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수상한 행동

22.01.29(토)

by 어깨아빠

느낌으로는 동이 트기 직전이었다. 혼자 매트리스 위에 누워서 자던 내 옆으로 소윤이가 왔다.


“어, 소윤아. 왜 올라왔어?”

“그냥여”

“아빠 좋아서?”

“네. 아빠 베개 이거 같이 베자여”


그러더니 손을 더듬어서 내 손을 잡았다. 아기가 아닌 딸과 나누는 비밀스러운 사랑의 쾌감을 새벽부터 느꼈다.


점심에 처치홈스쿨 선생님이 집에 오시기로 했다. 떡국을 끓이기로 했는데 대파가 없었다. 대파와 함께 몇 가지를 더 사러 나가려고 했는데 다 따라가겠다고 했다. 다 데리고 가는 건 상관이 없었지만 옷 입히는 게 귀찮았다. 특히 서윤이를. 그렇다고 소윤이와 시윤이만 데리고 나가자니 서윤이가 너무 속상해할 것 같았다. 결국 소윤이가 집에 남겠다고 해서 시윤이와 둘이 나왔다.


시윤이 손은 또 시윤이 손만의 매력이 있다. 통통하면서 좀 더 꽉 차는 잡는 맛이랄까. 한살림에 도착해서 물건의 위치를 찾지 못하고 헤매는 나에게 시윤이는 자신 있게 얘기했다.


“아빠. 그거 제가 어디 있는지 알아여”

“아, 그래?”


시윤이를 따라서 갔는데 없었다.


“어, 이상하다. 여기 없네?”


이런 게 소윤이와 시윤이의 차이고, 시윤이만의 매력이다.


회의를 위한 모임이었는데 회의가 꽤 길어졌다. 함께 점심을 먹고 시작한 회의가 거의 다섯 시간 동안 이어졌다. 사실 중간에 축구를 하러 가려고 했다. 원래는 주일에 축구를 하는데 내일은 부모님 댁에 가야 해서 참석을 못 하니까 오늘 다른 축구 모임에 가려고 했다. 회의는 언제나 길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아쉬웠다. 회의는 꼭 해야 하는 일이었으니 중요도를 따지자면 당연히 회의가 중요했지만, 그래도 축구를 못하게 된 건 슬픈 일이었다.


회의가 끝나고 손님도 가시니 어느새 다시 저녁 시간이었다. 소윤이가 오므라이스를 먹고 싶다고 해서 아이들은 오므라이스를 해 줬다. 아내는 며칠 전부터 라면이 먹고 싶다고 했다. 아내가 남은 밥을 확인하고는 ‘애들 먹을 정도만 있다’라고 얘기하는 순간, 라면 얘기를 꺼낼 줄 알았다. 역시나 아내는 라면을 얘기했다.


내가 오므라이스를 준비하는 동안 아내가 혼자 나가서 라면을 사 왔다. 라면 하나 사는 것치고는 꽤 오래 걸렸다.


“아빠. 엄마 왜 이렇게 안 오시지?”

“음, 엄마는 간단한 걸 사러 가도 오래 구경하시잖아. 아마 그래서 그렇지 않을까?”

“라면 하나 사더라도 계속 돌면서 구경하고?”

“그렇지”


아내는 오므라이스를 다 만들었을 때쯤 돌아왔다.


바람이 쐬고 싶었다. 아마도 축구가 무산된 아쉬운 마음에서 유발된 ‘풀리지 않은 욕구’가 아닌가 싶었다. 마침 내일 헌금할 현금이 없다고 하길래 밥 먹고 나서 헌금을 준비하러 나가자고 했다. 짧은 외출이든 긴 외출이든 입히는 옷에는 차이가 없고 번거로운 건 마찬가지다. 아이들 옷을 입히고 있는데 아내가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아, 유모차에 방풍 커버를 씌웠나”


당시에는 별생각이 없었는데 나중에 보니 이상한 말이었다. 방풍 커버는 항상 씌워져 있었다. 아내가 어색한 대사를 내뱉으며 나간 이유가 있었다. 아까 라면을 사러 갔다 오면서 아내와 내가 먹을 과자도 조금 샀는데 아이들에게 보여 주기가 민망하니까(엄마, 아빠는 몸에 안 좋은 데 왜 먹어여? 라는 질문에 직면할 일이니까) 유모차 위에 올려 두고 들어온 거다. 그걸 급히 숨기러 나간 거였다.


걸어서 5분(아이들하고 가면 10분) 정도 거리의 은행 ATM 기계에 다녀오는 간단한 여정이었다. 서윤이는 방풍 커버를 씌운 유모차 안에서 계속


“내여두데여어. 내여두데여어”


를 외쳤지만 못 들은 척하고 외면했다. 돌아오는 길에 아파트 입구에 와서야 내려줬다. 너무 좋아하면서 촐랑촐랑 뛰어다녔다. 그런 걸 보면 너무 기분이 좋긴 하지만 처음부터 내려 주기에는 짧은 외출에 너무 큰 체력을 소모해야 한다.


아내는 오늘도 아이들과 함께 잠들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아내를 깨우러 들어갔다. 오늘도 그렇게 잠들었다가 늦게 나오면 왠지 너무 허망해 할 것 같았다. 사실 그때도 이미 늦은 시간이긴 했지만.


내일부터는 양쪽 부모님 집에 가서 자야 했다. 3일 치의 짐도 싸야 했다.


“여보. 짐도 챙겨야지”

“아, 맞다. 짐 챙겨야 되는구나. 탱자탱자 놀려고 했는데”

“그럼 그냥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챙겨”

“하아. 아무 의욕이 없네”


아내는 어제처럼 말했다. 어제와 다른 점도 있었다. 아내는 어디선가 크로와상을 꺼내더니 크게 한 입 베어 물고 있었다.


“사실 아까 라본느도 다녀왔지”

“아, 그래서 그렇게 늦었구나”


결국 짐은 하나도 못 챙겼다. 내일 아내가 짐을 챙기는 동안 내가 아이들 옷을 입혀야 하니 애들 옷만 미리 좀 찾아 달라고 했다. 나의 육아 능력치 중에 가장 발전이 안 되는 영역이 ‘옷 찾기’다. 물론 이것 또한 관심과 참여의 문제겠지만. 아무튼 당최 애들 옷이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겠다. 커다란 서랍장을 사서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안타깝게도 아이들이 입어야 할 옷은 우리가 자는 동안 건조기에서 말라야 하는 상태였다. 결국 아이들 옷도 찾아 놓지 못했고 짐도 챙기지 못한 채로 누웠다. 과연 내일 아침에 무사히 교회 갈 준비와 연휴 짐 챙기기를 병행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일찍 일어나면 모든 게 해결될 일이지만 그게 제일 어려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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