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2.04(금)
낮에 아이들이 한바탕 울음바다가 됐다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매우 기다리고 설레는 일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그게 취소가 됐다. 소윤이는 자기 용돈을 털어 선물도 준비하고 그럴 정도로 기다린 일이었다. 아내에게서 취소가 됐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소윤이는 하던 필사를 멈추고 멍하게 있다가 울음을 터뜨렸고, 시윤이도 슬픔에 잠겼다고 했다.
상황 파악이 안 되는 서윤이만 싱글벙글이었다. 그래도 서윤이 덕분에 소윤이와 시윤이가 슬픔을 떨쳐 내고 웃음을 찾기도 했다. 언니와 오빠를 보면서 자기도 슬프다며 우는 척도 하고, 우는 언니와 오빠에게 가서 울지 말라고 토닥이기도 하고. 막내 서윤이는 아내와 나에게도 각별한 기쁨이지만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도 특별한 동생인 게 분명하다.
아내는 아이들의 슬픈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아이 셋과 함께 카페에 갔다고 했다. 특별한 막냇동생 서윤이가 마침 잠든 덕분에, 카페에서의 만족도도 매우 높았다고 했다. 소윤이 말처럼 낮에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카페에 간 게 무척 오랜만이었다. 누군가를 만나러 간 적은 종종 있어도 아내와 아이들만 간 건, 정말 오래된 일이었다. 그만큼 엄두를 내기 어려운 일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요즘은 우리 서윤이 덕분에 아내와 내가 함께 있어도 카페에 머무는 일은 거의 없는데.
아내의 노력 더분에 소윤이와 시윤이의 슬픔은 많이 옅어졌다. 자세히 쓰지는 못했지만 두 녀석이 그토록 상심할 만한 일이기는 했다.
서윤이는 요즘 내 허벅지에 자주 매달린다. 오늘도 퇴근하고 온 나의 허벅지를 붙잡고
“아빠아아. 아빠아아아”
를 외쳤다. 정확히 말하면 문을 열기도 전에 비밀번호를 누를 때부터 아빠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서윤이가 나를 좋아해 주는 게 느껴질 때마다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서윤이만할 때도 비슷한 감정을 많이 느꼈다. 물론 지금도 많이 느끼긴 하지만 딱 그만할 때의 아이들을 상대할 때 유독 도드라진다.
‘이 아이한테 도대체 나는 어떤 존재길래 나를 이렇게 좋아하고 나를 의지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요즘은 한참 안 그러던 소윤이도 부쩍 내 무릎에 와서 앉거나 나에게 안길 때가 많다. 그게 또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시윤이는 원체 애교도 많고 스킨십도 좋아하는 녀석이라 아들이지만 지금도 제일 호응도가 높다. 아무튼 아빠가 없으면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실제로 아빠가 없어지는 건 매우 큰일이겠지만) 생각해 주는 자녀들과 아내와 함께 있을 때, 내 존재의 의미가 가장 선명해지는 느낌이다.
등과 날갯죽지의 통증은 더 심해졌고 누워서 요양하는 존재에게 서윤이가 와서 안마를 해 줬다. 한 10번 두드리면 아주 가끔, 한두 번 정도 정타가 나오기도 하는데 그럼 약간의 타격감이 느껴진다. 사실 안마의 유효성은 상관이 없다.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와서 두드리는 존재를 보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통증이 사라진다. 아주 잠깐.
아이들을 재우고(물론 꽤 늦게) 나온 아내에게 얘기했다.
“여보. 커피 마실까?”
“그럴까? 타 줄까?”
“아니. 남이 타 주는 커피 마시자”
“그래그래”
집에 캡슐이 있었지만 배달 앱을 켜서 커피를 시켰다. 집에 아무리 고급 원두가 있어도, 남이 타주는 커피만 못할 때가 있다. 이럴 때 보면 커피를 맛으로 먹는다는 건 다 허풍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리뷰 이벤트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준다고 해서 아내 커피만 주문했는데, 아주 작고 아담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배달됐다. 다소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맛있게 마셨다. 남이 타 준 커피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