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2.25(화)
소윤이와 시윤이 모두 선물을 만족스러워했다. 소윤이야 직접 말로 표현을 아니까 당연히 알 수 있고, 시윤이도 "아꺼. 아꺼(내 꺼. 내 꺼)" 하면서 애착을 보이는 걸 보면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아빠. 근데 누가 놓고 가셨지?"
"그러게"
"산타 할아버지가 놓고 가셨나?"
"그런가? 산타 할아버지는 아닌 것 같은데, 예수님이 놓고 가신 거 아니야?"
"아빠. 내가 TV에서 봤는데 산타 할아버지가 놓고 가시는 거래"
"그래?"
산타 할아버지는 없다고 설명해 준 적이 있는데도 소윤이는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를 믿는 눈치였다. 그냥 얼버무렸다. 예수님이 선물을 주고 간다고 하는 것도 이상하고, 그렇다고 엄마, 아빠가 준비한 거라고 하면 너무 재미없고. 예전에 모든 사실을 말해줬음에도 기왕 까먹은 김에, 좋을 대로 생각하라고.
아내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전형적인 목감기 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성탄절만 아니었으면 집에서 꼼짝도 안 하고 요양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나쁜 상태였다. 교회에 가는 것도 버거운데 오늘은 시윤이 세례식도 있는 데다가 나는 드럼도 쳐야 해서 평소보다 아내의 부담이 오히려 더 컸다.
세례 대상자는 맨 앞자리에 앉아야 했고, 시윤이는 드럼 치는 자리에 앉은 나를 보더니 계속 나한테 오려고 용을 썼다. 그걸 막아야 하는 아내는 절로 인상을 썼고. 가만히 누워서 숨만 쉬어도 힘든 상황에 작정하고 힘을 쓰는 시윤이를 막아야 하니 얼마나 힘들겠나.
진중하고 정갈한 마음가짐으로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아들의 세례를 진지하게 준비할 겨를이 없었다. 아내는 1초 1초가 견뎌야 하는 버거운 순간일 뿐이었다. 세례식 마치고 나서도 계속 드럼을 쳐야 했고, 맨 뒷자리로 이동한 아내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했다. 끊임없이 몸부림치며 아내를 힘들게 하는 시윤이의 모습과 어쩔 줄 몰라하는 아내의 모습이 동시에 보였다. 예배가 끝나고 아내와 아이들에게 가보니 아내는 녹초가 되어 있었다.
교회에 오기 전 엄마에게 전화를 했었다. 아빠가 받았다.
"아빠"
"어. 왜?"
"아니. 엄마, 아빠 오늘 뭐 하세요?"
"우리? 글쎄. 남선교회 선물 사러 백화점 갈까 했는데"
"아. 그래요?"
"왜?"
"아니. 오늘 갈까 했죠"
"왜?"
"아. 가영이가 지금 몸살이 났는데, 애들 데리고 가서 좀 쉬게 할까 싶어서요"
"아. 그래? 그럼 와"
"알았어요. 엄마한테도 말해주세요"
아내는 파주(친정)나 신림동(시댁)에 가는 게 어떠냐고 물었고, 난 신림동에 전화를 했다. 왠지 오늘 하루로 끝나지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다면 내일부터는 파주에 가야 하니 오늘은 신림동에 있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아내도 시댁이라고 불편해하지 않으니까.
예배 끝나고 바로 신림동으로 출발했다. 아내는 점점 안 좋아지는 것 같았다. 소윤이는 할머니 집에 간다고 신났고, 시윤이는 잠들었다. 마치 그저께처럼 시윤이는 도착해서도 깨지 않았다. 아내랑 소윤이가 먼저 올라갔다. 한 30분 정도 더 자고 나서 시윤이도 깼다. 아내는 곧장 방에 들어가 누웠다.
아내는 두 시간 정도 자고 나왔는데, 예상한 대로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여보 좀 어때?"
"그냥 비슷해"
잠깐 일어나서 밥만 조금 먹고, 다시 누웠다. 그렇게 또 두어 시간을 잤다. 집에 있었으면 엄마 찾고 난리도 아니었을 텐데,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으니 소윤이랑 시윤이도 엄마를 찾지 않고 잘 놀았다. 그나마 애들이 울지 않고, 떼도 안 쓰고 잘 놀아서 엄마, 아빠의 휴일을 빼앗은 게 덜 죄송했다.
점심을 늦게 먹기도 했고, 소윤이랑 시윤이는 하도 군것질을 많이 해서 저녁을 잘 먹을 것 같지도 않았다. 저녁은 거르고 집에 갈 채비를 해서 차에 탔다. 아내의 상태는 여전했다. 아니, 오히려 나빠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시윤이는 잠들었고, 소윤이는 버텼다. 버티긴 했지만, 집에 도착해서 재우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일단 누우면 금방이다.
아내는 하도 자서 잠이 안 오고 허리가 아프다며, 차라리 거실에 나가서 책을 읽으며 잠을 청해보겠다고 했다. 좋은 생각인 것 같았다. 30분 안에 졸음이 오지 않을까 예상했다.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주고 가셨다. 산더미 같은 설거지와 난장판인 집. 아내가 책을 읽는 동안 집을 치우고 설거지를 했다. 한창 설거지를 열심히 하다가 슬쩍 아내를 봤는데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여보"
"어어"
"역시. 30분이 채 안 되는구만"
"그러게"
아내는 그렇게 들어가서 잤다.
내일은 출근하는 길에 병원에 들렀다가 파주에 아내와 아이들을 데려다 주기로 했다. 요새 하도 독감이 유행이라 걱정이 되면서도 '설마 독감이겠어' 하는 마음도 있고.
아무튼 성탄 분위기는 전혀 못 누렸어도, 기억에는 확실히 남을만한 성탄절이었다.
시윤이에게 좀 미안하다. 굉장히 귀하고 소중한 날인데, 본의 아니게 엄마에게 주인공 자리를 뺏겨 버렸네.
시윤아. 축하해. 세례 받은 거.
나중에 네 생각을 더해 너의 입술로 고백하는 그 날.
오늘이 더 귀하게 느껴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