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2.23(목)
아내와 아이들은 장모님께 다녀왔다. 진작부터 정해 놓은 일정이었다. 특별히 목적이나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할머니와 손주의 만남, 딸과 친정 엄마의 만남을 위해 비정기적인 듯 정기적인 시간이었다. 물론 아이들에게는 그 어떤 약속보다 소중한 약속이었겠지만.
저녁에는 꽤 빡빡한 시간에 온라인 모임이 있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아내나 아이들이 늘어질 여유가 없었을 거다. 게다가 오늘 모임은 아내가 인도해야 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내가 퇴근하기 전에 이미 집에 왔다. 꽤 한참 전에.
소윤이가 매트리스 위에 누워서 자고 있었다. 매우 힘이 빠진 표정으로. 꽤 이른 시간이었고 평소라면 절대 소윤이가 잘 시간이 아니었다. 딱 봐도 뭔가 몸이 정상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어제 잘 때 유독 힘들어하더니 오늘까지 이어졌다. 다행히 열은 안 났는데 하루 종일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고 했다. 코가 가득 차고 숨 쉬는 걸 힘들어했고. 전형적으로 소윤이가 아플 때 나타나는 증상이었다. 하루 종일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고 했다.
시윤이도 코가 가득 찬 코맹맹이 소리가 여전했고 서윤이는 콧물을 줄줄 흘렸다. 아마 감기 바이러스가 한 번 돌았거나 아직 머무는 중인 듯하다. 그래도 시윤이와 서윤이는 기운이 없지는 않았다. 그냥 평소와 똑같았다. 다만 코가 막히고 흐를 뿐이었다.
아이들은 따로 저녁을 먹지는 않았다. 집에 오기 전에 장모님 댁에서 이것저것 먹기도 했고 저녁에 가까운 김밥(김에 밥을 싼)도 먹었다고 했다. 나도 저녁으로 아이들이 먹은 그 김밥을 먹었다. 시윤이와 서윤이는 저녁 대신 과일을 먹었다. 평소와 다름이 없기는 했어도 시윤이와 서윤이도 언제든 안 좋아질 가능성이 컸다. 시윤이에게 수시로 힘들지는 않은지 물어봤다. 그 짧은 시간에 많이도 물어봤다.
아내가 모임을 인도해야 해서 애들은 내가 데리고 들어가서 재우기로 했다. 시윤이는 아쉽지만 덤덤히 받아들였다. 역시나 오늘도 서윤이가 좀 많이 슬퍼했다. 자러 들어가기 전에는 그게 뭐 문제가 되겠냐는 듯 흔쾌히 대답하더니 막상 데리고 들어가니까 구슬프게 울었다. 그래도 금방 잠들었다. 오늘도 아내 덕을 많이 봤다. 장모님 댁에서 오는 동안 아이들이 잠들지 않게 하려고 많이 노력했다고 했다.
장인어른은 딸과 손주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아주 부지런히, 평소보다 빠르게 퇴근을 하셨다고 했다. 장인어른이 문을 열고 집에 들어오시는데 서윤이가
“하지이이이이이. 하지이이이이이이이”
이렇게 소리를 치고 펄쩍펄쩍 뛰면서, 자기 몸을 어떻게 가누지를 못할 정도로 좋아하면서 할아버지를 맞이했다고 했다. 아내 말로는 장인어른이 ‘엄청’ 좋아하셨다고 했다. 상상이 된다. 매일 퇴근할 때마다 그 기쁨을 누리는 나도, 매일 반복되는 일이지만 그때마다 흥분이 되고 뿌듯한데 할아버지는 오죽할까 싶다. 이게 그냥 막 팔만 뻗고 그러는 게 아니라 마치 내가 박보 아니 한류에 빠진 외국인이 BTS를 만난 것처럼 부르르 떨면서 팡팡 튀는 그런 모습으로 반긴다. 이거 보려고 출근한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소윤이는 몸이 힘들고 숨을 쉬기가 버거운 것을 생각하면 의외로 깊이 잤다. 워낙 이른 시간부터 자서 중간에 한 번 깨기는 했다. 그때도 여전히 힘들다고 하기는 했다. 열은 계속 안 났고.
아내가 소윤이 옆에 누웠다. 새벽에 자다가 얼핏 깨더라도 옆에 엄마가 있는 게 심리적 안정에는 훨씬 더 도움이 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