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1.23(주일)
거실에서 소윤이와 시윤이가 깨서 떠드는 소리는 진작부터 들렸다. 우리(아내와 나)와 함께 잔 서윤이도 잠에서 깼는지 뒤척이는 게 느껴졌다. 조금이라도 더 자려면 눈을 붙이고 자는 척을 해야 하는데 서윤이와 놀고 싶은 욕구를 참기 어려웠다.
“서윤아”
“아빠아아?”
“어, 서윤이 잘 잤어?”
“네에. 아빠도 달 다따여어어어어?”
“어, 아빠도 잘 잤어”
“아빠아. 나다자여어어. 나다자여어”
“그래, 나가자”
서윤이는 아빠와 노는 건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거실에서 언니와 오빠가 뭔가 재밌게 하는 듯한 소리가 계속 들렸고, 서윤이는 조금이라도 빨리 거기 합류하고 싶었다. 거실 문을 열고 서윤이만 내보낼까 하다가 어차피 교회에 가려면 서둘러야 해서 나도 같이 나왔다. 아내도 곧 따라 나왔다.
부모님 집에 오면 주일이어도 아침을 먹게 된다. 아침도 먹고 케이크도 먹었다. 어제 집에 돌아오면서 나름의 감사 선물로 사 온 케이크였다. 부모님 드시라고 사 온 거였지만 소윤이와 시윤이가 제일 많이 먹었다. 물론 그럴 거라고 예상도 했고. 케이크까지 먹고 나니 시간이 무척 촉박해졌다. 평소에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3부 예배였다. 4부 예배도 있으니 좀 여유롭게 4부 예배를 드릴까도 고려했지만 4부 예배 시간에는 시윤이가 속한 새싹꿈나무 예배가 없다는 게 생각났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3부 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그래도 엄청 많이 늦지는 않았다. 차가 막혀서 조금이라도 더 늦어지면 그냥 4부 예배를 드릴 마음도 있었는데 다행히 그 정도는 아니었다. 아내와 아이들을 먼저 내려 줬다.
“여보. 이따 올 때 아기띠 가지고 와요”
“어. 차에 있어?”
“네”
도대체 이 정신으로 어떻게 사는 걸까. 주차를 하고 아무것도 들지 않고, 아기띠는 그대로 차에 두고 왔다.
“여보. 아기띠 안 들고 왔어?”
“아, 맞다. 그냥 놓고 왔네”
아기띠는 이제 꼭 필요한 물건은 아니긴 하다. 아기띠를 하기에는 서윤이가 많이 무거워졌다. 소윤이 어렸을 때에 비하면 아내와 나의 몸과 뼈도 많이 약해졌다. 함부로 아기띠를 하지 않는다. 그래도 교회에서는 요긴하다. 서윤이가 조금 졸린 기미가 보일 때 아기띠를 해서 안아 주면 금방 잠이 든다. 아기띠가 있으면 서윤이를 잠시 동안 포박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없으면 굉장히 바쁘고 산만해지고. 역시나 서윤이는 예배 시간에 자지 않고 끊임없이 사부작거렸다. 요즘 서윤이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 아기띠가 있었어도 안 잤을지도 모르겠다.
대신 점심 먹고 집에 오는 길에 잠들었다. 집까지 올라올 때는 나에게 기대서 잘 잤다. 조심스럽게 방에 눕혔는데 부릅 눈을 떴다.
“어, 서윤아. 괜찮아. 괜찮아”
뭐가 괜찮다는 거지. 다급히 서윤이의 미간을 쓸어내리며 강제로 안구를 폐쇄하기 위해 노력했다. 서윤이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다시 잠을 청하는 듯 눈을 감으면서 손가락을 빨았다. 그러다 다시 눈을 뜨기도 했지만 뭔가 잘 것 같았다. 열심히 등을 토닥이며 기다렸는데 얼마 안 가서 벌떡 일어나더니 문으로 걸어갔다.
“아빠아. 나가다여어어”
“서윤아. 좀 더 자야지”
“이이이이. 나가다여어엉”
“그래, 나가자”
언니와 오빠를 보더니 환하게 웃었다.
아내와 나는 오랜만에 아침을 먹었더니 점심시간이 되었는데도 배가 별로 안 고팠다. 평소에 소윤이와 시윤이도 주일에는 배가 별로 안 고팠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점심을 그렇게 잘 먹었던 게 고맙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했다. 밥상머리 앞에서는 언제나 감사히 맛있게 먹으라는 나의 가르침을 잘 따라 주는 것 같았다. 막상 내가 그 입장이 되어 보니 밥 생각이 하나도 안 났다.
점심을 먹고 아내가 다시 서윤이를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낮잠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잠깐 잤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재우는 게 좋긴 했다. 안 그러면 늦은 오후쯤부터 그치지 않고 짜증을 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걸 막으려면 조금이라도 더 재우는 게 나았다.
“아빠. 우리 그거 언제 해여?”
“뭐?”
“그때 레고랑 같이 가져온 음식 만드는 거여”
“아, 맞다. 그것도 있었지”
“아빠. 지금 할까여?”
“지금?”
또 본능적으로 '다음에’를 말하려다가 아이들에게 미안해서 입을 닫았다. 이미 여러 번의 ‘다음에’를 지나친 뒤였다. 기약 없는 ‘다음에’에도 소윤이와 시윤이가 그렇게 공손히 말하는데 습관성 ‘다음에’를 또 말하는 건 도의가 아니었다.
“그럴까? 지금 해 볼까?”
찾아보니 그런 걸 가루쿡이라고 했다. 미니어처처럼 작은 크기의 젤리와 빵을 만드는 거였다. 아주 작은 상자라 오래 걸릴 것 같지는 않았다. 아무리 간단해 보여도 서윤이가 있을 때는 도저히 엄두를 내기 어려운 구성이었다. 물과 가루. 잠깐 한 눈 팔면 가루가 흩날리고 물이 흥건해지기 딱 좋았다. 서윤이가 없을 때가 기회였다.
소윤이가 너무 좋아할 만한 놀이였다. 가루를 풀어서 젓고, 그걸 틀에 담고, 빵 반죽(엄지손가락만큼 작은)을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번갈아가면서 모든 공정에 참여하도록 기회를 줬다.
“소윤아, 시윤아. 너네 아니었으면 아빠는 이런 거 절대 안 했겠다”
“왜여?”
“어. 아빠 성격이랑 너무 안 맞아”
차라리 진짜 요리를 같이 하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진짜 요리를 함께 하면 금방 '섣부른 생각'이었다고 후회할 가능성도 크지만.
자러 들어갔던 서윤이가 문을 벌컥 열고 다시 나왔다. 아내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작은방에 앉아 있었다.
“하아. 안 자네”
“여보가 잠들었어?”
“어, 내가 잠들었네”
서윤이는 나오자마자 언니와 오빠의 요리(?)에 참견을 했다. 잘 막으면서도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적당한 힘을 주느라 애를 먹었다.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요리를 마쳤다. 원래 먹지 않는 조건으로(딱 봐도 합성 물질의 대향연이라서) 시작했지만, 소윤이와 시윤이가 너무 궁금해했다. 내가 생각해도 그렇게 만들고 맛도 안 보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또 말 그대로 가루쿡인데 그 조그만 거 조금 먹는다고 얼마나 안 좋겠나 싶기도 했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주 만족스럽게 만든 빵과 젤리를 먹었다.
“여보가 만든 떡볶이 먹고 싶다”
“내가 만든 떡볶이가 뭐야?”
“그냥 여보가 집에서 만드는 떡볶이”
“이따 저녁에 먹을까?”
“그럴까”
“생각해 보고 먹을 거면 이따 전화해. 오는 길에 사 오면 되니까”
축구를 마치고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아내는 떡볶이를 먹자고 했다. 마트에 들러서 떡과 어묵을 샀다. 아이들은 저녁을 먹고 있었다. 씻기고 책 읽는 건 내가 했다. 그렇다고 아내가 쉬는 건 아니었다. 아이들이 저녁 먹은 걸 정리했고 서윤이도 씻겼다. 서윤이는 요즘 모든 영역에 걸쳐 ‘엄마 껌딱지’ 현상이 나타난다. 똥 닦을 때도 엄마를 찾는다. 그렇게 엄마를 원해서 갔으면 엉덩이라도 잘 댈 것이지, 막상 가면 씻기 싫다고 막 몸을 뻗치니까 아내가 무척 힘들어한다. 아주 가끔, 진짜 피곤하고 귀찮을 때는 똥까지 엄마에게 가지고 가는 서윤이가 고마울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안타깝다. 어떻게 설득을 해도 잘 안 넘어온다.
아내가 애들을 데리고 들어간 뒤에 샤워를 했다. 샤워를 하고 나와서도 바로 떡볶이를 만들지 않고 조금 틈을 뒀다. 어차피 아내가 바로 나오지는 못할 테니까. 적당한 시간에 떡볶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막 국물을 끓이려던 참에 아내가 메시지를 보냈다.
“소윤이 안 자서 기다리는 중”
그 메시지를 보고 나서 잠시 요리를 중단했다. 한 10분쯤 지났을 때 거의 잠들었다는 소식이 도착했다. 다시 요리를 시작했고 아이들을 재우러 들어간 지 1시간이 다 돼서야 떡볶이를 두고 마주 앉았다.
“주말이 날아간 것 같네”
“그러게. 어제 거기 갔다 와서 그런가”
유독 그런 기분이었다. 아마 아이들하고 그만큼 시간을 많이 못 보내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 아내는 아니었겠구나. 아내는 오늘 내내 같이 있었구나. 나만 놀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