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2.22(화)
아내가 오전부터 힘들다며 카톡을 보냈다. 항상 힘들고, 그 고단함을 토로하는 날도 많지만 오늘은 조금 느낌이 달랐다. 아내 스스로도 자기가 ‘감정적이고 질렸다’는 표현을 쓸 정도였다. 평소보다 훨씬 더 과격한(?) 표현도 사용했다. 시윤이와의 관계에서 유발된 일이었다. 뭐라고 답장을 해야 할까 고민을 한참 했다. 몇 번을 썼다 지우기도 했고. 사실 나도 숨이 턱 막혔다.
메시지를 보내는 대신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까는 쇄골쯤에서 막혔던 숨이, 통화를 하고 나니 목젖까지 올라온 느낌이었다. 육체의 건강을 자신하는 것만큼이나 마음의 건강을 챙기지 않는 것도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특히 아내처럼 그러기에 충분한 환경과 여건에 노출된 사람에게는. 산후 우울증, 육아 우울증이라는 말이 괜히 생겼겠나. 마음과 의지의 나약함으로 치부하기에는 그 고립감과 막막함이 상상 이상으로 거대하게 느껴질 때도 많다는 걸, 나도 간접적으로는 안다.
아내의 작은 물결이 큰 파도가 되지 않도록 나름대로 신경 쓰려고 하는데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나도 아내와 비슷한 ‘불완전 인간’인지라.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기로 했다. 당장 반차라도 내고 집에 가서 아내를 내보내고 내가 아이들을 맡는 게 가장 좋아 보였지만, 그런 배포를 가지기에는 회사에서도 불완전 존재였다. 아내와 통화를 끝내고 차분하게(실제로 차분하기는 어려웠지만) 생각했다.
일단 상황 분석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해결책이나 판단 따위를 전하는 걸 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그런 게 필요할 때도 있다. 아무도 함부로 조언하지 못하는 무소불위의 '엄마'의 권위에 감히 진심어린 충고와 제언을 할 수 있는 존재는 남편 뿐이다. 그래도 지금은 아니었다. 대신 아침을 몇 시쯤 먹었는지 물어봤다. 그리 늦게 먹은 건 아니었다. 배달 앱으로 피자 한 판을 주문했다. 물론 집으로. 도우에 치즈도 추가했다. 카톡도 보냈다.
“오늘 저녁에 나갔다 와. 내 저녁은 신경 쓰지 말고 (목장 모임 끝나고 먹으면 되니까). 애들 저녁도 굳이 애써서 먼저 먹이려고 하지 말고. 나 퇴근하면 바로 나가. 시윤이를 데리고 나가도 되는데 이건 여보가 알아서 하고”
아내는 시윤이를 데리고 나가는 게 좋은 생각이라고 했다. 그 뒤로도 아내가 메시지를 몇 개 보냈는데 훑어보듯 빠르게 읽고 많이 생각하지 않았다. 나도 너무 깊이 들여다보지 않는 게 당장은 더 낫겠다고 판단했다. 치킨 보내줘서 감사하다는 소윤이와 시윤이의 영상과 피자를 안 먹는 서윤이의 영상이 도착했다. 기왕이면 모두 잘 먹는 게 더 좋았겠지만 사실 그게 제일 중요한 건 아니었다. 아내가 한 번이라도 밥 고민 덜 하고 반찬 고민 덜 하는 게 목적이었다.
혹시나 시윤이를 데리고 나가게 되면 시윤이가 너무 피곤하면 안 되니까, 정말 오랜만에 시윤이도 낮잠을 재워 본다고 했다. 서윤이 낮잠 잘 때 소윤이와 시윤이도 함께 들어가서 누웠다고 했다. 물론 실패(?)였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너무 떠들어서 중간에 쫓겨났다고 했다. 결국 아내는 시윤이를 데리고 나가는 건 다음에 하겠다고 했다.
“내가 조금 더 에너지가 있을 때 데리고 나가는 게 좋을 거 같아”
맞는 말이었다. 그저 데리고 다니는 게 아니라 좋은 마음, 따뜻한 감정을 주고받는 시간이어야 했다. 그러려면 둘 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고, 마음의 준비는 곧 넉넉한 체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발 물러서서 다음 기회를 보는 것도 지혜로운 선택이었다.
집에 도착하니 아내는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옷차림은 그대로(외출하기 위한 복장이 아닌)였다. 퇴근하자마자 나가라는 나의 선포에도 불구하고 왜 그 시간까지 옷도 못 갈아입고 국을 휘젓고 있어야 하는지 너무나 잘 안다. 아내라고 그러고 싶어서 그랬을 리가 없다. 육아의 물살에 떠밀리다 보니 그렇게 된 거다. 잘 알지만 그런 아내의 모습을 보니 속이 상하기도 하고 화도 났다.
‘아니, 지금 국이 중요한가. 저녁이야 대충 계란밥으로 때워도 되는 걸 왜 굳이 저렇게 하고 있는 거야. 지금 국 챙길 때야. 자기 속을 챙겨야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에게도 그만하고 얼른 준비하고 나가라고 했다. 결국 아내는 가족의 저녁 식사를 모두 차려 주고 나갔다. 아내가 나갈 때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비슷하다. 엄청 슬프지만 꾹 참는 게 보인다. 서윤이는 그때그때 다르다. 오늘은 어떨지 궁금(이 아니라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잘 보내줬다.
“엄마아아. 달 가따아여어어”
오늘은 아빠하고 잔다는 말에도 시원하게 ‘네’라고 대답했다. 그래도 막상 때가 되면 엄청 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지우지 않았다. 나도 목장 모임이 있어서 시간이 그렇게 여유롭지는 않았다. 오히려 빠듯했다. 촉박한 시간을 핑계 삼아 아이들을 재촉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재촉하지 않아도 아이들에게는 분주한 시간이다. 목장 집사님께는 미리 말씀을 드렸다. 오늘은 애들을 재워야 해서 일단 듣기만 하다가 재우고 나면 화면을 켜고 참석하겠다고.
아이들과 함께 방에 들어가서 누웠다. 그렇게 노력을 했는데도 아이들을 채근하고, 무엇보다 저녁시간을 ‘자러 들어오기 위해’ 보낸 것 같아 미안했다. 소윤이부터 한 명씩 이름을 부르고 사랑한다고 얘기했다. 소윤이와 서윤이는 대답을 잘 했는데 시윤이는 대답을 못했다. 5분도 안 돼서 잠들어 버렸다. 소윤이도 조금 뒤에 금방 잠들었다. 서윤이만 말똥말똥했다.
“서윤아, 얼른 자야지”
“네에”
“서윤아. 그럼 아빠 나가도 돼?”
“네?”
“아빠 나가도 되냐고”
“아니여어. 아빠아. 아가지이 마데여어어”
너의 마음은 갈대구나. 언제는 있겠다고 해도 나가라더니. 꿩이 없을 때는 확실히 닭을 찾는 건가. 그래도 다행이었다. 서윤이가 엄마 없다고 울지 않아서. 서윤이의 경련 사건을 겪고 난 뒤로는 ‘너무 심하게 우는 상황’에 두려움이 생겼다. 매 순간 전전긍긍하지는 않지만 오묘한 불안감이 피어오른다. 오늘도 그랬다. 많이 운다고 똑같은 일이 생기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우는 걸 보면 그때의 모습과 기억이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울지 않고 자서 정말 다행이었다. 서윤이가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거실로 나왔다.
영업 시간 제한이 한 시간 늦춰진 게, 아내에게는 큰 도움이었다. 어디 가서 뭘 했는지 자세히 듣지는 않았다. 뭘 했든 아내의 격동하던 마음이 좀 진정되고 깊은 우울감에서 좀 빠져나오길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