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퇴근해서 야근하기

22.01.28(금)

by 어깨아빠

연휴 전날이라 조금 일찍 퇴근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처치홈스쿨 선생님을 만나는 약속이 있었다. 내가 퇴근할 무렵에도 아직 만나는 중이라 나도 그곳으로 갔다. 내가 도착했을 때 이미 자리를 정리하고 주차장에 나와 있었다. 아이들은 주차장에 있는 돌과 모래를 가지고 놀았는데 유독 소윤이 옷에만 흙과 모래 자국이 가득이었다. 검은색 옷이라 그렇기도 했겠지만 소윤이가 일부러 더 격정적으로 놀기도 했다. 소윤이는 그렇게 놀아야 직성이 풀리나 보다. 그런 소윤이의 옷을 보며 어떤 본능적인 불편함과 제지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꾹 참았다. 그까짓 거 털고 빨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면서.


아내는 함께 만난 처치홈스쿨 선생님을 집까지 데려다줘야 했다. 난 아내의 심부름으로 다른 처치홈스쿨 선생님에게 교재를 전달해야 했다. 각자 할 일을 수행하고 자연드림에서 다시 만났다. 들어가기 전에 아내가 비밀스럽고 작은 목소리로 나에게 얘기했다.


“여보. 오늘 저녁에 솔벗 갈까?”

“아, 그럴까?”

“어, 서프라이즈로”

“그래, 그러자”


장을 보고 나와서 일단 집으로 왔다. 각자 차를 타고 움직였기 때문에 일단 차를 한대로 합쳤다. 아내는 집에 올라가서 냉동실에 넣어야 할 것들을 정리하고 내려왔다.


“아빠. 우리 저녁 밖에서 먹어여?”

“어, 그러려고”

“어디 가서여?”

“비밀인데?”


혹시 모르니 문을 열었는지 확인 전화를 하면서 주문도 미리 했다. 집에서 식당까지는 한 10분 정도 거리였다. 도착했는데 소윤이 표정이 이상했다.


“소윤아. 왜? 어디 아파?”

“아니여”

“토할 거 같아?”

“네. 조금”


멀미가 났던 모양이다. 솔벗에 온 기쁨을 느낄 새도 없었다. 계속 속이 안 좋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금방 괜찮아졌다. 아마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나아진 듯했다.


서윤이도 라이스페이퍼에 밥을 싸 먹는 재미를 알게 됐다. 큰 걸 줄 수는 없으니 라이스페이퍼를 서윤이가 먹기 좋은 크기로 적당히 잘라야 했다. 그걸 일일이 물에 담갔다 빼서 서윤이에게 주면 서윤이가 김으로 싸 먹듯, 밥과 여러 재료를 싸서 먹었다. 사실 싸서 먹었다기보다는 그냥 한 주먹에 쥐고 같이 먹었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거다.


아무튼 참으로 번거로운 수작업 공정이었다. 처음에는 한 장씩 줬는데, 서윤이 속도를 따라가기 버거웠다. 한 장 만들어 주고 나서 내가 먹을 걸 준비하려고 하면 어느새 다 먹고


“아빠아. 또 두데여어. 아빠아아. 또오. 또오”


를 외쳤다. 대량 생산의 비밀을 푸는 순간 산업 혁명이 일어난 것처럼 나도 대량 생산의 비법을 찾고 싶었지만 그런 건 없었다. 여러 장을 포개어 자른다고 해도 물에 담갔다 빼는 과정은 어차피 한 번에 한 장씩이었다. 그래도 한 번에 여러 장을 만들어 놓으니 그나마 시간이 좀 생겼다. 사실 싸 먹기도 귀찮았지만 월남쌈이니 싸 먹지 않고는 방법이 없었다. 한 번 먹을 때 최대한 많이 넣고 입이 터져라 쑤셔 넣었다. 이토록 정신없고 분주하게 식사를 해야만 하는 곳인데도 항상 만족도가 높은 곳이다.


코스에 포함된 쌀국수는 소윤이와 시윤이가 각각 한 그릇씩 먹고 아내와 나는 따로 쌀국수를 하나 더 시켰다. 어느새 단골이 된 가게라 아이들 몫으로 나온 쌀국수를 좀 넉넉히 주셨다고 했다. 사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쌀국수를 다 못 먹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미 월남쌈을 많이 먹어서 배가 찬 상태였다.


나의 섣부른 예상이었다. 남기기는커녕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주 깨끗하게 그릇을 비웠다. 몇 번이나 ‘배부르면 남겨도 된다’고 말했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국물까지 싹싹 비웠다. 다시 한번 우리 아이들의 먹성을 실감했다. 새삼 정말 잘 먹었다. 서윤이도 끝까지 식사에 집중하며 적지 않은 양을 먹었다. 마지막 후식까지.


중간에 카페에 들러 커피까지 사서 집에 왔더니 시간이 무척 늦었다. 일찍 퇴근한 게 무색할 정도의 피로감이 느껴졌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애들을 재우러 들어가서 그대로 잠들었다가 엄청 늦은 시간에 깨서 나왔다.


“여보. 아무 의욕이 없다. 원래 좀 빨리 재우고 나와서 집도 치우고 정리 좀 하려고 했는데”


내일 집에 손님이 오시기로 했다. 거창하게는 아니더라도 그에 맞는 준비를 좀 해야 성에 찰 텐데, 늦게 나와도 너무 늦게 나왔더니 지쳐서 그저 앉아 있었다.


“아, 이것만 먹고 일어나야지”


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진짜 일어나는 건 한참 뒤에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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