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커피론

22.02.21(월)

by 어깨아빠

점심시간이 끝나고 오후의 첫머리에 막 진입했을 때


“여보. 잘 지내고 있나요”


라고 메시지를 보내며 아내의 안부를 물었다. 아내에게 이렇게 답장이 왔다.


“여보. 보고 싶네”


주말을 보내고 출근해서 월요병으로 고생할지도 모르는 남편을 격려하기 위한 통상적 표현이었거나 진짜 그립고 보고 싶은 마음이었거나. 아니면 고된 육아의 시간을 보내다 보니 일급 육아 동지인 당신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는 표현이었거나. 어떤 의미였는지 듣지는 못했다. 다만, 점심 준비도 못 했는데 언제 시간이 이렇게 갔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걸 봐서는 매우 바쁜 건 분명했다. 그러고 나서는 퇴근할 무렵에 다시 메시지가 왔다.


“데리고 나온 것을 후회한다. 너무 힘드네”


아마 하루 종일 집에 있다가 잠깐 장을 보러 나갔거나 산책을 하러 나간 모양이었다. 아마 아내의 ‘힘듦’을 가장 많이 유발하는 건 서윤이었을 거다. 아내는 영상을 같이 보낸 건데 영상은 안 오고 메시지만 왔다. 나중에 영상을 보니 아니나 다를까, 문구점에 간 서윤이가 이것저것 만지면서 돌아다니는 모습이었다.


“엄마아. 이건 무에여어?”

“어, 그거? 글쎄 엄마도 잘 모르겠네”

“이거는여어? 무에여어?”

“그거? 수정 테이프야”

“머야구여어?”

“수정 테이프라고. 서윤아, 만지면 안 돼. 눈으로만 봐야 돼”

“이거느은 무에여어?”

“그거? 글쎄. 서윤아. 만지면 안 돼. 알았지?. 서윤아. 우리 언니, 오빠한테 가 볼까?”

“머야구여어?”

“언니, 오빠한테 가 보자고. 엄마 간다. 안녕?”


서윤이의 목소리에는 호기심이 한가득인데 아내의 목소리에는 고단함이 한가득이었다. 아내가 ‘후회’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사실 아내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거다. 나가야만 하는 상황이었을 텐데, 그렇다고 서윤이만 떼어 놓고 나오는 건 불가능하니까. 이러든 저러든 서윤이를 데리고 나와서 고생을 자처해야 하는 상황이었을 거다. 불나방 육아를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해야 하니까 할 때도 많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렸을 때 아내와 아이들도 막 집에 들어가고 있었다. 아내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지침’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아내가 저녁 반찬으로 과메기를 샀다. 지금이 제철이라고 했다. 태어나서 세 번째 먹어 보는 과메기였다. 처음 먹었을 때는 정신이 없었다. 맛이 기억이 안 난다. 두 번째 먹었을 때는 몇 점 안 먹었는데 엄청 맛있었다. 그걸 먹고 나서 ‘언젠가 과메기 한 번 사 먹어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 나서 오늘이 세 번째였다. 아주 맛있게 잘 먹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엄청 잘 먹었다. 신기했다. 과메기 같은 일반적이지 않은 음식도 그렇게 잘 먹는다니. 소윤이와 시윤이의 편견 없는 식성에 다시 한번 놀라고, 뿌듯했다.


저녁을 약간 늦게 먹기도 했고 먹고 나서도 약간 여유를 뒀다. 밥 먹자마자 씻고 재우는데 촉각을 곤두세우는 게 좀 미안했다. 잠시 나에게 엉겨 붙을 시간을 줬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어제 내가 써 준 짧은 편지를 읽고 난 소감(?), 내가 없는 동안 서윤이가 보여 준 귀여운 말이나 행동 같은 일상의 이야기를 전해줬다.


그러다 보니 아내가 애들을 재우러 들어간 시간도 평소보다 조금 늦었다. 아이들과 기도를 하고 인사를 나눈 뒤 거실에서 나왔다. 잠깐 소파에 앉아서 쉬다가 설거지를 하려고 싱크대로 갔다. 이제 대충 훑어보면 대략 어느 정도의 양인지 가늠은 한다. 오늘은 대충 봐도 그릇이 꽤 많아 보였다. 많을 거라고 예상하고 시작했는데 정말 많았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설거지에 할애했다.


아내는 여느 날처럼 꽤 오랜 시간이 흐르고 탈출했다. 오늘은 커피도 빵도 없었다. 아내는 과자 하나를 꺼냈다. 역시 언제나처럼 마치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마지못해 하는 사람처럼 한숨을 크게 쉬면서. 그러고 내 옆에 앉아서 자신의 ‘커피론’을 설파했다.


“여보. 내가 생각을 해 봤는데 캡슐 커피는 내가 낮에 커피를 한 잔 먹었는데 저녁에도 한 잔 더 마시고 싶을 때는 괜찮아. 그걸로도 충족이 돼. 근데 낮에 커피를 못 마셨을 때는 밤에 캡슐 커피로는 만족이 안 돼”


커피론을 열심히 설파한 아내는, 정작 오늘은 남이 타 주는 커피도 캡슐 커피도 못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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