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도 좋고 빠르기까지

21.12.01(수)

by 어깨아빠

아내는 오전에 목장 모임만 하고 나면 특별한 일은 없다고 했다. 특별한 일이 있는 게 좋은지 없는 게 좋은지는 그때그때 다르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마냥 귀찮아서 좀 쉬고 싶은 날에는 별일 없는 게 좋고, 힘들고 귀찮아도 뭔가 답답하고 괴로우면 별일이 좀 있는 게 좋고.


그러고 나서는 하루 종일 잘 연락이 되지 않았다. 나중에 퇴근해서 알았는데 낮에 장모님이 오셨다고 했다. 점심도 함께 드셨다고 하는 걸 보니 꽤 일찍 오셨나 보다. 같이 카페도 가고 집에 오는 길에는 장도 보느라 정신이 없었나 보다. 기왕 별일 있는 거면 육아의 수고를 덜어줄 누군가와 함께하는 게 가장 좋긴 하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도착했을 때 아내는 저녁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아내나 아이들의 옷차림을 보아하니 집에 온 지 그렇게 오래된 느낌은 아니었다. 아내가 뭘 하나 봤는데 오징어와 야채가 보였다.


“여보. 뭐 하는 거야?”

“아, 오징어볶음. 여보 금방 되니까 조금만 기다려”

“그래? 지금 시작한 거 같은데?”

“아니야, 볶기만 하면 돼. 손질은 다 했으니까”


아내가 오징어볶음을 만드는 동안 아이들과 놀았다. 서윤이가 책을 읽어달라면서 이것저것 가지고 왔는데 ‘뽀뽀책’도 있었다. 별 내용이 없고 ‘00둥이 우리 아가, 엄마랑 뽀뽀’만 반복되는 책이었다. 소윤이가 어릴 때는 이 책으로 뽀뽀를 구걸하곤 했다. 서윤이는 이 책이 ‘뽀뽀책’이라는 걸 알고 가지고 온 거다. 뽀뽀를 해 줄 마음을 먹고 가지고 왔다는 말이다. 덕분에 서윤이와 뽀뽀를 실컷 했다.


아내 말대로 오징어볶음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맛은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아내가 속도까지 겸비해 가는 느낌이었다. 아내 스스로도 감탄을 금치 않았다.


“여보. 나 이제 좀 잘 하는 거 같지 않아?”

“원래 맛있었어”

“그래도. 이제 뭔가 다른 거 같아”


밖에서 밥을 먹으면 오징어볶음은 거의 고르지 않는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집에서 만든 오징어볶음'의 맛을 구현해 내는 곳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아내가 오늘 해 준 오징어볶음이 딱 그 맛이었다. 재료도 오징어와 당근, 양파 정도만 넣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맛이었다. 아무튼 정말 맛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매워서 못 먹은 게 아쉬웠다.


저녁을 다 먹고 잠시 숨을 고르다가 충동적(?)으로 ‘오늘 가영이 나가라고 할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파에 앉아 있던 내 등과 목을 타고 놀던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얘기했다.


“소윤아, 시윤아. 오늘 엄마 나갔다 오시라고 할까?”

“으응? 아이잉”


싫다는 뜻이었다. 몇 번 더 구슬렸지만 비슷했다. 사실 아이들의 의견을 묻는 건 아니었다. 지난번에도 말했던 것처럼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엄마를 보내주는 소윤이와 시윤이’를 기대했다.


‘엄마가 매일 너희를 재워주는데 고작 하루, 잠깐 나갔다 오라고 하는 걸 기쁘게 못 하느냐. 그럼 이제 앞으로는 아예 너네끼리 자게 하는 것도 심각하게 고려해야겠다’


라며 갑작스러운 약간의 훈계가 더해졌다. 소윤이는 눈물도 흘렸다. 시윤이는 빠르게 태세를 전환하고 ‘나는 상관없다’는 듯 치던 장난을 계속했다. 소윤이는 아내가 씻겨주는 동안 마음의 위로를 좀 얻었는지, 나올 때는 괜찮아졌다.


서윤이에게도 ‘엄마는 나갈 거고 아빠와 잘 거다’라고 얘기를 해 주기는 했는데 무슨 소리인지 이해를 못 하는 듯했다. 물론 알아듣고도 애써 모르는 척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럴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기 전에 아내에게 나가는 척을 하라고 할까도 싶었지만(엄마가 없다고 생각하면 더 이상 찾지 않으니까) 그냥 거실의 엄마에게 인사를 시키고 데리고 들어왔다.


서윤이는 아주 짧고 굵게, 한 10초 울었다.


“서윤아. 엄마는 오늘 없고 아빠랑 자자. 알았지?”

“네에에에에. 흑흑”


울음기가 남은 와중에도 대답을 하고 자리에 누워서 손가락을 빨았다.


아내는 집 근처의 늦게까지 하는 카페에 갔다고 했다. 아내는 카페 문을 닫을 때까지 있다가 돌아왔다. 백팩을 멘 아내의 모습이 꼭 학생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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