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2.12(주일)
낮에 교회에 다녀와서 소윤이에게 오늘은 어떤 말씀을 들었는지 물어봤다. 소윤이는 오늘 들었던 말씀의 줄거리를 술술 풀어냈다. 시윤이도 옆에서 자기도 얘기할 수 있다면서 누나 대신 말하기도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이야기를 다 듣고 소윤이에게 다시 질문을 했다.
“소윤이는 오늘 말씀 듣고 어떤 생각이 들었어?”
소윤이는 큰 고민 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모르겠어여. 아무 생각이 없었어여”
그러면 안 됐는데 나도 모르게 뭔가 짜증이 났다. 대답하는 태도가 성의 없다고 느낀 건지 아니면 예배 시간에 ‘아무 생각 없이’ 듣기만 한 게 답답했는지. 아무튼 소윤이게 그다지 좋지 않은 태도로 약간의 짜증을 냈다. 훈계를 표방했지만 다분히 짜증이 섞여 있었다는 걸 부정하기는 어려웠다. 사실 요즘 소윤이가 성경읽기를 소홀히 한다는 것과 그것에 관해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는 걸 어제 알게 됐다. 어제도 오늘과 비슷한 감정이었다. 오늘은 어제의 연장선이었을지도 모르고.
소윤이가 그것 때문에 오랫동안 마음이 상하거나 그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좋을 게 없었다. 오후에 있었던 일이었는데 나머지 시간에 내내 마음에 걸렸다.
축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아이들은 저녁을 먹고 있었다. 아내는 우리(아내와 나)의 저녁으로는 짜파구리가 어떠냐고 제안했다. 아내가 아이들을 재우러 들어간 사이에 마트에 가서 짜짜로니와 너구리를 사 왔다. 어차피 아내가 애들을 재우고 나오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리니 파기름도 내고 양파도 듬뿍 넣어서 짜파구리를 끓였다.
“언제쯤 나올 예정?”
“지금”
아내는 카톡과 동시에 나왔다.
“애들은? 다 자?”
“소윤이는 안 자”
“아, 그래? 소윤이 나오라고 할까?”
“진짜? 왜?”
“그냥”
아내는 다시 방 문을 열고 소윤이를 불러냈다. 소윤이는 눈을 찡그린 채 거실로 나왔다. 엄청 환한 웃음과 함께. 잠든 동생들과 달리 혼자 선택받았다는 기쁨이 충만해 보였다. 아내와 내가 늦은 저녁을 먹는 동안 소윤이도 옆에 앉았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소윤이를 웃겼다. 우스운 모습으로 면발을 흡입하기도 하고 할머니, 할아버지의 아들로 살 때 있었던 일을 재밌게 얘기하기도 하고, 고모를 괴롭혔던 어린 시절의 아빠를 얘기하기도 하고. 아무튼 망가지고 우스운 꼴을 자처하며 소윤이의 깊은 웃음을 이끌어 냈다. 소윤이는 아내와 내가 짜파구리를 다 먹고 나서도 조금 더 함께 있다가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다음에 같은 상황이 오면 ‘건강한 태도’로 소윤이와 이야기를 나눠야 오늘의 불찰이 진정으로 상쇄되는 것이겠지만, 어쨌든 소윤이의 기분과 웃음을 다독였다는 것은 다행스러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질문도 별로였다. 아마 거기서 소윤이가 나에게
“아빠는 무슨 생각이 들었어요?”
라고 물어봤으면 나도 술술 대답하지 못했을 거다. 분명히 생각도 했고 느낌도 있었지만, 마치 아무 생각도 없이 앉아 있었던 사람처럼.
소윤아, 오늘은 아빠가 좀 미안하긴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