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1.30(화)
처치홈스쿨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오후 모임이긴 했지만 아내는 미리, 점심시간쯤 가서 영어 파닉스 연습을 하기도 했다. 오늘도 원래 약속된 시간보다 미리 갔다고 했다. 그나마 오전이 아니었고 가까운 곳이라 부담도 덜하고 바쁘기도 덜 바빴을 거다(안 바쁜 게 아니라 ‘덜’ 바빴을 거라는 말이다).
퇴근하면 소윤이와 시윤이가 하루 종일 겪었던 일을 얘기해 준다. 특히 오늘처럼 다른 집에 가서 다른 친구들을 만나고 온 날에는 보따리가 더 풍성하다. 아이들과 비슷한 수준의 감정선을 맞추기 위해 노력은 하는데 아이들이 어떻게 느낄지는 잘 모르겠다.
“아, 진짜?”
“아, 그래?”
“오, 대단한데?”
성실히 받아치는 나의 반응에 과연 진심이 담겼는지, 안 담겼더라도 담긴 것처럼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내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월급날이었다. 아내는 저녁 반찬으로 감자조림, 계란말이, 콩비지를 준비했다. 모두 내가 좋아하는, 그것도 아주 좋아하는 반찬이었다. 쥐꼬리인지 호랑이 꼬리인지는 뒤로하고 어쨌든 한 달 동안 수고한 남편의 그 무언가를 진심으로 격려하고 감사하는 아내의 마음이 참 고마웠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가 날 ‘아빠’로 인정하고 ‘최고’로 치켜세우는 건, 아내의 공로가 크다. 아니 전적이다. 내가 우리 가족 아니면 어디 가서 이런 황송한 대우를 받을까 싶다.
아내는 그 세 가지 반찬을 하기 위해 피에 가까운 땀을 흘리는 노력을 쏟았지만, 아내가 보기에 결과물은 미천했나 보다.
“와, 나름대로 엄청 고생했는데 너무 없어 보이네”
물론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다. 없어 보일지는 몰라도 결코 없는 건 아니었다. ‘오늘은 진짜 밥은 조금만 먹어야지’라고 다짐하며 첫 숟가락을 뜨고 나서도, 막상 마지막 숟가락을 뜨고 나면 어느새 밥솥 앞에 서서 주걱을 들고 있는 것만 봐도 답이 나온다. 아내가 몇 끼를 계획하고 반찬을 만든지는 모르겠지만, 난 한 끼에 다 부숴버렸다.
이렇게 얘기하면 혹시라도 ‘맛은 없는데 감성과 사랑으로 먹는구나’라고 오해할지도 모르겠다. 요즘 아내의 요리를 먹을 때마다 느끼는 건데 뭔가 고수의 향기, 베테랑의 완숙함이 느껴진다. 맛의 편차도 거의 없을뿐더러 정말 맛있다. 특히 오늘의 비지찌개나 감자조림 같은 건 경지에 오르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소윤이와 시윤이만 아니었으면 이성을 잃고 먹었을 거다.
아무튼 그 바쁜 와중에 남편 좀 챙기겠다고 마음을 써서 육체의 수고를 자처한 것도, 또 감성 따위 개나 줘 버려도 객관적으로 맛있는 요리를 낸 것도 모두 고마웠다.
시윤아, 넌 꼭 엄마 같은 사람 만나서 결혼해라. 진짜 꼭. 아빠가 다른 건 몰라도 그렇게는 기도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