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2.07(월)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이사님께 말씀드리고 근처 병원으로 갔다. 의사 선생님은 몇 가지 질문을 하시고 내 몸을 보시더니 말씀하셨다.
“대상포진 맞네요. 한 3일 된 거 같아요”
그동안 내가 들었던, 몸을 가누지도 못할 정도로 아프고 기운이 없는 대상포진의 증상과는 좀 차이가 있긴 했지만, 어쨌든 대상포진이었다. 이만한 게 다행이었다. 푹 쉬고, 무리하지 말고, 약 잘 먹으라는 처방을 받았다. 약이야 잘 챙겨 먹으면 되지만 푹 쉬고, 무리하지 않는 건 지금보다 더 강화하기 어려운 처방이었다. 현상유지라도 잘 하는 게 최선의 방책이었다.
겨드랑이와 날갯죽지가 좀 아프고 약간의 두통이 있는 것 말고는 몸 상태가 괜찮았다. 다시 생각해도 이 정도인 게 정말 감사했다. 주변에는 입원한 사람도 많던데, 나도 그랬으면 올해는 휴가 없이 열심히 일만 해야 할 처지가 됐을지도 모른다.
아내는 나보다 더 안타까워했다. 마치 무슨 큰 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걱정했다. 하긴, 입장이 바뀌었으면 나도 비슷했을 거다. 그나마 나는 출근해서 어느 정도는 업무량을 조절하는 게 가능하지만 아내는 불가능하다. 아무튼 아내는 ‘대상포진에 걸렸을 때’ 해야 하는 행동, 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 같은 걸 말해 주며 걱정했다.
의사 선생님은 굳이 아이들을 껴안거나 뽀뽀를 하지는 말라고 하셨다. 퇴근해서 아이들을 그냥 보기만 해야 하는 것도 꽤 큰 고역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가 달려들었지만 안아주지도 못했다. 아내는 마침 선물로 들어온 소고기를 굽고 있었다. 대상포진 걸렸을 때는 잘 먹어야 한다면서. 약간 민망했다. 매일매일을 대상포진 투병 환자처럼 너무 잘 먹었는데. 어쩌면 너무 많이 먹어서 면역 체계가 깨진 걸지도 모르는데. 아무튼 아내는 나에게 아무것도 못하게 하고 고기를 열심히 구워서 아이들과 나에게 줬다.
“여보도 앉아서 먹어”
“어, 나는 입맛이 없어”
“왜? 너무 힘들어서?”
“뭐 그냥 그런 것도 있고”
낮에 즉흥적으로 형님(아내 오빠) 집에 다녀왔는데 그게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더’ 아기가 있는 집에 ‘덜’ 아기를 데리고 가는 일은 너무 고된 일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고 했다.
그렇게 고된 시간을 보내고 온 덕분에 아내는 입맛이 싹 사라졌다. 나야 이미 면역 체계가 깨진 거고, 아직 멀쩡한 아내가 오히려 더 신경 써야 할지도 모른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보다는 잃기 전에 정비하는 게 더 효율적이니까. 그래도 아내는 남편을 잘 먹이고 잘 쉬게 하는 일에 애를 썼다.
“여보. 설거지 절대 하지 마. 절대. 절대”
오늘은 아내 말을 잘 듣기로 했다.
아내는 애들을 재우러 들어가기 전에, (내 몸의) 수포가 올라온 부분에 약을 발라줬다. 아내가 거즈에 약을 적셔서 붙여 주는 동안
‘야, 이거 아내 없었으면 나 혼자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땀 한 땀 수포 위에 거즈를 올려 주는 아내에게 깊은 감사를 느꼈다.
나도 정신을 바짝 차렸다. 이만한 게 다행이고, 여기서 더 심해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정신력이 뇌를 지배하기도 하니까 더 심해지지 않을 거라는 메시지를 계속 뇌로 보냈다. 아내가 먹으라는 것도 다 먹었다. 홍삼즙, 비타민, 과일 등등.
아내와 아이들이 자러 들어가기 전에 동그랗게 모여 앉아서 기도했다. 아내와 소윤이, 시윤이가 돌아가면서 나를 위해 기도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기도할 때 눈물이 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의외로 그렇지는 않았다. 오히려 소윤이와 시윤이의 의젓한 기도에 감탄했다. 어린 자녀들의 순수한 믿음과 기도를 하나님이 얼마나 귀엽게 보실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진짜 오랜만에 아내보다 먼저 방에 들어와서 누웠다. 잠도 푹 자야 한다고 해서. 빨리 낫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아파지지 않기 위해서 사력을 다하고 있다. 이 정도라면 아직 견딜만하니까, 더 심해지지만 않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