. 서윤이처럼 돌아다니고 시끄럽게 하는 건 아니어도 한참 깨어 있었다.
아내는 엄청 오랜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탈출에 성공했다. 세 녀석과 함께하는 시간은 언제나 소중하고 귀하다. 상투적이지만 그 무엇을 준다고 해도 바꾸지 않을 순간의 연속이고. 그래도 힘든 건 힘든 거다. 적어도 애들을 재우느라 2시간 넘게 방에서 씨름한 아내에게 ‘탈출’이라는 표현이 과한 건 아닐 거다. 혹시나 나중에 세 녀석이 오해할까 봐 기록하는 건데, 매 순간이 탈출을 갈망할 만큼 괴롭다는 뜻은 아니니 오해하지 말길.
아내가 집에 오면서 사 온 커피의 얼음이 많이 녹아서 라떼의 맛이 밍밍해졌을 텐데, 아내는 그것도 소중히 마셨다.
“아, 커피가 언제 이렇게 줄었지? 얼마 마시지도 않은 거 같은데”
라고 하면서. 애들 재우고 나온 아내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런 아내를 보다 보면 요즘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이 녀석들이 엄마의 이 파릇하고 젊을 때의 모습을 모를 예정인 게 너무 아쉽다’
잘 해라 이 녀석들아. 너네 머리부터 발끝까지 엄마의 청춘이 깃들었다. 이 녀석들아.
(엄마와 장모님께 좀 죄송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