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왔는데 집에만 있을 수 없지

22.01.19(수)

by 어깨아빠

어제 퇴근할 때부터 라디오에서 ‘내일은 많은 양의 눈이 내릴 것으로 예상되니 대중교통을 이용하라’는 내용을 계속 말했다.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기에는 효율이 너무 떨어지니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다. 대신 ‘내일은 밤에 애들이랑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어제부터 했다. 사무실에 앉았을 때쯤부터 눈발이 굵어졌다.


“눈 많이 오네. 혹시 여보가 애들 데리고 나가기 힘들면 밤에 나가자”

“응. 그러자. 내가 낮에 가능할까?”


아마 힘들 거라는 내용의, 비관적인 답장을 아내에게 보냈다.


눈이 예보처럼 많이 오지는 않았다. 내렸다 멈췄다를 반복했다. 차가 다니는 도로는 금방 녹았고 사람이 다니는 길에는 조금 쌓이는 딱 그 정도였다. 아내가 보내준 사진 속의 아이들은 어제 입고 잔 내복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낮에 못 나가고 계속 집에만 있었다는 얘기였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안 나가기에는 또 아쉬울 정도로 눈이 쌓이긴 했다. 저녁에는 웬만하면 나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작년 초에도 눈이 쌓여서 밤에 나간 적이 있었다. 그때는 아이들 저녁을 주먹밥으로 먹여서 조금이나마 시간을 당겼다. 오늘은 미처 그러지 못했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저녁을 먹었다. 덕분에 아주 눚은 시간에 집에서 나가야 했고 아내와 나의 피로도 거의 한계선에 다다랐다.


“나갈 거야?”

“응. 나가고 싶은데 여보도 귀찮긴 하지? 나만 이런 건 아니지?”


아내도 나와 비슷했나 보다. 난 마음속으로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다음을 기약해 보자고 할까’라는 생각을 수십 번도 더 했다. 정말 피곤했다.


작년에 갔던 곳(교회 근처 아파트 단지 사이 보행로)으로 갔다. 눈이 많이 쌓인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온통 하얗게 보일 정도는 됐다. 서윤이까지 내려줬다. 다들 엄청 잘 놀았다. 서윤이도 언니, 오빠에게 껴서 열심히 눈을 가지고 놀았다. 나오기 전에는 고민이 온 지구를 가득 채울 만큼이나 컸지만 역시 막상 나오면 싹 사라진다. 세 녀석이 눈 위에서 깔깔거리며 노는 모습을 보니 잠시나마 피로를 잊었다.


꽤 한참 놀았다. 다들 광대뼈와 볼이 발갛게 익을 정도로. 눈사람을 만들 만큼은 아니었지만 밟고 뿌리며 놀기에는 충분한 눈이었다. 또 밤에 보는 눈이 주는 특유의 매력도 있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만족스러운 듯 별 미련을 남기지 않고 바로 차에 올라탔다.


“소윤아, 시윤아. 오늘 진짜 좋았지?”


마치 ‘내가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고생했으니 너희는 반드시 행복해야만 해’라고 생각하며 ‘좋다’를 강요하듯 여러 번 물어봤다. 그때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성실하게 대답을 해 줬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만 좀 물어보세여. 아빠’라며 면박을 주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시계를 보고, 아내도 나도 2-3초간 멍해졌다.


“헤엑. 벌써 10시야?”


육아 퇴근도 매우 늦었고 잠시 종적을 감춘 듯했던 피곤함도 고개를 쳐들었지만 후회는 없었다.


“여보. 그래도 좋았다. 그치?”

“맞아. 애들도 너무 좋아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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