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1.31(월)
어제 자기 전에 동생이 말하길, 아직 돌이 안 된 조카(동생의 딸)는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날 거라고 했다. 거실에서는 (내) 아빠가 주무셨다.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일찍은 아니어도 꽤 이른 시간에 일어날 게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새벽같이 일어났고 거실에서는 손주 회동이 벌어졌다. 누가 그 모임의 책임자를 자처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난 아니었으니까.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나서 우리 가족(아내와 나, 세 남매) 모두 매제에게 머리를 잘랐다. 매제는 영글고 있는 미용사다. 먼저 소윤이가 잘랐다. 소윤이는 기장을 조금 줄였다. 아내는 머리끝의 상한 부분이 많이 없어져서 좋다고 했다. 손을 넣어서 쓸어내려 보니 뭘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소윤이는 더 짧게 자르고 싶어 했다.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머리 말릴 때 편하니까. 내가 극구 말렸다. 시윤이는 약간 다듬어 달라고 했는데 크게 손을 못 댔다. 잘은 모르지만 난도가 높은 편이었나 보다. 서윤이도 잘랐다. 자를 머리가 있나 싶겠지만, 혼자 과도하게 자란 뒷머리를 잘랐다. 꽁지머리에서 단정한 밤송이가 됐다. 아내도 잘랐다. 아내도 소윤이처럼 길이만 줄였다.
나도 잘랐다. 옆에서 지켜보던 동생과 아내가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웃어댔다. 나도 힐끔힐끔 거울로 보기는 했지만 옆머리 쪽은 자세히 보지 못했다. 5초 웃고 1초 말하는 아내와 동생이 하는 얘기를 들어 보니 대략 어떤 상태인지 가늠은 했다. 머리 모양에 죽고 못 사는 성격은 아니라서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다 자르고 보니 그렇게 웃을 일도 아니었다. 아내와 동생도 다 자르고 머리까지 감고 나온 걸 보고 나서는
“괜찮네”
라고 말했다. 휴우, 고등학교 때 이후로 오랜만에 삭발할 뻔했네.
그러고 나서는 짐을 챙기고 부모님 집에서 나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바로 집으로 가는 게 아니라서 천만다행이라며 이별의 아쉬움을 돌려보냈다. 서윤이는 집에서 나오기 조금 전부터 갑자기 짜증을 내다가 갑자기 웃다가 갑자기 빙빙 돌며 뛰기도 했다. 낮잠을 잘 시간이었다. ‘졸림’이 근본이 되어 여러 감정의 과잉 현상이 나타났다. 아니나 다를까 차에 타자마자 곧장 잠들었다.
처가까지 가는 길이 많이 막히지는 않았다. 처가에 가기 전에 근처에 사는 형님(아내 오빠)네 집에 잠깐 들렀다. ‘갓난아기’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어린 아기와 산모가 사는 집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뭐랄까, 모든 집안의 기운과 행동이 아기와 산모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분위기랄까. 익숙하지만 오랜만에 느껴 보는 분위기였다. ‘더 큰 아기’인 서윤이는 ‘아주 작은 아기’를 아주 소중하고 조심히 다뤘다. 너무 신기하다. 퍽퍽 때리고 쭉쭉 잡아당길 것 같은데 어찌나 사뿐사뿐 만지는지. 영상으로 만날 때는 반가워서 어쩔 줄 모르며 ‘따또’를 연호하며 찾아대던 삼촌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건 여전했다.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점심을 건너 뛰어서 모두 배가 고팠다. 처가에 앉자마자 잡채를 먹었다. 다섯 식구가 달려 들어서 누가 봐도 굶은 것처럼 정신없이 먹어댔다. 먹고 나니 또 배가 고팠다. 아내가 권하는 낮잠을 오늘도 거부하지 않았다. 슬며시 들어가서 누웠고, 어제처럼 순식간에 잠들었다. 역시나 꿀보다 단 잠이었다.
일어나니 저녁 먹을 시간이었다. 연휴의 삶이란 이런 것인가 싶었다. 먹고 자고 쉬고. 저녁은 당연히 진수성찬이었다. 저녁 먹고 나서 후식도 풍성했다. 사실 평소에도 비슷하다. 오히려 명절이어서 조금 더 편히 먹고 조금 더 편히 쉬는 거다. 소윤이는 어제 그 컬러링북을 가지고 왔다. 오늘도 한참 동안 방에서 색을 칠했다. 어제보다는 집중도가 떨어지는 것 같긴 했다. 시윤이와 서윤이도 어제처럼 티격태격이었다.
아이들은 어제와 비슷한 시간에 자러 들어갔다. 오늘은 아내가 함께 들어갔기 때문에 어제처럼 늦게까지 웃고 떠들지는 못했다.
“여보. 자나?”
“아니. 곧 나갈 거야”
아내는 이 카톡을 보내고 나서도 30분 넘게 나오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방 문을 열어 보니 아내가 막 나오려고 하던 참이었다. 나에게 그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잠들었다고 했다. 아이들을 재우러 들어가는 방이 이렇게나 무섭다. 언제 어디서 쓰러질지 모르는 공간이다.
장모님, 장인어른과 함께 늦은 시간까지 대화를 나눴다. 장모님과 장인어른의 인생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아주 어린 시절의 이야기부터 아내가 어린 시절의 이야기까지. 마치 QQ(Quaker’s Question / 따뜻했던 기억, 차가웠던 기억 등을 나누는 교제 방법이라고 해야 하나)를 하는 느낌이었다. 나중에 가족(내 자녀들과는 물론이고 부모님이나 형제, 자매와도)끼리 해도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색한 사이에 기름칠을 하거나 잘 모르는 관계의 친밀함을 더하기 위한 QQ만 해 봤다.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모르는 것도 많은 가족과 하면 더 좋겠다고 느꼈다.
어제와 비슷한 시간에 자러 들어갔다. 장모님이 내게 몇 번이나 말씀하셨다.
“강 서방. 내일 일찍 일어날 생각하지 말고 늦게까지 자. 애들은 아버님이 보시면 되니까. 푹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