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 같지 않은 이브

21.12.24(금)

by 어깨아빠

일하러 가서도 소윤이가 어떤 상태인지 계속 신경이 쓰였다. 더불어 아내는 괜찮은지도 궁금했다. 아픈 사람도 걱정이지만 아픈 사람을 돌보는 사람 또한 걱정이 되니까. 아내는 소윤이 사진 한 장을 보냈다. 어제 퇴근했을 때 봤던, 힘없는 그 모습이었다.


“열도 많이 나?”

“입맛이 없다네. 계속 미열”

“시윤이, 서윤이는 괜찮고?”

“둘 다 코는 가득한데 컨디션은 좋음”


소윤이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고 했다. 식욕 자체가 사라졌다고 했다. 어제저녁부터 오늘 아침까지 거의 아무것도 안 먹었다. 점심에 물에 밥을 말아서 겨우 몇 숟가락 떴다고 했다. 먹고 싶은 건 없냐고 물어봤는데 치아바타가 먹고 싶다고 했다. 그냥 치아바타가 아니라 특정 카페에서 파는 ‘그 치아바타’가. 누가 이가영 딸 아니랄까 봐 아픈 와중에도 먹고 싶은 게 빵이라니. 퇴근하는 길에 들러서 사려고 했는데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잠시 자연드림에 다녀왔다고 했다. 치아바타도 그때 샀고 가래떡도 먹고 싶다고 해서 가래떡도 샀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성탄절 이브였다. 알고 있었는데 모르고 있었다. 평소보다 1시간 30분 정도 일찍 퇴근했다. 전혀 예상에 없던 일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퇴근했다. 역시나 아내가 가장 좋아했다. 서윤이보다 더 좋아했다.


“여보오. 무슨 일이야? 뭐야?”


소윤이는 어제처럼 매트리스에 누워 있었다. 어제보다 더 힘이 없어 보였다. 치아바타와 가래떡도 먹지 못하고 그저 누워만 있었다. 혼자 매트리스에 누워서 거실에서 들리는 동생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려니 얼마나 외롭고 쓸쓸했을까. 신음 소리를 내면서 계속 엄마를 찾았다. 내가 시윤이와 서윤이를 데리고 노는 동안 아내는 소윤이 옆에 붙어 있었다. 그러다 소윤이 옆에 누웠다. 간병(?)을 위해 들어간 아내는 스르르 잠이 들었다. 소윤이는 엄마에게 자지 말라는 의미의 신음 소리 비슷한 소리를 내며 깨워 보려 했지만 아내는 쉽게 깨지 못했다.


저녁 먹을 때가 되어서 저녁을 준비했는데 역시나 소윤이는 먹지 못했다. 소윤이 혼자 방에 남겨 두고 밥을 먹는 게 영 마음이 좋지 않아서 일단 아내가 아이들과 먼저 먹게 했다. 난 소윤이 옆에서 간병을 시작했다. 아빠는 굳이 안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옆에 있었다. 소윤이는 초점 없고 힘을 잃은 눈빛으로 날 멍하니 쳐다봤다.


“소윤아. 아빠 나갈까? 혼자 있고 싶어?”

“아니여. 괜찮아여”

“그래?”

“아빠 나가고 싶으면 나가고”

“아, 그런 건 아니야. 혹시 소윤이가 혼자 있는 게 편한가 싶어서”

“그런 건 아니에여”


소윤이의 눈이 꿈뻑꿈뻑, 느리게 감겼다 떴다를 반복했다. 그걸 보고 있노라니 나도 잠이 솔솔 찾아왔다. 소윤이는 잠들지도 않았는데 내가 먼저 졸기 시작했다. 아내는 시윤이, 서윤이와 함께 저녁을 먹고 씻기는 것까지 마쳤다. 소윤이도 겨우 일어나서 씻었다.


“소윤아. 괜찮아? 계속 비슷해?”


이 질문을 수십 번도 더 했다.


“소윤아. 괜찮아? 계속 비슷해? 소윤아. 너무 계속 같은 걸 물어보나? 이제 그만 물어볼까?”

“네”


하긴. 아픈 사람에게 ‘이제 좀 어떠냐’고 그렇게 자주 물어보면 그것만큼 귀찮은 일이 있을까 싶기는 하다. 모두 눕고 나서 여느 날처럼 기도를 했다. 다시 그러고 보니 성탄절 이브였다. 다른 날과는 조금 다르게 기도를 했다. 내 생일도 아닌데 내가 선물을 받는 게 당연한 풍조 속에서 제대로 된 성탄의 의미를 실천하면서도 그 기쁨은 충분히 만끽하기를 바랐다. 아내와 나름대로 애를 썼다. 그 와중에 소윤이가 이렇게 아픈 걸 통해서도 뭔가 배우는 게 있길 바랐고 또 하루빨리 건강히 낫길 바라기도 했고. 소윤이가 아픈 건 마음이 아팠지만 한편으로는 아무 공헌과 이유 없이 즐기고 기뻐하는 세태에서 조금 멀어진 것 같아서 좋기도 했다. 이브 같지 않은 이브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에게 마음이 잘 전해졌을지는 모르겠다.


기도를 마치고 거실에 나와서 혼자 밥을 먹었다. 그러고 나서는 혼자 마트에 갔다. 장을 봐야 했다. 아내가 일러 준 목록을 참고해서 필요한 것을 차례대로 샀다. 오랜만에 제대로 손님을 맞이하려니 준비할 게 꽤 많았다. 아내는 오늘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미리 준비한다고 했는데 막상 육아 퇴근을 하고 나니 몸이 따라 주지 않았는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자러 들어가서 소윤이 상태를 살폈는데 여전히 비슷해 보였다. 자면서 신음 소리를 자주 냈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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