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나 어른이나 쉬는 시간이 최고지

21.12.07(화)

by 어깨아빠

낮에 아이들과 통화를 하는데 소윤이가 이렇게 말했다. 아니, 외쳤다.


“아빠. 색종이 진짜 너무 좋아여”

“그래? 다행이네”


어제는 받은 걸로 끝이었지만 하루가 지나고 직접 뭔가를 만들다 보니 감흥이 진해졌나 보다. 고작 색종이 하나로 이렇게 기쁨을 줄 수 있다니. 이런 면은 소윤이와 아내가 많이 닮았다. 아내도 아주 작고 소소한 선물을 참 좋아한다. 최근에는 그 소소한 선물의 99%를 커피와 빵이 채우고 있는 모양새다. 선물을 좋아한다기 보다 뭔가 나를 신경 쓰고 있다는 걸 느끼는, 그 순간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싶다.


퇴근하고 집에 왔더니 소윤이는 색종이로 만든 상자부터 보여줬다. 투자 대비 만족도가 큰, 소소한 선물로 색종이가 아주 딱인 듯하다. 사실 시윤이는 색종이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소윤이만큼 종이접기에 흥미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사실 시윤이에게 가장 큰 만족을 줄 수 있는 건 아마도 자동차와 관련된 그 무언가가 아닐까 싶은데, 떠오르는 게 장난감밖에 없어서 안타깝다. 장난감 증가 규제 정책을 강력하게 시행하고 있어서 새 장난감을 들이는 일은 거의 없다. 그래도 시윤이를 위해서 일시적으로 규제 완화 정책을 시행할까 싶다.


아내가 저녁 준비를 하는 동안 소파에 앉아서 소윤이, 시윤이에게 질문을 했다.


“오늘 처치홈스쿨에서 열심히 하고 왔어?”

“네”

“시윤이는 오늘 뭐 배웠어?”

“오늘 치읓이여”

“치읓은 무슨 단어야?”

“네? 그게 무슨 소리에여?”

“치읓 배우면 치읓 소리 나는 단어 배우지 않아?”


아내가 옆에서 시윤이 대신 설명했다.


“아, 오늘은 치읓이랑 모음이랑 조합하는 거 배웠어요”


다시 질문을 이어갔다.


“시윤아. 시윤이는 처치홈스쿨 시간 중에 어떤 시간이 제일 좋아?”

“어, 어, 저는 뭐가 제일 좋냐면은여. 공부하고 중간에 쉬거나 놀 때가 제일 좋아여”

“아, 진짜? 아빠도 그랬는데. 아빠는 학교를 다녔잖아. 그러면 45분이나 50분 정도 수업하고 10분 쉬었거든? 아빠도 그때가 너무 좋았어. 친구들이랑 막 놀기도 하고”


교육 당국과 학교, 선생님의 의도는 ‘쉬는 시간 동안 차분히 다음 수업을 준비하라’였겠지만, 그런 게 어딨나. 열심히 공부했으니 더 열심히 놀기에도 아까운 시간인데.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10분의 쉬는 시간을 활용했던 사람으로서 시윤이의 마음이 십분 이해가 됐다.


“시윤아, 그럼 쉬는 시간 빼고 그다음은 어떤 시간이 제일 좋아?”

“3단계여”

“3단계? 3단계가 뭐야?”


이번에도 아내가 옆에서 보충 설명을 했다.


“아, 수학. 시윤이도 수학을 좋아하더라”


소윤이에게도 물어봤다.


“소윤이는? 뭐가 제일 좋아?”

“저는 필사여”

“성경 필사?”

“네”

“진짜? 왜 좋아?”

“몰라여. 그냥 좋아여. 쓸 때 힘들기는 한데 재밌어여”

“다 쓰고 나면 뿌듯해서?”

“그런 것도 있고”

“글씨를 예쁘게 쓰는 게 기분이 좋은가?”

“맞아여. 그런 것도 좋아여. 그리고 저도 수학이 좋아여”


다행히 수학 포기자의 길을 걸은 나를 닮지 않은 건가.


저녁에 목장 모임이 있어서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래도 오늘은 퇴근할 때 좀 덜 막혀서 저녁 식사가 좀 빠른 편이라 여유가 있었다. 목장 모임 하기 전, 아주 작은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후다닥 설거지를 했다. 물론 아내는 그냥 두라고 했지만, 아내의 지친 얼굴과 몸짓을 보고 그냥 두기 미안했다. 어제도 설거지를 못하고 자서 아마 아내가 오늘 고생했을 거다.


아내는 애들을 재우고 나와서도 한참 동안 기운이 없었다. 그냥 많이 지쳐 보였다. 사실 매일 그렇다고 봐도 무방하다. 매일 보통 고단한 일정을 소화해 내는 게 아니니까. 안 피곤한 날은 없다. 다만 조금 더 완벽하게 안 피곤한 것처럼 보이는 가면을 쓰는 날이 있을 뿐. 거기에 오늘은 빵도 커피도 없다.


그래도 애들 사진은 있다. 사진을 보며 커지는 ‘보고 싶은 마음’을 해소해 줄 진짜 애들도 방에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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