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1.18(화)
아내와 아이들은 오랜만에 형님(아내 오빠)네 간다고 했다. 얼마 전 출산을 한 형님네 부부가 오늘 조리원에서 나와 집으로 온다고 했다. 아내도 아내지만 소윤이와 시윤이가 사촌 동생을 무척 보고 싶어 했다. 집으로 오는 날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게 민폐가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당사자(아내와 형님네 부부)간의 합의(?)가 완료된 사항이었다.
아내가 형님네 아기를 열심히 찍어서 보내줬다. 우리 아이들이 함께 찍힌 사진도 있었다. 우리 집에서는 막내고 아기인 서윤이가 마치 거인처럼 보였다. ‘니가 엄마 젖을 빨 때 난 쌀밥을 씹었어’의 실사판이었다. 그렇게 큰 서윤이가 머리카락은 훨씬 빈약했다. 태어난 지 보름밖에 안 된 아기도 검은 머리카락이 풍성한데, 태어난 지 655일이나 된 서윤이는 여전히 두피가 훤히 보였다. 서윤이를 처음 보거나 오랜만에 보는 사람이야 ‘얘, 머리 민 거야?’라고 질문을 하지만,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자주 본 사람은 ‘와, 머리 많이 자랐네’라고 말하곤 한다. 이제 그런 사람들마저도 돌아설 판이다.
“와, 그런데 서윤이는 진짜 머리 안 난다”
라면서. 이제는 딸이라고 말을 해 줘도 ‘그럴 리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반응도 심심찮게 마주한다. 난 즐기고 있다. 어차피 언젠가는 자랄 머리카락, 지금의 빠박이 시절이 그리워질 날이 올 거다.
저녁에는 목장 모임이 있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치과에 들렀다 오느라 집에 엄청 일찍 오지는 못했다. 소윤이의 새로 나는 어금니 쪽의 잇몸이 떨어진 것처럼 너덜너덜(?)했고, 소윤이도 아프다고 하길래 치과에 갔다. 다행히 그리 큰 문제는 아니라고 하셨다. 이가 새로 나면서 나타나기도 하는 현상이라면서.
치과까지 갔다 온 덕분에 아내는 저녁 준비하느라 바빴다. 사실 항상 바쁘지만. 다른 날에 비해서 아이들을 재우기 위한 준비의 진도가 좀 느린 편이었다. 난 먼저 밥을 먹고 일어나서 설거지를 했다. 어차피 아이들은 아직 저녁을 먹고 있었기 때문에 설거지라도 줄여 놓는 편이 나은 선택이었다. 목장 모임을 시작하기 전에 설거지를 거의 다 끝냈다. 아이들은 그때쯤 씻기 시작했다.
아내는 아이들에게 아빠는 목장 모임을 시작하셨으니 접근하지 말라고 얘기했다. 우리에 던져진 커다란 곰인형에게 관심을 보이는 아기 맹수들처럼, 소윤이와 시윤이는 내 주변을 서성이다가 은근슬쩍 나에게 붙기도 하고 내 무릎에 앉기도 하고 그랬다. 목장 모임에 방해가 되기는 했지만 아이들과 시간을 못 보낸 미안함 때문에 열심히 밀어내지는 않았다. 아내가 다시 한번 아이들에게 주의를 줬다.
“소윤아, 시윤아. 아빠 목장 모임하고 계시니까 근처에 가지 마세요”
나 혼자 고상한 느낌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전쟁통인데 나 혼자 소파에 앉아 목장 모임을 했다. 씻고 잘 준비를 마친 소윤이는 소파에 앉았다. 어른 한 사람 정도 앉을 만한 공간을 비워두고 내 옆에 앉은 거였다. 내가 먼저 손을 뻗어서 소윤이 손을 잡았다. 손을 잡은 채로 몇 분 앉아 있었다. 난 여전히 목장 모임을 하는 중이었고.
잠시 후 아내가 소윤이를 불렀다. 목장 모임에 집중하느라 자세히 듣지는 못했지만 ‘아빠에게 가지 말라고 했는데 왜 자꾸 엄마 말을 듣지 않고 가느냐’는 내용의 꾸지람인 듯했다. 그 뒤에 이어지는 말로 유추해 보건대, 소윤이가 뭔가 뉘우치거나 잘못했다는 표정 대신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은 듯했다. 어쩌면 그럴 만도 했다. 내가 먼저 손을 잡고 소윤이를 눌러 앉게 했으니까. 아내에게 말을 할까 하다가 목장 모임을 하는 중이기도 했고, 소윤이와 시윤이가 아내의 말을 계속 잘 듣고 지킨 건 아니어서 그대로 뒀다.
아내는 며칠 전부터 등 통증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 처음 나타난 증상은 아니고 언제부터인가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통증이다. 출산과 육아를 반복하면서 몸이 많이 상했는지 머리부터 발끝까지(진짜 머리부터 발끝까지) 순환하며 통증이 나타나는 느낌이다. 등 통증 전에는 손가락 마디가 아프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