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2.15(화)
아내와 아이들은 오늘도 평범한 하루를 보냈다고 했다. ‘평범한’을 조금 더 풀어서 쓰자면 ‘아무 데도 안 나가고 집에만 있었다’라는 거다. 원래는 오후에 나갈 일이 있었는데 나가기 직전에 취소가 됐다. 덕분에 아내와 아이들은 오늘도 하루 종일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하루를 다 보내고 저녁 먹기 전에 저녁으로 먹을 부대찌개 사러 나갔던 게 첫 외출이었다. 퇴근하고 왔을 때 아내는 열심히 부대찌개를 옮겨서 끓이고 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하루 종일 뭘 하고 지냈는지 얘기했다. 소윤이는 마가복음 필사(두 권 중에 한 권)를 끝냈다고 했다. 마침 필사 선물인 팬티도 도착했고. 소윤이는 자랑스럽게 필사 책을 들고 와서 보여줬다.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해로운 것만 아니면, 뭐든 매일 꾸준히 하는 습관은 어떻게든 유익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한다. 소윤이에게 진심을 가득 담아 칭찬과 격려를 건넸다.
시윤이도 요새 꾸준함의 열매를 먹고 있다. 어느새 받침 있는 글자도 유려하게(?) 읽는다. 이 또한 거저 된 것이 아니다. 매일 쓰기와 읽기를 성실히 연습해서 얻은 시윤이의 성취다. 서윤이에게 책을 읽어주면서도, 옆에서 느리지만 한 자 한 자 정확히 읽어 나가는 시윤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시윤이가 읽고 쓰는 걸 보면 나도 모르게 짙은 감탄이 터져 나온다.
이 모든 건 아내의 열매이기도 하다. 숱한 배배 꼬임과 핑계, 딴짓의 순간을 넘어서고 견뎌낸 인내의 결과다. ‘가족끼리는 가르치고 배우는 거 아니다’라는 세상의 통설을 거스르고 얻어낸 훈장이고.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를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마음에 새기는 듯한 심정으로 살아낸 일상의 흔적이고. 다들 기특하고 장하다. 어쩌다 홈스쿨은 하게 되어 가지고.
저녁에는 온라인 모임이 있었다. 나만 참여하는 되는 모임이라 아내가 애들을 재웠다. 모임 시간을 ‘애들 챙기고 느지막하게’로 정했기 때문에 여유로웠다. 씻기고 눕혀서 기도하고 인사까지 나눠도 시간이 남았다.
퇴근했을 때, 소윤이는 내가 남겨 준 쿠키 하나를 들고 왔다. 요즘 소윤이가 또 편지를 비롯한 수제 제작 선물을 많이 준다. 일부러 하트 모양 쿠키를 남겼다면서 먹으라고 했다. 언니가 아빠에게 뭔가를 건네는 걸 본 서윤이는
“더도 보여 두데여어어어”
라며 성화였다. 정말 보여 주기만 했더니 자기 손에 쥐어 달라고 난리였다. 잠시 줬다가 다시 가져 오려고 했는데 이 녀석이 장난을 치면서 도망 다녔다. 혼자 방으로 들고 가서는 껍질째 잘근잘근 씹어댔다. 하트 모양은 부서졌고 그걸 본 소윤이는 눈물을 흘렸다. 소윤이가 서윤이의 웬만한 말과 행동을 다 받아 주지만, 자기 정성을 외면하거나 엄마나 아빠에게 전달한 선물을 훼손하는 건 굉장히 속상해한다.
“소윤아, 괜찮아. 아빠가 부서지기 전에 하트 모양일 때 받아서 봤잖아. 그럼 아빠가 소윤이 마음을 받은 거지”
물론 소윤이가 바로 괜찮아지지는 않았다. 이미 부서진 마당에 조금이라도 소윤이가 덜 속상하려면 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크게 한 입(그래 봐야 애초에 서윤이 손바닥 보다 작았지만) 베어 물고 소윤이, 시윤이, 서윤이에게 나눠 줬다. 그랬더니 금방 풀렸다.
사실 오늘도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줄 선물(은 또 과자)이 있었는데 서윤이 때문에 차에 두고 왔다. 언니와 오빠에게 줄 것만 있고 자기 건 없다는 걸 알면 이제 서운해한다. 언니를 닮았는지 눈치가 엄청 빠르다. 자기만 안 주면 분명히
“내 꺼느으은. 내 꺼느으으으은”
하면서 서운한 표정을 지을 거다. 내일 서윤이 것도 하나 마련해서 같이 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