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밖은 위험해

22.02.05(토)

by 어깨아빠

아침을 먹고 나서 가정 예배를 드렸다. 이름은 가정 예배였지만 그 안에 많은 걸 담았다. 아이들이 조금 흐트러져도 가만히 두고, 각자 감사한 것도 나누고, 아이들 칭찬도 하고. 칭찬할 때는 웨하스 과자로 케이크(초를 꽂기 위한 형태 정도)를 만들어서 초에 불을 켜고 축하도 했다. 끝나고 나서는 게임도 하고. 아내와 함께 읽은 책에서 배운 대로 일단 해 봤다. 우리 가족에게 중요한 일이 생기면 회의도 하고 함께 기도도 하고 그럴 계획이다. 얼마 안 가서 중단될지도 모르지만, 작심삼일도 열 번이면 삼십 번이 되는 법이니까.


다른 남편들도 나와 같은지는 모르겠는데 주말마다 묘한 분위기를 느낀다. 보통 평일 밤에 아이들 재우는 일은 매우 고된 과정으로 여겨진다.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주말 낮에는 조금 다르다. 밤에 재울 때는 들어가기 싫던 방이 낮에는 어찌나 들어가고 싶은지. 서윤이를 재운다는 핑계로 들어가서 ‘합법적으로’ 눕는 것도 가능하고, 깜빡 잠이 들어도 용인되고. 때로는 그걸 노리고 들어갈 때도 있다.


효녀 서윤이가 무조건 엄마를 찾기 때문에 내가 데리고 들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설령 서윤이가 엄마만 찾는 게 아니라고 해도, 감히 내가 아내의 휴식 시간을 빼앗는 건 상도에 어긋난다. 오늘도 아내가 서윤이와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서윤이를 재우고 바로 나왔기 때문에 딱히 휴식이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같이 누워서 눈이라도 좀 붙이면 모를까.


서윤이가 자는 동안 윷놀이를 했다. 지난주에 소윤이가 교회에서 만들어 온 윷과 윷 판이었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재밌었다. 세 판이나 했다. 그전에는 보드게임도 여러 판 했다. 실제로 얼마나 추운지는 몰랐지만, 기온을 확인하고 ‘오늘도 엄청 춥네’라고 얘기한 아내 덕분에 아예 나갈 생각을 안 했다. 계속 집에만 있었다.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온 게 유일한 외출이었다. 점심을 나가서 먹을지 저녁을 나가서 먹을지 고민하다 점심을 나가서 먹기로 했다. 약간 늦은 점심이었다. 아내가 누룽지 백숙을 제안했다. 소윤이가 네 살 무렵에 한 번 갔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만족도가 그리 높지 않았다. 음식은 맛이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돈이 아까웠다. 집에서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 걸 너무 비싸게 사 먹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래도 아이들과 함께 먹기에 좋은 음식이기는 했다. 특히 서윤이도 함께 먹을 수 있고, 영양의 측면에서도 별로 죄책감(?)이 없는 음식이었고.


애매한 시간에 가서 그런지 다른 손님이 하나도 없었다. 사장님에게는 안 좋은 일이지만 덕분에 아주 안락한 분위기 속에 식사를 했다. 다섯 식구가 먹기에 충분한 양이었다. 먼저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적당히 살을 발라 주고 서윤이에게도 발라 줬다. 큼지막한 살코기 덩어리가 있는 가슴 쪽 살을 많이 줬다. 아내에게도 크게 한 그릇을 채워서 줬다. 그러고 나서 내 몫을 먹어도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서윤이는 잘 먹지 않았다. 딱 보면 안다. 소윤이도 엄청 맛있게 먹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냥 ‘입에 안 맞아서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죽도 있으니까 크게 개의치 않았다. 다들 죽은 엄청 잘 먹었다. 죽을 주면서 처음에 발라 줬던 살코기를 내가 먹었는데, 왜 안 먹었는지 그제서야 깨달았다. 엄청 뻑뻑했다. 토종닭이라서 그런지 보통 뻑뻑한 게 아니었다. 내가 먹어도 엄청 많이 씹어야 겨우 넘어갈 정도였다. 서윤이도 부드러운 다리 살을 줬더니 엄청 잘 먹었다. 어찌 됐건 마지막에는 모두 배부르게 먹고 나왔다.


집에 오면서 아내도 좋아하고 소윤이도 좋아하는 빵 가게에 들렀다. 소윤이는 거기서 파는 치아바타를 무척 좋아한다. 아내는 거기서 파는 모든 빵을 좋아하는 것 같고. 거기서 함께 처치홈스쿨 하는 가정을 만났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나니 무척 반가웠지만 함께 앉아 있지는 못했다. 반가움에 인사를 나누는 우리를 보고 직원분이 물어보셨다.


“아, 혹시 몇 분이세요?”

“아, 우연히 만났어요. 저희는 갈 거에요”


집에 왔더니 무척 졸렸다. 소파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나를 보며 아내가 얘기했다.


“여보. 들어가서 좀 자”


혹시나 해서 덧붙이지만, 어떤 한심스러운 어조가 가득한 말투가 아니라 안쓰러운 마음이 가득한 용납의 말투였다. 처음 몇 번은 아니라고 거절했지만 아내의 바다와 같은 넓은 마음을 느끼고 나서는 무장해제가 됐다(이 무슨 해괴망측한 화법인가).


“알았어. 그럼 잠깐만 잘 게. 깨워줘”


들어가자마자 잠든 것 같다. 내가 자는 동안 소윤이와 시윤이는 기후변화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봤다고 했다. 그걸 다 보는 내내 잤으니 꽤 잔 거다. 덕분에 거듭난 듯, 개운한 몸과 마음을 얻었다. 서윤이가


“아빠아? 아빠아? 이여나데여어어”


라고 말하며 와서 얼굴을 비비는데, 단언컨대 이 세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황홀한 기상이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 아내는 집안일, 나는 일기를 좀 쓰다가 너무 늦지 않은 시간에 영화를 보려고 했다. 각자 하던 일을 정리하고 영화를 볼 준비를 마쳤는데, 갑자기 안방 문이 열렸다. 서윤이였다. 아내가 급하게 작은방으로 숨었지만 왠지 서윤이 시야에 걸린 듯했다. 일단 모르는 척 내가 서윤이를 안았다. 서윤이는 서럽게 울며 엄마를 찾았다.


“엄마는 없어”


그랬더니 더 서럽게 울었다. 아내는 통화를 하다가 작은방으로 숨었는데 작은방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서윤이가 작은방 쪽으로 고개를 휙 돌리면서 얘기했다.


“엄마아. 엄마아”


작은방 문을 열고 아내에게 얘기했다.


“여보. 걸렸어. 나와”


결국 아내는 다시 서윤이를 안고 방으로 들어갔고 무려 40분이나 흐른 뒤에 나왔다. 그래도 그 뒤로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깨지 않았다.


낮잠이라고 하기에는 해가 질 무렵인 저녁에 달콤한 잠을 잤는데도, 밤이 되니 또 졸렸다. 겨울이라 그런가 계속 잠이 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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