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의 이따가 이따가

22.02.20(주일)

by 어깨아빠

아이들은 아침을 먹고 난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 교회 전도사님께 전화가 왔다. 통화를 자주 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 시간에 전화가 오는 건 더더욱 드문 일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고, 역시 예상대로였다. 4부 예배 때 드럼을 치시는 집사님이 일이 생기셔서 예배에 못 나오게 됐고, 그 자리를 나에게 부탁하시는 거였다. 4부 예배에 가서 반주를 하기로 했다. 지난주와 같은 상황이 된 거다.


지난주처럼 소윤이와 시윤이는 3부 예배 시간에 맞춰서 교회에 데려다줬다. 다시 집에 와서 진짜(?) 준비를 하고 아내, 서윤이와 함께 4부 예배 시간에 맞춰 교회로 갔다. 아내와 나는 각각 차를 가지고 움직였다. 내가 먼저 주차를 하고 교회에 들어가서 소윤이와 시윤이를 만나러 갔다. 시윤이가 드리는 예배가 먼저 끝나서 시윤이를 먼저 만났다. 시윤이는 문 앞에서 선생님에게 뭔가를 진지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자세히 들어 보니 시윤이 가방 속에 있는 사탕이 어디서 난 건지를 얘기하는 거였다. 이야기의 진도가 너무 느린 탓에 선생님에게 모두 설명하지 못하고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시윤이와 함께 소윤이를 만나러 한층 더 올라갔다. 소윤이는 예배를 마치고 반 별로 모여서 하는 2부 활동을 하고 있었다. 뭔가를 만드는 것 같았다. 한참 기다렸는데 끝나지 않길래 시윤이를 소윤이에게 보냈다.


“시윤아. 누나한테 가서 본당에 먼저 내려가 있을 테니까 예배 끝나면 본당으로 내려오라고, 아빠가 그랬다고 얘기해 주고 와”


시윤이가 쪼르르 누나에게 달려가서 이야기를 전하고 왔다. 시윤이와 함께 본당으로 내려왔다. 아내와 서윤이는 아직 없었다.


“시윤아. 여기 앉아 있어. 엄마랑 서윤이 금방 올 거야. 알았지?”

“아빠는여?”

“아빠는 이제 앞에 나가야 돼”


잠시 후 아내와 서윤이가 들어오는 게 보였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모두 다시 나가는 것도 보였다. 아마 소윤이를 데리러 갔을 거라고 생각했다. 몇 분 후 소윤이도 함께 본당으로 내려왔다. 지난주와 다르게 서윤이가 잠들지 않았다. 난 단 위에, 아내는 맨 뒷자리에 있었다. 서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서윤이 때문에 고생하는 아내의 모습이 아주 잘 보였다. 안았다가, 내려놨다가, 다시 안았다가, 아기띠로 안았다가.


반주를 마치고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서윤이는 잘 생각이 없어 보였다. 졸려서 짜증을 내고 그러는 건 아니라 다행이었다. 기분은 좋았다. 다만 좀 부산스러웠을 뿐이다. 설교를 듣는 아내와 나의 눈과 귀가 자꾸 자기를 향하도록 만들었다. 한 대 콕 쥐어박고 싶은데 사실은 전혀 그럴 마음이 없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은 이상한 표현이지만 서윤이를 보는 아내와 나의 마음이 딱 그랬다. 이런 일편단심도 언젠가는 사라지고 언니와 오빠처럼 제대로 된(?) 육아의 때가 오겠지 싶었는데, 생각보다 막내를 향한 특별한 마음이 오래 유지된다.


교회에 오기 전에 장모님에게 전화가 왔다. 장인어른이 손주들을 너무 보고 싶어 하신다고 했다. 예배가 끝나고 내가 축구하러 간 사이 아내와 아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러 오는 게 어떠냐고 하셨다. 원래는 아내가 날 축구장에 데려다주고 장모님, 장인어른에게 갔다가 축구 끝날 시간에 맞춰 데리러 온다고 했는데, 그럼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그래서 차를 각각 타고 움직였다. 점심 먹고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바로 장모님, 장인어른을 만나러 출발했다. 난 시간이 좀 남아서 카페에 있었다. 아무것도 챙겨 오지 않아서 정말 잉여롭게 휴대폰을 보며 앉아 있기만 했다.


축구를 마치고 집에 왔을 때 아내와 아이들은 없었다. 한 시간쯤 지나고 나서 도착했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무척 들떠 있었다. 그에 비해 아내는 다소 가라앉은 느낌이었다. 지쳐 보였다. 친정에 갔다 온 사람이 맞나 싶었다. 얘기를 들어 보니 일단 시윤이 때문에 몸과 마음의 고생이 심했다고 했다. 요즘 우리 집에서 가장 ‘징징이’인 시윤이가 거기서도 비슷했다고 했다. 졸음까지 겹치니 더 증폭됐다고 했다. 아내가 감정적으로 받아치고 그러지는 않았지만 감정을 배제하기 위한 소모는 온전히 아내의 몫이었다.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나중에 후회하고 마음고생이 심하고, 그걸 막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면 그건 또 그 나름대로의 고생이 생긴다.


시윤이를 씻기고 있을 때 밖에서 아내가 소윤이에게 얘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윤이가 매니큐어를 가지고 놀다가 옷과 양말에 좀 묻힌 모양이었다. 대충 들어 보니 매니큐어를 가지고 물장난을 치다가 그렇게 된 거고, 매니큐어는 바르는 건데 왜 물장난을 쳐서 옷에 튀게 만들었냐는 내용이었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흘려 들었다.


셋 모두 재울 준비를 마치고 방에 눕히려고 하는데 소윤이가 울상이었다. 그 사이 무슨 속상한 일이 있었나 싶었는데, 아내가 매니큐어 가지고 얘기한 게 속상해서 그런 거였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훌쩍이는 소윤이를 위로해 주려고 했는데 별 반응이 없었다. 소윤이는 이럴 때 억지로 웃게 만드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거기서 멈췄다.


아내가 재우면서 소윤이에게 사과를 했다고 했다. 아내가 사과를 했다는 건, 아내 스스로 뭔가 잘못한 지점을 느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아내나 나나 이런 일이 많아질 거다. 어렸을 때는 그냥 넘어가던 아내나 나의 실수, 미필적 고의들에 아이들이 반응하는 일이 많아질 거다. 소윤이가 요즘 부쩍 그런다.


아까 반주를 마치고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갔을 때, 소윤이가 날 보자마자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서 보여 주려고 했다. 뭔지는 보지 못했지만 어린이 예배에서 뭔가를 만들어 왔다는 걸 알아차렸다. 예배 시간이니 예배 끝나고 보여 달라고 했다. 소윤이는 예배가 끝나자마자 그걸 꺼내서 보여줬다. 아이들과 짐을 챙겨서 올라가야 하는 분주한 상황이었다. 지금은 정신이 없으니 이따가 자세히 보여 달라고 했다. 점심을 먹고 카페에 들렀다가 아내와 아이들은 장모님, 장인어른에게 가고 난 카페에 남았을 때, 차에 앉은 아내와 아이들에게 인사를 건네는데 소윤이가 다시 그걸 꺼내서 나에게 줬다.


“소윤아. 아빠 지금 가방도 없고 그래서 이따가 집에 가서 보여줘”


이건 고민이나 생각을 거치지 않고 습관처럼 튀어나온 말이었다. 가방은 없지만 차는 있었다. 말도 안 되는 핑계였다. 순간 아차 싶어서 소윤이에게 다시 손을 뻗었다.


“소윤아. 아니다. 아빠 그거 줘. 아빠가 카페에서 볼게”


성경의 내용을 가지고 만든 나름 팝업북이었다. 이런 만들기를 좋아하는 소윤이가 얼마나 정성스럽게 한 땀 한 땀 만들었는지 상상도 됐고, 보이기도 했다. 소윤이에게 많이 미안했다. 도대체 몇 번을 건성으로 거절한 건지.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만나러 가서 장모님에게도 자기가 만든 걸 열심히 설명하길래 아내가


“소윤아. 그럼 그거 아빠한테 주지 말고 가지고 오지 그랬어”


라고 얘기했는데


“아니에요. 아빠한테 너무 보여 주고 싶었어여”


라고 대답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더 미안해졌다.


자기 전에 메모지에 짧은 편지를 썼다.


‘소윤이가 만든 팝업북(이라고 자꾸 하니까 굉장히 거창해 보이네)을 너무 잘 봤고, 얼마나 정성 들여서 만들었을지 상상이 된다. 앞으로도 소윤이가 만드는 책 기대하겠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아빠가 누나에게만 편지를 쓴 걸 보면 서운해할지도 모르는 시윤이에게도 편지를 섰다. 시윤이는 뭔가 만든 게 없으니 칭찬거리를 만들었다. 아니, 만든 건 아니고 진짜 그렇게 느끼지만 한 번 더 진하게 표현했다.


‘시윤이가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글씨 읽는 소리가 얼마나 듣기 좋은지 모른다. 그동안 시윤이가 얼마나 고생하고 노력했는지 상상이 된다. 앞으로도 책 읽는 소리 많이 들려줘라’


이런 내용이었다.


그렇게 써 놓고 나니 아이들이 이걸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더 솔직히 말하면 ‘소윤이랑 시윤이가 이거 보면 엄청 좋아하겠지? 아빠 최고라고 칭찬하겠지?’라는 기대가 생겼다. 아마 소윤이도 이랬을 거다. 다시 한번 미안하면서도 편지가 그걸 좀 만회하길 바랐다.


역시 사람은 역지사지를 해야 한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을 해야 하고. 육아인은 '이따가 병', '나중에 병' 빨리 치료해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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