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2.19(토)
소윤이가 어제 자기 전에 이미
“내일 아침은 프렌치토스트 해 주세여”
라고 요청했다. 마침 집에 식빵이 있었다. 아내에게 계란이 충분한지 물어봤는데, 네 개가 있다고 했다. 더 살까 하다가 그냥 있는 것만 가지고 먹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냉장고를 열었는데 계란이 세 개 뿐이었다. 아내가 착각을 했나 보다. 버터도 없었다. 혹시 냉장고 어딘가에 숨어 있는 자투리 버터가 없나 살펴봤지만, 없었다. 계란 세 개를 풀고 평소보다 우유를 많이 부었다. 맛은 묽어져도 양은 확보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밤에 자다 깨서 나오면 ‘아빠에게 가면 큰 비극이 생기는 것처럼’ 나를 피하는 서윤이가, 아침에는 그렇게 내 껌딱지다.
“아빠아. 나가자여어. 나가여어어”
“서윤아. 아빠랑 나갈까?”
“네”
“이리 와. 뽀뽀”
지체 없이 와서 뽀뽀를 하고 내 손을 잡고 거실로 나간다. 방에서 나오면서 문을 잠그고 나왔다. 아내가 좀 푹 자라고 그런 건데 아내도 꽤 일찍 일어났다. 서윤이가 하도 시끄럽게 떠들고 방 문을 두드려서 시끄러웠을 거다. 엄마를 찾느라 그런 건 아니었는데 아무튼 시끄러웠다.
아침을 먹고 나서는 예배를 드렸다. 그러고 나서는 소윤이와 오목을 많이 뒀다. 시윤이는 아내와 보드게임을 했다. 소윤이는 엄마하고도 오목을 두고 싶어 했다. 하필 그때 딱 서윤이가 낮잠을 잘 시간이었다.
“서윤아. 오늘은 아빠랑 들어가서 자자. 알았지?”
“아아아. 엄마야아아앙”
“아니야. 엄마는 언니, 오빠하고 좀 놀아야 돼. 언니, 오빠도 엄마랑 놀아야지. 오늘은 아빠랑 자는 거야”
당연히 서윤이는 폭포처럼 눈물을 쏟아냈다. 아빠가 뭐 잡아먹니. 그래도 소윤이와 시윤이의 ‘엄마와의 시간’을 보장하기 위해 서윤이를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물론 잠시 ‘합법적으로’ 누워서 쉴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서윤이는 들어가서도 계속 울었다.
“서윤아. 그렇게 계속 울면 아빠도 나갈 거야”
“으아앙앙아아앙아앙. 네에? 뭐야구여어?”
“아빠도 나갈 거라고. 서윤이 계속 울면”
“네에”
“어?”
“아빠 나가여어어”
“어? 아빠? 나가라고?”
“네에. 아빠아아아. 흑흑. 나가여어어”
“아빠 진짜 나가?”
“네에. 아빠아아. 흑흑. 나가여어어”
“아, 아니야. 서윤이 얼른 자. 그만 울고”
“으앙앙아앙아앙앙앙. 아빠아아아아악. 나가여어어어어억”
“아니야. 아빠 서윤이 잠드는 거 보고 나갈 거야”
함부로 쓰면 안 되는 수였다. 그걸 그렇게 받다니. 아빠와 함께 있느니 혼자 자겠다는 건가. 서윤이는 조금 더 울다가 금방 잠들었다. 나도 바로 방에서 나왔다. 소윤이는 자기가 엄마를 이겼다며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아내는 봐 준 게 아니었는데 졌다고 했다.
아이들 데리고 어디 바람이라도 좀 쐬러 가고 싶었는데, 마땅치가 않았다. 이럴 때 딱 캠핑을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우리는 캠핑을 해 본 적도 없고 아마 앞으로도 안 하지 않을까 싶다. 아쉬운 대로 당일 글램핑을 할 수 있는 곳도 찾아봤지만, 당연히 빈 곳은 없었다. 꼭 코로나가 아니어도 주말에 근교까지 차를 타고 나가려니, 차도 많고 사람도 많을 것 같아서 부담스러웠다. 결국 그냥 집에서 시간을 보내며 뭐 즐거운 일이 없을까 고민했다.
고기가 먹고 싶었다. 고기 연기 그득하게 피어오르는 숯불구이 집에서 구워 먹는 제대로 된 고기가 먹고 싶었다. 내가.
“이건 엄마와 아빠의 결혼기념일을 기념하는 식사야”
라는 명분으로 추진했다. 집 근처의 고깃집을 여러 군데 찾아봤다. 아내와 둘이 먹는 거라면 드럼통에 숯불 넣고 등받이도 없는 동그란 의자에 앉아서 먹는 그런 고깃집도 괜찮았겠지만, 우리는 아이가 셋이나 있는 집이니까. 최대한 아늑해 보이면서도 맛있다는 평이 많은 곳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한 곳을 찾기는 했는데 오후 네 시부터 문을 열었다. 아내와 나는 점심으로 먹을 생각이었다. 아침을 대충 빵으로 때웠기 때문에 아내와 나 모두 배가 고팠다. 평도 좋고 자리도 넓은, 우리에게 딱 맞는 곳이었기 때문에 포기하기는 어려웠다. 저녁으로 먹되 문 여는 시간에 딱 맞춰서, 그러니까 아주 이른 저녁을 먹기로 했다.
저녁까지 쫄쫄 굶는 건 너무 배가 고프니 아주 간단히 요기를 하기로 했다. 아내는 짜파게티를 먹자고 했다. 대신 조금만 끓여서 먹자고 했다. 네 명이서 세 봉지를 제안했다. 어느 소식하는 가정에서는 이렇게 먹고도 배가 부르다며 깊은 숨을 몰아쉴 것 같기도 해서 이게 진짜 ‘조금만’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우리 가정의 기준으로 보자면 적은 양인 건 맞다. 짜파게티를 사러 편의점에 가서 마음이 바뀌었다. 짜파게티는 두 봉지만 샀다. 이름은 땅콩크림 빵이지만 정작 크림은 빵의 중앙까지 먹어야 나오는, 아주 저렴한 맛의 땅콩크림 빵도 샀다. 그게 내 점심이었다. 그 저렴하고 느글느글한 크림의 맛을 좋아한다. 짜파게티를 다 끓이고 그릇에 덜었을 때, 서윤이가 방에서 나왔다. 잠이 달콤했는지 첫 표정이 웃음이었다. 서윤이는 남은 짜파게티 양념에 밥을 비벼서 줬다.
그 뒤로는 집에서 아이들과 이런저런 놀이와 이야기를 하며 평범한 시간을 보냈다. 고기 먹으러 갈 시간만 기다리면서. 사실 아이들은 별 감흥이 없었는데 아내와 내가 안달이 났다. 정말 문 여는 시간에 딱 맞춰서 갔다. 아무도 없었다. 덕분에 여섯 명이 앉는 자리로 안내를 받았고 아주 아늑하게 식사를 했다. 정말 맛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잘 먹기는 했지만 아내와 나처럼 감탄하는 건 아니었다. 뭐 어쨌든 잘 먹었다. 다들 배부르게. 나도 배부르게.
빵집도 들르고 카페도 들러서 빵과 커피를 사고, 자연드림에 들러서 장도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갑자기 견디기 어려운 피곤이 몰려왔다. 거실 바닥에 엎드려서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골며 잤다. 아내가 자녀들 헌금도 챙기고 씻기느라 분주한 게 느껴졌다. 느껴졌지만 움직이지는 못했다. 정말 너무너무 졸려서 계속 잤다. 그러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잘 준비가 끝났을 때 정신을 차렸다(정말 고의는 아니었다. 다만 내 몸이 본능적으로 그렇게 반응했을지도 모른다는 건 부인하지 않겠다).
“아빠아. 이데 깨떠여어어?”
“어, 서윤아”
쓰고 보니 이건 뭐 육아 일기가 아니라 고기를 먹기 위한 여정을 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