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빚쟁이

22.02.06(주일)

by 어깨아빠

어제 먹고 남아서 싸 온 죽을 아이들 아침으로 줬다. 어제 워낙 맛있게 먹기도 했고, 아이들도 두 끼 연속으로 먹는 걸 크게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좋아했다. 덕분에 아침 준비하는 시간과 먹고 치우는 시간이 꽤 줄어들었다. 아이들도 밥을 먹을 때보다는 훨씬 빨리 먹었다.


서윤이는 오늘도 유모차에 타고 내리기를 반복했다. 서윤이가 가장 원하는 건, 유모차에서 내리고 아내에게 안겨서 손가락을 빠는 거다. 아내와 내가 서윤이에게 가르치고 있는 규칙은, 유모차에서 내리면 마스크를 써야 하고 유모차에 타면 마스크를 벗고 손가락을 빨 수 있다는 거다. 사실 앞 일을 생각하면 유모차에서도 마스크를 쓰게 해야 하지만, 그건 서윤이에게 너무 탈출구가 없는 느낌이라 유모차에서는 예외를 적용했다. 오늘은 서윤이가 많이 속상했는지 유모차에서 내려서도 손을 빨겠다며 울었다. 결국 내가 아기띠로 안았다. 아기띠로 안았을 때는 손가락을 빨게 해 줬다. 별로 안 졸려 보였는데 금방 잠들었다.


‘이럴 바에 내가 자고 말지’


이런 기분이었나. 오늘도 엄청 조금 자고 깼다. 너무 덜 졸릴 때 자서 그런 게 아닐까 싶긴 하다.


예배를 마치고 식당에 가서 늘 먹는 걸 시켰다. 돈까스, 들깨수제비, 장칼국수. 소윤이가 먹는 게 시원찮았다.


“소윤이가 들깨 안 좋아한다고 했나?”

“어, 뭐 안 좋아하는 건 아닌데”


그럼 안 좋아하는 거다.


“소윤아. 다음부터는 들깨 싫으면 다른 거 시키자고 얘기해. 그냥 칼국수 시키면 되니까”


다음 주에는 소윤이가 말을 안 해도 먼저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서윤이는 돈까스를 많이 먹었다. 내가 돈까스를 잘라서 덜어 줬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내가 서윤이에게 들깨수제비를 주지 않았다. 일부러 안 준 건지 아니면 그냥 생각을 못 한 건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내 마음은 편안했다. 들깨수제비를 먹은 서윤이를 수습하는 일이 보통 번거로운 게 아니다. 그에 비하면 돈까스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굳어서 눌어붙은 들깨 국물의 흔적이 보이지 않아서 너무 좋았다.


오늘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졸렸다. 어제처럼 또 소파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여보. 오늘도 들어가서 좀 자”

“아니야 아니야. 오늘은 진짜 괜찮아”

“에이 거기 앉아서 졸지 말고 차라리 30분이라도 자고 나와”

“아니야. 안 졸게. 괜찮아. 이따가 축구도 가야 되는데”

“아, 괜찮아. 자고 나와서 축구 가”

“에이 아니지. 안 졸게. 괜찮아”


결론도 어제와 똑같았다. 난 방에 들어가서 누웠고 거의 바로 잠들었을 거다. 아내가 오늘은 진짜 30분 후에 깨운다고 했는데 1시간 정도 잤다. 오늘도 서윤이가 와서 강아지처럼 내 얼굴에 자기 얼굴을 들이밀었다.


미안하게도 일어난 지 얼마 안 돼서 바로 축구를 하러 나왔다. 아내에게도 많이 미안했지만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도 왠지 미안했다. 아이들을 울음바다로 만들었던, 취소된 일정 때문에 축구도 안 가는 거였는데 그 일정이 취소되면서 다시 축구하러 가게 된 거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 원래대로였으면 아빠 축구도 안 가시는 건데”


라며 아쉬워했다. 아주 잠깐, 한 5초 정도 오늘 그냥 가지 말까 고민도 했지만 곧바로 이어진 아내의 말에 힘을 얻고 껍데기 같은 고민을 집어치웠다.


“얘들아, 아빠도 가서 스트레스 좀 풀고 오셔야 너희랑 또 더 재밌게 놀고 그러지”


말장난 같지만, 스트레스를 풀러 축구하러 가는 건 사실 아니다. 축구를 못 하면 스트레스가 쌓일지는 몰라도. 아무튼 덕분에 즐겁게 하고 왔다.


아내가 어제 문득 떡볶이가 먹고 싶다고 했다. 분식집에서 팔던, 맵고 달고 조미료 많이 들어간 옛날 떡볶이가. 축구 끝나고 가면서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뭐해?”

“어, 이제 애들 저녁 주려고”

“우리는 같이 먹는 건가?”

“일단 애들 먼저 주려고 했지”

“아 그래? 여보 먹고 싶은 거 없어?”

“나? 글쎄?”

“사 줄게. 떡볶이?”

“떡볶이? 좋지”

“그럼 내가 사 갈까? 아니면 애들 재우고?”

“글쎄. 여보가 사 오게?”

“어, 그러려고 했지. 아 근데 그럼 너무 불려나?”

“그럴 수도 있지”

“그럼 일단 그냥 갈게”


아빠가 일을 하고 와도 반겨 주던 세 녀석은 축구를 하고 온 아빠도 변함없이 반겨 줬다. 아내에게 진 빚(?)이 많으니 그 후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나서서 했다. 그래 봐야 잔잔한 일이었지만. 아이들에게도 빚진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다.


아내가 아이들과 함께 들어가자마자 떡볶이를 배달시켰다. 커피도 주문했다. 커피는 아내에게 미리 말하지 않았지만 왠지 아내가 좋아할 거 같았다. 떡볶이가 배달된 지 얼마 안 돼서 아내도 나왔다.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또 초인종이 울렸다.


“뭐야? 여보? 뭐 또 시켰어?”

“짜잔”

“커피? 와, 여보 대박이네. 센스”


아내가 애들을 재우러 들어갔을 때 무심결에 오른쪽 어깨 근처를 만졌는데 뭔가 오돌토돌한 게 느껴졌다. 거울로 봤더니 울긋불긋했다. 떡볶이를 먹고 나서 아내에게 얘기하고 보여줬다.


“여보. 이거 혹시 대상포진인가?”

“어? 그런가? 진짜?”


아내가 급히 휴대폰으로 검색을 해 보더니 확신에 찬 목소리로 얘기했다.


“맞네. 맞네. 당장 내일이라도 병원 가 봐야겠다”


나도 찾아봤더니 왠지 맞는 것 같았다. 병원에 가 봐야 알겠지만, 내 인생에 대상포진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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