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1.21(금)
아내의 등에 머물던 통증은 결국 머리로 올라왔다. 등과 어깨와 머리, 이 사이를 오가는 통증은 한 놈인 게 틀림없다. 그저 위쪽으로 올라오기만 한 게 아니라 통증도 더 심해졌다고 했다. 서윤이 일을 겪고 나서는 알게 모르게 약간의 건강 염려증 같은 게 생겼다. 아내의 두통에 관해 오래 생각하다 보면 진지하게 검사를 받아 봐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퇴근할 무렵에는 아내가 전화를 했다.
“여보. 우리 오늘 저녁은 시켜 먹을까?”
“그럴까? 왜? 많이 아파?”
“어, 도저히 저녁은 못하겠다”
“그래. 시켜 먹자”
목소리에서 이미 느껴졌다. 아내의 두통이 어느 정도인지. 통화를 끊고 아내가 배달 앱에 등록된 어느 덮밥집을 카톡으로 보냈다. 퇴근해서 막 차에 타려고 할 때였는데 순간 점심시간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내가 처음 보냈던 곳 대신 중국 음식을 먹기로 했다. 기왕 시켜 먹는 거 시윤이가 좋아하는 탕수육이라도 먹자는 의도가 담겼다.
“시윤아. 엄마, 아빠가 일부러 시윤이 좋아하는 탕수육 먹자고 한 거야”
생색은 확실하게. 생색이 곧 표현이니까. 표현이 곧 사랑이고.
집에 도착했을 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아내의 상태가 괜찮았다. 난 아내가 거의 바닥을 기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다. 나중에 아내에게 들었는데 다행히 그때는 최고점을 지났을 때라고 했다. 그전까지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 했다.
저녁에 교회에 가야 해서 서둘러 저녁을 먹었다. 하필 오늘따라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가야 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아직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있을 때, 일어나서 나왔다.
“얘들아. 아빠 갈게. 여보. 갈게”
건강하고 멀쩡한 아내를 두고 떠나는 것도 언제나 마음이 무거운데, 두통으로 고생하는 아내를 두고 떠나려니 더 심란했다. 아까보다는 나아졌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었다. 다시 집에 돌아왔을 때는 아내의 상태가 더 좋았다. 이미 많이 늦어서 그렇게 많은 시간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금요일 밤의 수다를 즐기며 보내는 게 가능할 정도였다. 두통이 그리 길게 가지 않고 끝날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집에 돌아오면서 빼빼로를 샀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줄 작은 선물이었다. 메모지에 짧은 편지도 썼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오늘도 내가 퇴근하자마자 편지를 건넸다. 내용은 둘 다 비슷했다. 사랑하고 힘내라는. ‘힘내’라는 말에 진짜 힘이 나는 경험은, 의외로 별로 해 본 적이 없다. 아이들의 편지를 받으면 잠시나마 힘이 나고 피로가 사라진다. 그래야만 하는 의지도 생기고. 나의 작은 보답이기도 했다.
너희의 편지가 얼마나 힘이 되는지, 소윤이는 동생들 챙기느라 고생하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시윤이는 가운데서 이리저리 치이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이런 내용으로 아주 짧게 썼다. 빼빼로도 맛있게 먹고 내 사랑도 맛있게 먹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