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2.18(금)
아내가 아침부터 시윤이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메시지를 보냈다. 나도 아내와 같은 상황이었으면 마냥 너그럽고 넓게 시윤이를 받아주지 못했을 거다. 그걸 알면서도 아내에게 원론적인 방법을 제안했다. 처음에 짧게 메시지를 보내고, 아주 길게 더 썼는데 그건 보내지 않고 지웠다. 아내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내가 아내 상황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아내가 어련히 알아서 잘 할까 싶었다.
나중에 아내에게 정황을 들어 보니 더 말을 보태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한참 동안이나 마음이 동하지 않아서 시윤이와 서로 냉전의 시간을 가졌다고 했다. 그러다 아내가 기도와 마음을 쥐어 짜내고 시윤이와 방에 들어가서 풀었다고 했다.
퇴근할 무렵, 아내가 전화를 해서 저녁을 사 먹자고 했다. 아내는 음식을 사서 집에서 먹자는 얘기였는데 내가 밖에서 먹고 들어가자고 제안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고 그냥 그러고 싶었다. 소윤이는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돈까스 가게에 가자고 했지만 금요일이라 사람이 너무 많을 것 같았다. 다른 손님이 없어도 정신없는 게 우리 가족의 외식인데, 거기에 주변까지 정신없는 곳에서 먹을 각오까지는 아직 하기 전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결정권을 넘겨주고 난 퇴근 운전에 집중했다(세상에서 가장 귀찮고 성가신 일일 때가 있는 메뉴 결정을 회피했다).
집 근처에 있는 돈까스 가게에 가기로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 모두 좋다고 했다. 처음에 소윤이가 말한 곳이 하와이라면, 우리가 가기로 한 곳은 괌 정도의 느낌이다. 그래도 서윤이를 데리고 가서 먹기에는 훨씬 한적하고 넓어서 좋다. 사실 맛도 좋다. 비교 군이 워낙 세서 그렇지. 소윤이와 시윤이가 많이 피곤해 보이기는 했지만 맛있게 잘 먹고 나왔다. 많이 힘들지도 않았다. 힘들지 않았다는 건, 서윤이가 크게 꼬장 아니 떼 안 쓰고 잘 먹었다는 거다.
차를 아파트 주차장에 대고 나왔기 때문에 아내와 내가 좋아하는 카페에 가는 건 어려웠다. 소윤이가 나서서 스타벅스라도 가자고 했다. 소윤이가 오늘 실뜨기를 배웠는데 그걸 나와 엄청 하고 싶어 했다. 집에 가면 바로 씻고 자야 한다는 걸 아니까 어떻게든 카페에서 조금 더 시간을 보내고 싶은 거였다. 마침 아내에게 쿠폰이 있었다. 사실 서윤이 때문에 카페에 가는 건 ‘멈칫’하게 되지만 영업 제한 시간까지 얼마 안 남았을 때라 부담을 덜고 카페로 갔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먹을 빵과 서윤이의 의자 체류 시간을 늘려 줄 스콘을 샀다. 소윤이는 자리에 앉자마자 빵은 거들떠도 안 보고 실뜨기를 시작했다. 무척 좋아했다. 별것도 아닌 실뜨기에 그렇게 좋아하는 게 신기했다. 점점 소윤이의 취향과 성향이 짙어지는 것도 신기하고. 시윤이도 아마 관심은 있는 것 같았는데 ‘아직 나는 잘 못하니까’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막 적극적으로 하겠다고 하지는 않았다. 이 또한 시윤이의 성격이기도 하고 둘째의 위치에서 만들어진 후천적인 모습이기도 하고.
서윤이가 스콘을 꽤 오랫동안 먹어 준 덕분에 거의 마감 시간까지 즐겁게 앉아 있었다.
“엄마아아. 배 부더여어어”
라는 서윤이의 선언과 동시에
“소윤아, 시윤아. 이제 우리 가야겠다”
라고 아이들에게 얘기했다. 아니나 다를까 서윤이는 곧바로
“내여 두데여어”
라며 엉덩이를 들썩였다. 집에 가는 길에 잠시 그네를 타겠다며 먼저 뛰어가는 언니와 오빠를 보면서 자기도 내려 달라고 울음으로 호소했지만 내려 주지 않았다. 미안했지만 내려 줄 수 없었다. 서윤이도 엄청 오랫동안 울지는 않았다.
애들을 재우고 나서 아내와 영화를 봤다. 사실 이번 주에 결혼기념일(은 다음 주지만)을 기념해 아이들을 맡기고 아내와 둘이 1박 2일로 데이트를 할까 싶었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계획은 취소되었다(사실 계획도 아내와 나만의 계획이었…). 아쉬운 대로 오늘은 집에서 영화를 보고 내일은 어디라도 가고 싶긴 했는데, 막상 갈 데가 마땅치는 않았다. 일단 내일의 고민은 내일로 미루고 당장 오늘은 영화부터 봤다.
그래도 서윤이가 엄마와 아빠의 이런 아쉬운 마음을 알았는지 매일 거르지도 않고 깨던 녀석이 오늘은 깨지도 않았다. 그래도 우리 서윤이가 눈치는 좀 있나 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