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2.24(월)
그동안은 홈스쿨 모임이 예열 및 준비 단계였다. (아직 두 가정뿐이지만) 서로 모여서 아이들이 같이 노는 정도라고 봐도 무방하게 큐티와 찬양, 성경 읽기 정도만 하고 있었다. 오늘부터는 나름의 시간표를 가지고 한글 수업, 쿠키 만들기 등을 시작했다. 정식 수업의 첫 발을 뗸 날이랄까. 두 명의 엄마는 선생님이 되고, 두 명의 아이(소윤이, 시안이)는 학생이 되고, 두 명의 막내(시윤이, 다율이)는 깍두기이자 방해꾼이 되는. 나름 수업의 모양새를 갖추고 대열을 맞춰 앉은 아이들 사진을 보며 흐뭇했다.
"여보. 잘했어?"
"어. 뭐 괜찮았어"
"쿠키 만들기도 잘했어?"
"음. 알지? 아수라장이었어"
"역시"
"둘째들이 있으니 어쩔 수 없더라고"
쉽지 않은 길인 건 분명하다. 사서 고생하는 듯한 느낌도 있고. 고생이라도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끼니까 가는 거다. 모두 화이팅.
맙소사. 오늘이 크리스마스이브라니. 가뜩이나 분위기도 안 나는데 출근해서 일하고 있으니 그냥 보통의 월요일 같았다. 신혼 시절, 울산에 있을 때는 성탄절 분위기 느껴보겠다고 울산 시내에 나가기도 하고 그랬던 게 떠올랐다. 막상 나가보니 기계가 쏘아대는 무스 뭉친 것 같은 인공눈의 허접함을 마주했다, 그러고 나서 아내와 함께 서울을 동경했었다. 명동 거리의 팽창된 분위기와 수많은 사람을 그리워했었다. 지금은 울산도 아닌데 명동은커녕 명동 칼국수도 못 가는 이 현실.
"여보. 외식은 부담스러우니까 집에서 치킨이라도 먹을까? 애들이랑?"
"그럴까? 그것도 좋지"
원래 아내의 자유시간이 있는 날이지만, 아내는 자유시간을 포기했다. 집에 가는 길에 치킨과 피자를 포장해서 들고 갔다. 치킨과 피자가 성탄 분위기와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아직도 밝혀내지 못했지만, 어쨌든 이를 매개로 소윤이한테 성탄절이 왜 기쁜 날인지를 한 번이라도 더 설명해 줄 수 있으니 의미가 있다고 애써 적어 본다. (더 큰 의미는 내 구강과 식도를 거쳐 위에 안착하는 치킨의 풍미겠지만)
날 닮아 고기에 호의적인 아이들은 피자는 거들떠도 안 보고 치킨에 집중했다. 아내는 영 시원찮았다. 치킨과 피자는 두고 소윤이 주려고 만든 주먹밥을 자기가 다 먹었다. 치킨과 피자를 다 먹고 나니 평소보다 매우 늦은 시간이었다.
"아빠. 오늘은 왜 이렇게 늦게 자여?"
"어. 오늘은 성탄절 전날이니까. 그 기쁨을 누리는 거지"
"예수님 생일이니까?"
"그렇지"
이제 소윤이는 크리스마스 선물에 대해 희미하게나마 인식이 구체화되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기에는 찝찝했다. 아내가 애들을 데리고 들어가서 재우고 나는 스타필드에 가서 애들 선물을 사 오기로 했다. 아내와 나도 크리스마스이브를 이렇게 보내기에는 아쉬우니 와인이라도 한 잔씩 할까 싶어서 와인도 사 오기로 했다. 마찬가지로 와인 한 잔과 성탄절 전날 밤이 어떤 유의미한 관계가 있는지는 밝히지 못했다.
와인이고 뭐고 아내 상태가 영 이상했다. 애들 재운다고 들어간 아내의 모습은 누가 봐도 '나 이제 잘 거야'라고 말하는 듯했다. 목이 칼칼하고 으슬으슬하다고 하며 이불을 뒤집어쓰는 모양새가 영 불길했다. 아니나 다를까 스타필드에서 카톡을 보내보니 답장이 없었다. 그대로 잠드는 게 불길한 게 아니라, 뭔가 큰 병치레의 전조증상 같은 싸한 느낌이라 불안했다.
찰흙을 갚고 싶다는 소윤이를 위해 플레이도우를 사고, 시윤이 선물로는 당겼다가 놓으면 앞으로 나가는 조그마한 자동차를 샀다. 아빠의 바람을 조금 담아 [벤츠 G바겐]으로.
역시나 집에 도착하니 두 아이와 함께 아내는 숙면을 취하고 있었다.
선물을 어떻게 전달할까 고민하다가 깜짝 선물의 방식을 택하기로 했다. 사실 소윤이한테는 성탄의 진짜 주인공은 예수님이며, 산타클로스는 사실 없다는 걸 미리 말해줬다. 너무 이른 시기에 동심을 파괴했나 싶기도 했지만, 그렇게 했다. 일단 깜짝 선물로 구성을 짜 놓고 소윤이의 반응을 보고 대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선물을 포장지로 포장했다. 그냥 두려니 밋밋해서 뭔가 더 할 게 없을까 머리를 굴리다가, 각자의 선물에 각자의 얼굴을 그려주기로 했다. 아, 물론 내 똥 손으로.
연필로 밑그림을 그리고, 수정한 뒤 네임펜으로 최종본을 완성했다. [merry christmas]라는 인사도 쓰고 나니, 아내한테도 인사를 건네고 싶었다. 아내한테는 그림만 선사했다. 꽃이라도 사 올 걸 그랬다. 아까는 생각이 안 났다.
프러포즈하고 자기가 펑펑 우는 남자처럼, 혼자 뿌듯했다.
그림에 너무 에너지를 쏟았던 탓인지, 새로 산 의자가 너무 편해서인지 의자에 앉아 조는 나를 아내가 깨웠다.
애들아 메리크리스마스.
가영이도 메리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