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2.06(월)
“아빠아아? 아빠아아아?”
아마 이랬나 보다. 서윤이가 갑자기 아빠를 엄청 찾는다면서 전화가 오곤 했다. 물론 막상 통화를 해도 나누는 대화는 없다.
“아빠아아. 아빠아아아”
“어, 서윤아”
“아빠아아? 아빠아아아?”
“어, 서윤아”
의 반복이다. 서윤이와 나만 느끼는 교감과 소통이 존재한다. 그 통화를 마치고 나면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피로가 사라지는 걸 보면 분명하다.
퇴근하는 길에 문구점에 들러서 색종이를 샀다. 소윤이가 수시로 이런저런 소소한 선물을 주는데 거기에 제대로 보답을 한 적이 없어서 늘 마음에 걸렸다. 얼핏 색종이가 다 떨어져서 아껴 쓰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 소소하지만 기쁨을 주는 선물로 색종이를 골랐다. 평소에 잘 사지 않는 특수(반짝이, 꽃무늬) 색종이를 샀다. 물론 시윤이 것도 함께. 서윤이 몫은 없었다.
현관에서 인사를 나누고 가방에 넣어 둔 색종이를 꺼내서 보여줬다.
“아빠. 이게 뭐에여?”
“색종이지”
“아니, 이건 왜 사 왔어여?”
“그냥. 선물이야. 좋아?”
“너무 좋아여”
소윤이와 시윤이 모두 만족했다. 아내가 옆에서 거들었다.
“소윤아. 소윤이가 오늘 시윤이 색종이 나눠줬잖아. 근데 아빠가 딱 사 오셨네?”
“아, 그랬어?”
그러고 보니 어제 자기 전에 소윤이가 시윤이에게 색종이를 나눠 주겠다고 약속한 게 떠올랐다. 모르는 척하고 틈새를 이용해 약간의 훈화를 가미했다.
“소윤아. 이것 봐. 소윤이가 가지고 있는 걸 나누니까 더 많이 생기지?”
“아빠. 몰랐어여?”
“어, 아빠 몰랐지. 소윤이가 동생한테 색종이 나눠 주고 그런 마음을 먹으니까 아빠도 색종이 사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나 보지”
다행히 아직까지는 서윤이가 자기 것은 없다고 서운해 하지는 않는다.
아내는 저녁 반찬으로 시금치 된장국을 만들었다. 이것 또한 내가 무척 좋아하는 반찬이다(과연 내가 좋아하지 않는 반찬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나 스스로도 드네). 숟가락질과 감탄의 입술은 바쁠 수록 득이 된다.
“와. 소윤아, 시윤아. 너무 맛있지?”
“네. 맛있어여”
“아빠는 너무 맛있다”
아내도 요즘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아, 다같이 이렇게 저녁 먹을 때 너무 행복하네”
물론 그 말을 하는 아내의 표정은, 환자라고 해도 믿을만큼 기력이 없고 창백해 보일 때도 많다. 저녁 준비하느라 남은 체력을 탈탈 털 정도로 쉬운 일이 아니지만, 함께 앉은 식탁에서 느끼는 행복함 또한 포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력적인가 보다.
식탁의 행복이 지나가면 다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운 피로가 찾아 오기도 한다. 아내와 나는 혹시라도 스스로의 피로가 예민함이 되어 상대방을 찌르지 않도록 조심하고 단속하면서 남은 과업(씻기기, 책 읽기, 재우기)을 완수하기 위해 마지막 힘을 짜낸다.
“나 커피 먹고 싶네. 진짜 오늘 참으려고 했는데. 여보도 마실래요?”
“그래”
저녁에는 커피를 안 마시지만 아내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마시기도 한다. 이렇게 말하니까 뭐 꼭 싫어하는 걸 억지로 마시는 것 같지만, 그런 건 아니고. 한 잔 가격으로는 배달이 안 되니까 내 몫도 시켜야 한다. 나도 막상 마시면 아주 만족스럽다. 숙면을 위해 자제할 뿐, 마시고 싶지 않은 건 아니니까.
사랑은 또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고 육아의 피로는 육아의 추억으로 잊는 법이다. 아내와 나는 오늘도 지난 여행의 사진, 오늘 아내가 찍은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