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2.27(월)
아침에 일어나서 나가는데 시윤이가 인사를 했다.
“아빠하. 안녀헝”
“시윤아, 안녕”
인사를 나누고 방 문을 닫고 나왔는데 곧바로 시윤이도 나왔다.
“시윤아. 왜? 오줌 마려워?”
“네”
소리만 들으면 어른이 들어간 걸로 오해하기에 충분한, 세고 긴 소리가 들렸다. 많이 참았나 보다. 시윤이는 볼 일을 보고 나와서는 나에게 물어봤다.
“아빠. 근데 아빠는 지금 왜 일어난 거에여?”
“아빠? 회사 가려고 일어났지?”
“아, 그래여? 오늘 출근이에여?”
“어, 그럼”
시윤이와 뽀뽀를 하고 다시 인사를 나눴다. 시윤이는 혼자 있을 때 가장 매력이 빛나는 듯하다. 나도 그때가 가장 시윤이를 시윤이답게 보는 것 같고. 아무튼 아주 잠깐이었지만 뭔가 아기 같은 시윤이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퇴근하고 만난 아내는 무척 힘들어 보였다. 정말 많이 지쳐 보였다. 영업 시간 제한 때문에 나갔다 오라고 하지 못하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소윤아, 시윤아. 안 되겠다. 오늘 아빠랑 자자”
“네? 왜여?”
“엄마 너무 힘들어 보이시잖아. 엄마 좀 쉬시라고”
“그래여”
나갔다 오라고 할 수 없으면 들어가는 거라도 면하게 해 주자는 마음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쉬웠겠지만 몇 번의 학습으로 인해 의지적으로 엄마를 놔 줬다(그래 봐야 뭐 엄마는 거실에, 자기들은 방에 있는 거지만).
서윤이는 얼굴에 멍이 들었다. 안 그래도 남자 아이 같고 가끔 인상을 쓰면 꽤 험상궂은 얼굴이 연출되는데 마치 방금 막 권투 경기를 마친 사람처럼 눈 밑이 시퍼렇게 됐다. 작은 협탁 모서리에 부딪혔다고 했다. 그나마 날카롭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서윤아. 오늘 아빠랑 자자?”
“으?”
“아빠랑 자자. 엄마랑 빠이빠이 하고?”
“아이 디따. 시더어어”
“아니야. 오늘은 아빠랑 자자. 엄마는 빠이빠이 하고. 알았지?”
“네에에에”
역시나 막상 자러 들어가니까 영영 만나지 못하는 것처럼 울기는 했다. 대신 엄청 짧게. 막 울다가도 내가
“서윤아. 이제 아빠가 기도할 테니까 그만 울까?”
라고 했더니
“네헤헤헤헥. 흑흑”
하면서 울음을 멈추고 기도하는 자세를 취했다. 시윤이와 서윤이는 금방 잠들었는데 소윤이가 안 잤다. 꽤 한참을 기다렸는데도 안 자서 결국 먼저 나왔다.
“소윤아. 아빠 나갈게. 잘 자?”
소윤이는 뽀뽀하는 내 얼굴을 움켜 쥐고 갖은 애교를 떨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소윤이가 애교를 부리는 일은 흔하지 않다. 내 입술을 자기 얼굴에 그렇게 오래 머물도록 허락하는 일도 드물고.
“소윤아. 잘 자. 사랑해”
아내는 서윤이 소파(이자 소윤이 때부터 썼던 유서 깊고 낡은)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여보. 거기서 뭐 해. 불편하게”
“난 이상하게 여기가 편하더라”
아내는 그 뒤로도 한참 동안 거기 앉아서 휴대폰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내가 보기에는 그다지 편해 보이지 않았지만 빠져 나오기 힘든 방에 들어가지 않은 것만으로도 좀 낫지 않을까 싶었다.
얼른 영업 시간 제한이 풀려야 아내도 진정한 자유 부인이 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