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차지 할 수 없는 할머니

22.01.22(토)

by 어깨아빠

아내와 둘이 가야 하는 약속이 있었다. 아내와 나에게 딸린 세 명의 자녀를 어떻게 해야 하나 많은 고민을 했다. 마침 오늘 소윤이가 속한 교회 부서에서 여덟 살 환영회도 한다고 해서 더 복잡했다. 소윤이도 환영회에 가고 싶어 했고. 그러다 환영회에 부모도 함께 참석해야 한다는 걸 알게 돼서 오히려 속 편하게 불참을 결정했다. 어차피 우리는 못 가니까. 소윤이에게도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 결국 내 부모님께 아이들을 모두 맡기기로 했다. 덕분에 환영회에 참석하지 못하는 소윤이의 아쉬움도 많이 사라졌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밥을 먹이고 바로 출발하자고 이야기를 했다. 물론 그대로 지키지는 못했다. 딱히 게으르게 움직인 것도 아닌데 늦어졌다. 그래도 또 그렇게 늦은 것도 아니었고. 아무튼 부지런히 챙겨서 출발했다. 카페에 들러서 커피를 샀던 걸 보면 그래도 나름 시간의 여유가 있었나 보다.


부모님 집에 도착해서 아이들만 넘겨 주고 바로 떠났다. 서윤이를 낳고 나서는 셋을 동시에 맡긴 게 처음이었다. 아주 잠깐 커피 사러 가는 정도는 있었어도 이렇게 길게 맡기는 건 처음이었다. 서윤이가 잘 있을지는 조금도 걱정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부모님이 괜찮을지 걱정이 됐다. 물론 부모님은 ‘어, 되지. 맡겨’라고 시원하게 답하셨지만.


데이트하려고 맡긴 건 아니었지만 아내와 둘이 움직이니 데이트하는 기분이 났다.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잠시 카페에 들러 커피도 마셨다. 카페의 분위기는 영 별로였지만 아내와 둘이 커피를 마시는데 의미를 뒀다. 우리 자리 양옆으로 커플로 보이는 남녀가 한 쌍씩 앉아 있었다.


‘우리도 커플로 보면 어쩌지. 애 셋이나 있는 부부인데’


라고 망상을 하다가 화장실 가서 거울을 보고는 그럴 리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쯤 아빠가 애들 사진을 보내줬다. 애들 모습이 어떤지는 자세히 보지 못했다. 초점이 너무 흔들려서. (내) 엄마와 아빠는 아이들을 데리고 고깃집에 가셨다고 했다. 협소하고 숯불 연기가 피어오르는 그런 곳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신 엄마, 아빠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애들 고기 잘 먹더라. 특히 소윤이 진짜 잘 먹더라”


보나 마나 엄마와 아빠는 많이 못 드셨을 거다. 이게 단지 돈 문제가 아니더라도 함께 앉은 아이들이 너무 잘 먹으면 왠지 모르게 주춤하게 되는 게 있다.


소윤이도, 시윤이도, 서윤이도 엄마와 아빠의 빈자리를 전혀 느끼지 않았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너무 잘 놀았다. 다만 소윤이가 왠지 평소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평소에 할머니 집에 갔을 때에 비하면 뭔가 덜 까부는 느낌이었다고 해야 하나. 시윤이는 오히려 엄청 까불었는데.


“소윤아. 오늘 재밌었어? 할머니랑 많이 놀았어?”

“재미는 있었는데 할머니랑 많이 놀지는 못했어여”

“왜?”

“서윤이가 독차지해서”


역시 이유가 있었다. 소윤이가 할머니를 서윤이에게 양보하고 상황을 이해하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소윤이는 할머니와 자도 되냐고 물어봤고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소윤아, 시윤아. 잘 때라도 할머니랑 마음껏 놀아”


자러 들어간 시간도 엄청 늦었는데 들어가서도 한참 동안 목소리가 들렸다. 아내도 서윤이를 재우러 들어갔는데 당연히 다시 나오지 못했다. 아빠와 나는 한참 대화를 나눴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빠와 내가 대화를 마치고 자러 들어갈 때까지도 안 자고 있었다.


그렇게 할머니와 할 얘기가 많았는데 막냇동생에게 양보하느라 얼마나 아쉬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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