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2.23(주일)
특별히 큰 일은 없었는데 모두 평소보다 조금 늦게 일어난 데다가 어찌하다 보니 10시 30분 예배에는 가기 어려울 것 같았다.
"여보. 오늘도 12시 10분 예배드릴까?"
"그럴까? 어차피 끝나면 소윤이 연습도 있고 하니까?"
"그래. 차라리 그게 나을 수도 있겠다"
소윤이는 오늘도 새싹 꿈나무 안 가겠다고 버텼지만 당연히 보냈다. 이렇게 보내다 보면, 5살 되고 그러면 언젠가는 포기하고 적응하겠지. 시윤이는 예배 시간 내내 깨어 있었다. 예배 잘 드리는 아이로 훈련시켜 보려고 노력했으나 성과는 없었다. 예배당에 앉아 있다가 막 돌아다니거나 울면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시윤아. 우는 거 아니에요. 돌아다니면 안 돼"
"으으"
"네 라고 해야지"
"데에"
대답은 넙죽넙죽 하지만 다시 들어가면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한다. 아직 시윤이는 때가 안 됐나 보다. 열심히 들락날락거리기만 했다.
5시에 성탄 발표회가 있었고, 3시 30분에는 최종 리허설이 있었다. 예배 마치고 카페 윌에 갔다. 가는 길에 시윤이가 잠들었다. 소윤이는 이제 더 이상 방해꾼이 아니다. 오히려 죽이 잘 맞으면 소윤이랑 얘기하면서 노는 게 재밌기도 하다. 나, 아내, 소윤이 모두에게 시윤이의 수면은 좋은 선물이었다.
한 시간 정도 있었는데 시윤이는 깨지 않았고, 놀랍게도 차에 옮겼는데도 깨지 않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양 쪽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참석여부가 불투명했다. 장모님과 장인어른은 어제 목포에 당일치기로 차를 타고 다녀오셨고, (내)엄마, 아빠는 오후 일정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였다. 소윤이는 계속 물었다.
"파주 할머니, 할아버지 오신대여?"
"신림동 할머니, 할아버지는여?"
정말 계속 물어봤다. 모두 다 오시는 걸 기대했다가 아무도 오지 못하는 최악의 사태가 도래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모두 오시게 되었다. 소윤이 연습 시간에 맞춰 다시 교회로 갔는데 시윤이는 계속 잤다. 아내가 소윤이를 데리고 먼저 교회에 가고 난 차에 남아 시윤이가 깨기를 기다렸다. 계속 잤다. 쭉 잤다. 이제 좀 일어나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데도 잤다. 영원히 잘 것처럼 잤다.
"여보. 시윤이 아직도 자?"
"어. 어떻게 하지? 깨워야 되나?"
"그래야 되지 않을까?"
잠든 지 2시간 정도 지났을 때, 여전히 자고 있는 시윤이를 카시트에서 꺼내 교회로 데리고 갔다. (내) 엄마, 아빠는 일찍 와 계셨다. 시윤이는 잠에 취한 건지 배가 고픈 건지 영 기분이 좋지 않고, 징징댔다.
소윤이는 계속 엄마랑 같이 연습 가겠다고 버티는 걸, 아내가 잘 설득해서 보냈다고 했다. 선생님이 전해준 말에 의하면, 연습하다가 몇 번 엄마 보고 싶다고 울고 그러기도 했는데, 연습은 열심히 잘했다고 한다. 궁금했다. 과연 소윤이가 무대 위에 올라가서도 열심히 할지. 평소 본인의 성격처럼 목석 스웩을 발산할지.
조금 일찍 가서 소윤이가 잘 보일만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양쪽 할머니, 할아버지도 모두 도착했고, 연습을 마치고 내려온 소윤이는 자기 응원 군단을 발견하고 쪼르르 달려왔다.
"소윤아. 잘해. 화이팅"
생각을 읽을 수 없는 표정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봤다고 막 들뜨지도 않고, 뚱한 표정이었다. 그렇다고 기분이 나쁘거나 우울한 표정도 아닌 그야말로 무표정. 한 번씩 우리 자리를 쳐다볼 때, 일부러 호들갑 떨면서 손을 흔들어도 마찬가지였다. 어리둥절한 상황에 적응하는 중인 건가.
발표회가 시작되고, 처음 부분에 새싹꿈나무의 순서가 있었다. 찬양 두 곡에 맞춰 율동을 하는 거였다. 맙소사. 곡이 시작되자마자 내심 예상하고 있던 것과 전혀 다른 광경에 깜짝 놀랐다. 소윤이는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 내 눈에는) 연고전 치어리딩을 방불케 하는 열정적인 몸짓을 선보였다. 성의가 있었고, 열심이 있었다. 가만히 서서 멀뚱히 여기저기 보지 않을까 싶었는데, 완전히 빗나갔다.
'아. 이래서 다들 발표회 발표회 하는구나'
찬양이 시작되고 나서 끝날 때까지 경주마에게 씌우는 눈가리개를 한 것 마냥, 오로지 소윤이밖에 안 보였다. 동작이 맞고 틀리고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무대에 올라가 있는 모습 자체가 묘한 감격과 기쁨을 선사했다. 올 한 해 가장 행복했던 5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자기 순서를 마치고 우리 자리로 온 소윤이에게 아내와 나를 비롯해, 할머니 할아버지들까지 칭찬 세례가 쏟아졌다.
"소윤아. 짱 잘했어"
"소윤아. 너 진짜 잘하더라"
"소윤아. 고생했어. 최고로 잘했어"
소윤이도 여러모로 기분이 좋았다. 큰 일 끝냈지, 다시 엄마 품으로 돌아왔지, 양쪽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함께 하지.
시윤이는 내내 잔잔한 징징거림과 몸부림을 보이다가 발표회 초중반쯤부터는 잠잠해졌다. 발표회를 마친 후 (소윤이네 식구가) 다 함께 식사를 하게 됐고, 본의 아니게 양가의 송년 모임을 겸한 자리가 되었다.
밥 먹을 때는 둘 다 배가 고팠는지 열심히 먹느라 정신이 없어서 어른들의 손이 별로 가지 않았다. 오히려 카페에 갔을 때, 둘 다 돌아다니고 왔다 갔다 하려는 걸 막느라 정신이 없었다. 대화에 집중하신 두 할아버지를 제외하고 나, 아내, 엄마, 장모님 이렇게 넷이나 있었는데도 두 녀석을 감당하는 게 보통 성가신 일이 아니었다.
긴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강소윤은 그 시간에도(거의 9시가 다 된) 잠들지 않고 버텼다. 하루 종일 낮잠 한 숨 안 자고, 연습도 하고 발표회도 하느라 피곤했을 텐데 도대체 어디서 그런 체력이 나오는지 정말 궁금할 따름이다. 오히려 2시간이나 잔 시윤이를 향해서는, 야간 근무의 각오를 다지고 있었는데 차에 타자마자 잠들었다. 이런 게 짬에서 나오는 차이인가. 25개월이나 더 산 인생 선배의 수면 회피 요령이랄까.
물론 눕히자마자 잠들기는 했다.
내일 우리 집에서 홈스쿨이 있는데, 집 상태는 홈스쿨이 아니라 홈어택 당한 상태라 아내랑 부지런히 집을 치웠다. 그러고 나니 자정. 아하하하하하하하.
괜찮아. 하루만 출근하면 또 기쁜 성탄절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