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는 아내가 하고 낮잠은 내가 자고

21.12.26(주일)

by 어깨아빠

아내와 (내) 엄마, 아이들이 안방에서 잤고 아빠는 작은방에서 잤다. 나 혼자 거실에서 잤는데 아침 일찍부터 방 안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꽤 오랫동안 방 안의 소란을 거실로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애들보다 아내가 먼저 나왔다.


아침은 떡국을 하기로 했다. 교회에도 가야 하니 일찍부터 부지런히 준비를 해야 했다. 아내는 자기 전에 알람을 맞췄다. 나도 아내와 같은 시간에 알람을 맞췄다. 아내가 먼저 일어나서 거실로 나왔고 난 울리는 알람을 끄고 비몽사몽이었다.


“여보. 방에 들어가서 잘래?”

“아니야. 나도 일어나야지”


이렇게 대답하고 한참을 더 누워 있었다. ‘한참’이라는 표현이 민망할 정도로, 아내가 떡국을 거의 다 완성했을 때쯤 제대로 정신을 차렸다.


“여보. 미안하네”

“뭘. 떡국은 할 것도 없는데”


아내 덕분에 아침을 든든하고 맛있게 먹었다. 아내와 내가 계산한 시간보다 준비도 늦고 먹는 것도 느려서 시간이 많이 촉박하긴 했지만 그래도 늦지 않게 출발했다. 차에 타자마자 엄청 시끄럽게 떠들면서 기분이 좋은 티를 내던 서윤이는, 갑자기 조용해지더니 후덕한 표정으로 곤히 잠들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새싹꿈나무 예배에 가고 어른들과 서윤이는 함께 예배를 드렸다. 부모님이 다니는 교회(이자 결혼하기 전까지 나도 다녔던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린 적은 있어도 우리(아내와 나)가 다니는 교회에 부모님이 오셔서 함께 예배를 드린 건 처음이었다. 코로나 시국에 신앙심이 많이 약해진 부모님에게 함께 드리는 오늘의 예배가 뭔가 좀 특별하게 느껴지길 기도했다.


안타깝게도 오늘따라 너무 졸렸다. 자꾸 눈이 감겼다. 어제 그렇게 늦게 잔 것도 아니었는데. 강력한 의지를 발휘해도 소용이 없었다. 흘깃 옆을 봤는데 아빠도 졸고 엄마도 졸고 아내도 졸았다. 하나님에게 제일 죄송한 게 맞지만 일단 목사님에게 가장 죄송했다. 오늘따라 엄청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일가족이 꾸벅꾸벅 조는 자태를 보여드리다니. 차라리 서윤이가 자지 않고 방해해서 날 자꾸 일으켜 세웠더라면 좋았을 뻔했다.


예배가 끝나고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러 올라갔다.


“아빠. 저 오늘 하늘아이 갔다 왔어여”

“아, 그랬어? 그냥 갔다 오기만 했어?”

“네. 오늘은 인사만 하고 다음 주부터는 하늘아이로 간대여”


지금 예배드리는 부서는 일곱 살까지고 다음 주부터는 8살이 되니 부서가 달라지는 거다. 새싹꿈나무에서는 이별의 축복 인사를, 하늘아이에서는 환영의 축복 인사를 받았다고 했다.


“소윤아. 좀 슬프지 않았어? 새싹꿈나무에서 인사할 때?”

“슬프지는 않았어여”


소윤이의 이동에 가장 마음이 심란한 건 시윤이였다.


“아빠. 사실은 저 아까 누나 나갔을 때 눈물이 났는데 참은 거에여”

“그랬어? 시윤이가 이제 다음 주부터는 누나 없이 드려야겠네”

“아닌데여. 저 누나 따라갈 건데여?”


시윤이는 몇 주 전부터 누나와 헤어지는 게 싫다는 걸 드러냈다. 누나가 올라가면 엄마, 아빠와 예배를 드리겠다거나 누나를 따라서 같이 가겠다거나. 생각해 보면 시윤이의 다섯 살 생애에서 누나와 떨어진 시간이 거의 없다. 정말 별로 없다. 엄마, 아빠와 떨어졌던 시간보다 누나와 떨어졌던 시간이 훨씬 더 짧다. 가뜩이나 누나에게 의지와 의존을 많이 하는 시윤이라 나름의 여파가 클 거다.


집으로 오는 길에 점심으로 먹을 음식과 커피를 포장했다. 시윤이가 좋아하는 탕수육을 비롯한 중국 음식이 오늘의 점심이었다. 다들 시윤이가 탕수육을 잘 먹는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오늘도 새삼 놀랐다.


“와, 시윤이 탕수육 진짜 좋아하는구나. 정말 잘 먹는다”


라는 감탄이 몇 번이나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시윤이가 먹을 때 굉장히 복스럽게 먹는 매력이 있다. 아직 조금 더 어려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깔끔과 청결은 뒤로하고 일단 먹는 데 집중하는 모습이 있다. 소윤이는 잘 먹어도 굉장히 깔끔하게, 마치 아내의 미니어처를 보는 것처럼 그렇게 먹는다. 음, 시윤이는 내 미니어처네.


소윤이는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침부터 그랬다. 어제는 정상인가 싶다가도 뭔가 밝고 활기찬 기운이 전혀 없었다면 오늘은 소윤이 특유의 웃음과 개방정이 자주 보였다. 숨소리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점심을 먹고 나니 졸음이 쏟아졌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고 아내도 딱히 할 일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여보. 나 좀 자고 나올게”

“그래”


지금 생각해 보니 아내도 자고 싶었을 텐데 아내에게는 물어보지도 않았구나. 한 시간 반 정도를 자고 일어났다. 아이들은 여전히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놀았다. 헤어짐의 시간은 다가왔고 아이들에게 미리 시간을 고지했다.


“소윤아, 시윤아. 할머니, 할아버지 다섯 시 되면 갈게. 알았지?”


아이들이 느끼기에 번개보다 빠르게 시간이 갔을 거다. 약속한 시간은 순식간에 코앞으로 왔다. 사실 시간이 조금 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워서 어쩔 줄 모르는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먼저 자비를 베풀었다.


“그럼 다섯 시 반 되면 갈게. 그때는 아쉬워도 어쩔 수 없는 거야. 알았지?”


마지막 알토란 같은 시간을 정말 즐겁게 보냈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내와 나까지도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기쁨이 컸던 만큼 이별의 슬픔은 더 진해졌다. 소윤이는 결국 아쉬움의 눈물을 참지 못했다. (내) 엄마는 자주 보지 못하고 오랜만에 만나서 하룻밤을 같이 보낼 때가 많아서 그런지 헤어질 때 유독 더 슬퍼한다. 시윤이도 슬퍼하긴 했는데 왠지 누나를 보고 애써 슬픔을 더 숙성하려고 노력하는 느낌이었다. 아쉽지만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가셨고 잠시 슬픔의 기운이 찼다. 언제나처럼 엄청 오래가지는 않았다.


“여보. 고생했어”

“고생? 왜? 난 좋았는데?”

“그래도. 부모님 대접하느라 고생했지”

“아니야 괜찮아”

“여보.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내가 사 줄게”

“괜찮다니까”

“왜. 얼른 골라”


아내는 애들을 재우러 들어가서 먹고 싶은 걸 골랐다. 고작 크로플과 커피였다. 소박하긴. 하긴 더 소박한 내 지갑 사정을 고려한 아내의 깊은 배려겠지. 소박하디 소박한 크로플과 커피마저도 아내는 마음대로 먹고 마시기 어려웠다. 오늘도 애들 재우다 잠들어서 엄청 늦게 나왔다. 하마터면 내일 다 식고 굳은 커피와 크로플을 먹을 뻔했다.


“근데 피곤하긴 하다”

“피곤하지. 준비하고 신경 쓰느라”

“그것도 그런데 소윤이 아팠던 것 때문에. 여보 말대로 아픈 거에 너무 마음을 뺏기지 않으려고 계속 신경 썼더니 뭔가 계속 긴장을 했나 봐”

“그렇지. 아무튼 고생했어”


특별한 성탄 주말이었던 만큼 눈 깜짝하는 사이에 사라졌네. 아, 아이들이 아까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그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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