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2.25(토)
잠결에 누군가 문을 열고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소윤이였다. 따라 나가면서 시계를 보니 7시쯤이었다.
“소윤아. 왜?”
“물 마시려고여”
“어, 알았어. 아빠가 따라줄게”
소윤이는 물을 마시고 화장실에도 다녀온 뒤에 소파에 앉았다.
“소윤아. 좀 어때? 비슷해?”
“네. 그런 거 같아여”
“그렇구나. 들어가자”
“여기 있고 싶어여”
“그래? 여기 추운데. 들어가서 누워 있지”
“그냥 여기 있을래여”
“너무 오래 누워 있어서 힘들어?”
“네”
방에 들어가서 이불과 베개를 꺼내 왔다. 소윤이는 소파에 앉아 있었고 난 소윤이 앞에 이불을 덮고 누웠다. 소윤이에게 이런저런 대화를 걸다가 졸다가를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시윤이와 서윤이도 깨서 나왔던 것 같다. 사실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방에 누워 있었고 소윤이도 함께였다.
시윤이와 서윤이가 다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아내는 아이들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성탄절이지만 교회는 가지 못했다. 혹시라도 소윤이 상태가 심상치 않게 전개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더라면 아내가 소윤이와 함께 집에 남고 내가 시윤이, 서윤이를 데리고 교회에 갈 수도 있었다. 떨어져서 예배를 드리느니 온라인으로 다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온라인 예배였지만 시간은 촉박했다.
“여보. 애들 밥은 예배드리고 먹이자”
“그럴까?”
소윤이는 계속 잤다. 소윤이 빼고 나머지 식구만 소파에 앉아서 성탄절 예배를 드렸다. 소윤이는 거실에서 들리는 소리에 깼는지 얼마 안 돼서 나왔다. 여전히 힘은 없어 보였다. 그래도 뭔가 ‘어제보다는 조금 나아진 거 같은데?’ 하는 느낌이 있었다. 아내도 나와 비슷하게 느꼈다. 소윤이는 조금 앉아 있다가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자지는 않고 계속 누워 있기만 했다.
예배를 드리고 나서 아이들의 첫 끼를 차려줬다. 거의 점심시간이었다. 역시나 소윤이는 먹지 못했다. 아픈 게 좀 나았어도 워낙 먹은 게 없어서 기운을 못 차리는 것 같기도 했다. 소윤이는 전혀 먹고 싶은 욕구가 없었다. 요거트는 조금 먹겠다고 해서 치아바타와 요거트를 좀 줬는데 그것도 얼마 못 먹고 다시 방에 가서 누웠다.
사실 오늘 아이들에게는 아주 크고 중요한 일이 예정되어 있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아내와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내) 부모님이 오시기로 했고 하루를 주무시기로 했다. 성탄절을 맞아 이런저런 실천사항을 고민하고 결정하던 와중에 아내가 제안했다. 부모님을 섬기는 것도 이웃을 사랑하는 중요한 방법이라면서. 아내는 저녁을 직접 만들어서 제대로 대접해 드리자고 했다. 밥 먹고 난 뒤에는 계속 그걸 준비했다. 재료를 미리 준비하느라 계속 썰고 또 썰었다. 목이 아팠다. 아내는 청소와 정리를 맡았다.
커피가 무척 당겼다. 미처 사지 못한 재료도 사고 커피도 살 겸 시윤이를 데리고 집에서 나왔다. 시윤이를 조수석에 앉히고 이곳저곳 들렀다. 시윤이는 이것도 아빠와 데이트하는 거라면서 좋아했다. 한 손은 핸들을 잡고 한 손은 시윤이 손을 잡고 운전했다.
“아빠. 우리 계속 데이트 할까여?”
“그럼 할머니, 할아버지랑 못 노는데?”
“아, 맞다”
집에 오니 엄마, 아빠가 와 계셨다. 소윤이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만난 기쁨 때문인지 조금은 나아 보였다. 여전히 아파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는 느낌이었다. 기운을 차리기에는 너무 먹은 게 없기도 했다.
미리 재료 준비를 해 놔서 조금이나마 수월하긴 했지만 그래도 저녁을 차리는 데 꽤 많은 시간을 썼다. 아내의 진두지휘 아래 차근차근 준비를 했다. 아이들의 방해는 전혀 없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라는 초특급 육아 보조자가 있었으니까. 다행히 소윤이도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었다.
감바스, 닭고기 볶음밥, 스테이크, 로제 파스타, 리코타 치즈 샐러드. 우리가 준비한 음식이었다. 다행히 맛이 다 괜찮았다. 엄마와 아빠도 잘 드셨고 평가도 후했다(설령 별로였다고 해도 대놓고 악평을 할 리는 없었지만). 무엇보다 소윤이가 무척 잘 먹었다. 엄청 오랜만에 제대로 된 끼니를 먹는 거였다. 역시나 먹고 나니 한층 더 기운을 차렸다.
서윤이는 나와 아내의 마음을 다소 무겁게 했다. 다 함께 앉기 위해서 바닥에 상을 펴고 앉았고 서윤이도 아기 소파에 앉았다. 특별한 잠금(?) 장치가 없었다는 말이다. 행동에 제약을 받지 않는 서윤이는 파스타면을 손에 쥐고 이리저리 흔들기도 하고 흘리기도 했다. 서윤이 주변으로 로제 파스타의 붉은빛이 물들었다. 아내와 나의 마음도 붉게 물들었다. 다 먹고 정리하려는데 서윤이를 보니 한숨이 나왔다.
“여보. 옷을 벗겨서 바로 화장실로 데리고 가자”
“그래”
백지장도 맞들면 낫고 서윤이는 맞들어도 빡세 아니 힘들다.
저녁 먹은 걸 정리하고 나서는 케이크에 초를 꽂고 성탄 축하도 했다. 계속 회복세를 보이던 소윤이는 시간이 조금 지나자 약간 지치는지 활동성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소윤아. 다시 힘들어졌어?”
“아니여. 그런 건 아니에여”
“그럼 그냥 조금 기운이 없어? 피곤한가?”
“네. 좀 피곤해여”
시윤이와 서윤이는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시간을 알차게 보냈다. 특히 요즘 할머니, 할아버지의 마음 사로잡기를 주특기로 삼고 있는 서윤이는 오늘도 갖은 애교로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소윤이의 몸을 생각해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방문한 것치고는 이른 시간에 재웠다. 아내가 들어가면 왠지 잠들 것 같아서 내가 재웠다. 시윤이와 서윤이는 금방 잠들었고 소윤이는 잠들지 않았다.
“소윤아. 몸은 좀 어때?”
“괜찮아여”
“그래. 자고 일어나면 싹 나을 거야. 잘 자”
“네”
(내)엄마는 소윤이가 안 잔다고 했더니 그냥 데리고 나오라고 했다. 몸이 안 좋은 소윤이가 혼자 쓸쓸히 누워 있는 것도 안쓰럽기도 하고 소윤이와 시간을 더 보내고 싶은 것 같기도 했다. 아플 때는 일찍 자는 게 최고고 잠이 안 와도 일단 누워 있는 게 장땡이라는 나의 철학에 따라 소윤이를 다시 데리고 나오지는 않았다.
엄마, 아빠와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다가 잤다. 부모님(나의 부모님이든 아내의 부모님이든)이 우리 집에서 함께 주무시는 건 처음이었다. 아내가 제안한 일이기는 해도 시부모님을 모셔야 하는 수고가 뒤따르는 건 당연한 일이니 아내를 유심히 살폈다. 다행히(?) 아내는 즐거워 보였다. 아이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무엇보다 소윤이가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시간을 즐길 정도로 회복이 된 게 다행이었다.
아내 덕분에 뭔가 신선하고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는 성탄절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