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만난 울산 손님, 셋째 날

22.03.06(주일)

by 어깨아빠

오늘도 아내와 내가 더 늦게까지 잤다. 미안했다. 손님을 초대해 놓고 거실에 내모는 것도 모자라 주인이 늦잠이라니. 아내는 아예 정신을 못 차리길래 내가 먼저 나왔다. 방 문을 잠그고. 아이들 아침으로 계란밥을 주려다가 아무리 아이들이어도 손님인데 계란밥을 주는 게 미안해서 볶음밥으로 변경했다. 그래봐야 파, 당근, 감자 정도 더 들어간 것뿐이었다.


아이들은 오늘도 아침부터 알차게 시간을 썼다. 허투루 버리는 시간 없이 빼곡하게 놀았다. 누구 하나 겉돌거나 소외되지 않고, 첫째부터 막내까지. 앉아서 쳐다보는 게 일상의 전부인 막내도 서윤이가 열심히 이름을 불러가며 챙겼다.


아내는 아이들이 볶음밥을 다 먹었을 때까지 잤다. 웬만하면 아내를 먼저 깨우지 않는데 먼저 들어가서 깨울 정도로, 늦은 시간까지 잤다. 문을 잠그고 나왔기 때문에 베란다를 통해서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내도 아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을 거다.


K네 가족은 이쪽에 예전에 다녔던 교회가 있어서 거기로 갔다. 아이들은 예배가 끝나고 다시 만난다는 생각 때문인지 오히려 더 신나게 헤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좋을까. 소윤이와 시윤이의 모든 지표(표정, 말투, 행동, 분위기 등)가 ‘매우 신나고 흥분’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오히려 너무 과해서 평소에는 잘 안 하던 말이나 행동이 보일 정도로.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소윤아(시윤아). 너무 좋아?”


라고 여러 번 물어봤는데 그때마다 대답은 똑같았다.


“네. 좋아여”


대답은 담백했지만 표정이나 마음은 아주 진하게 느껴졌다.


서윤이는 예배를 시작하면서 유모차에 앉혔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내려오지 않았다. 찬양할 때는 나름 시끄럽게 목소리를 내고 손을 들면서 찬양을 했고, 기도를 할 때는 손을 모으고 눈을 꼭 감았다. 축복할 때는 열심히 박수도 치고. 아무튼 굉장히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잠들기 시작했다. 손을 빨지 않고 잠든 게 신기했다. 운 좋게 서윤이가 잠드는 순간의 모습을 포착하고 아내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얼른 보라는 뜻이었다. 아내와 나는 잠드는 서윤이를 보다가 서로 눈을 맞추고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교환했다.


K의 가족과 함께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시간이 좀 남았다. 근처에 있는 자연드림에 가서 장을 봤다. 푹 자고 일어난 서윤이가 아주 좋은 기분으로 매장 이곳저곳을 활보하며 참견을 했다. 난 그 뒤를 열심히 쫓아다녔지만 조금도 힘들지 않았다.


“아빠아. 안아 두데여어”

“그럴까?”


오히려 반가웠다. 다만 지속시간은 짧았다.


“서윤아. 이제 내려갈까? 아빠 힘들다”


서윤이를 안을 때마다 소윤이 때도 이렇게 지속시간이 짧았는지 의심스럽다. 내 느낌에 그때는 지금에 비하면 강철 체력이었던 것 같은데.


주일마다 가는 칼국수 가게에서 K의 가족을 만났다. 꼭 맛보게 해 주고 싶었다. 그저 동네의 칼국수 집이지만 아내와 나에게는 현재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맛집이었다. 웬만해서는 안 그러는데 이곳의 대표 음식인 ‘장칼국수’를 시키지 않았다는 K의 가족에게, 주문 수정을 권유했다. 우리의 음식도 조금 더 어른을 위한 구성으로 시켰다. 평소에는 아내와 내가 먹을 매운 칼국수, 아이들이 먹을 돈까스, 아이들도 먹고 우리도 먹는 안 매운 칼국수를 시킨다. 오늘은 매운 칼국수, 매운 비빔 칼국수, 돈까스 이렇게 시켰다.


“소윤아, 시윤아. 오늘 너희는 돈까스만 먹어. 엄마, 아빠는 돈까스 안 먹을 테니까”


비빔 칼국수를 K의 가족에게 맛 보이기 위한 주문이었다. 다행히 다들 맛있게 먹었다. 무슨 식당 관계자도 아닌데 내가 다 기분이 좋았다. 물론 기대에 못 미쳤더라도 맛있다고 말해 줄 사람들이긴 하지만 진짜 맛있어서 하는 말 같았다. 아무튼 뿌듯했다. 다행히 우리 아이들도 오늘은 평소에 비해 식욕이 덜했는지, 돈까스로도 충분히 배를 채웠다.


K의 가족이 잠시 일산에 갈 일이 있다고 해서 우리도 함께 갔다. 엄청 졸렸다. 신호 대기할 때 눈이 감길 정도로. 도넛 가게에 들렀을 때 아내와 운전을 교대했다. 카페에 들러서 다시 동네로 올 때까지 아내가 운전을 했다. 시간으로 치면 30분 남짓한 시간이었다. 조수석에 앉아서 눈을 붙였는데 역시나 엄청 귀중한 쪽잠이었다. 당장 위독한(?) 피로는 해소한 듯 개운했다.


나는 자느라 몰랐는데 아이들끼리 나눈 대화가 너무 재밌었다면서 아내가 얘기해 줬다(K의 아이들이 우리 차에 탔다).


“00아. 너는 가장 좋았던 때가 언제야?”

“어, 나는 00이(막내 동생) 태어났을 때랑 레고 샀을 때랑…어쩌고저쩌고”


“소윤아. 너는 가장 안 좋았던 때가 언제야?”

“아, 나는 작년 어린이날. 왜냐하면 그날 아빠가 우리 인형을 다 바렸거든. 아니 3일만 있으면 어버이날인데…어쩌고저쩌고”


“소윤아. 너는 제일 좋아하는 게 뭐야?”

“어떤 거 중에? 뭐 음식이나 장난감이나 책이나 이런 거 중에 어떤 걸 말하는 거야?”

“어, 뭐냐면, 어”

“친구 중에?”

“어”

“너?”


나중에 K 부부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그들은 자기 아들의 무던함과 눈치 없음에 통탄했다.


아이들은 ‘놀이터’에 가고 싶어 했다. 아이들과 종종 가는 공터 같은 광장 옆에 놀이터에 가기로 했다가 마침 그 옆에 새로운 놀이터가 다 지어졌길래 거기로 갔다. 막상 갔는데 다른 아이들이 너무 많았다. 무엇보다 바닥이 모래였다. 다른 아이들은 그래도 눈 꾹 감고 ‘그래 놀아라. 씻으면 되지’가 나오는데, 서윤이는 도저히 그게 안 됐다. 눈 꾹 감았다 떠도 입이 안 떨어졌다. 서윤이와 K의 막내를 제외한 아이들은 짚라인을 서너 번씩 탔다.


“얘들아, 우리 그냥 저쪽 광장으로 갈까?”

“왜여?”

“아, 여기 사람도 너무 많고 그래서. 사람 없는 곳에 가서 놀자”


많이 미안하긴 했다. 기껏 기대를 부풀려서 데리고 왔으면서 오자마자 가자고 하는 게. 고맙게도 아이들은 누구도 불평하지 않고 자리를 옮겨줬다. 기특한 녀석들.


킥보드를 가지고 갔으니 킥보드를 타라고 했는데 별로 재미가 없었나 보다. 다들 시시해 하던 와중에 K가 아이들과 함께 땅따먹기(사방치기)를 시작했다. 아이들이 거기에 엄청난 흥미와 재미를 보였다. 난 서윤이와 놀았다. 서윤이 녀석은 그새 커서 이제 킥보드를 혼자 탔다. 운전면허학원 기능 연습장의 자동차처럼 느린 속도긴 했지만, 발을 구르는 원리를 정확히 이해하고 구사했다. 자기도 신이 나는지 타면서 계속


“아빠아. 더어 달 해여어?”


라고 물었다. 혹시 넘어질지도 모르니 계속 서윤이 뒤를 쫓아다녔다. 그렇게 쫓아다녔어도 결국 앞으로 한 번 꼬꾸라졌고 이마에 상처가 났다.


땅따먹기를 하던 시윤이는 재미가 없었는지 어제처럼 혼자 떨어져 나왔다. 서윤이를 아내에게 맡기고 시윤이와 붙었다. 누가 놓고 간 테니스 공이 있길래 어제처럼 발로 차면서 주고받았다. 다 함께 어릴 때는 같이 놀아 주는 것도 단순하고 쉬웠는데, 아이가 많아지고 시기의 차이가 나기 시작하니 각각의 취향을 맞춰주는 것도 까다로운 일이 되었다. 특히 시윤이처럼 꼭 누구하고 같이 놀아야 하는 자녀와 함께 할 때는.


집에 돌아왔을 때는 어제와 같은 기분이었다.


‘아니. 뭘 했다고 벌써 저녁 먹을 때가 됐지?’


아이들 저녁 먹이고 씻겨서 눕히는 시간은 항상 비슷했다. ‘만유인력의 법칙’, ‘질량 보존의 법칙’ 같은 물리 법칙처럼, ‘취침 시간 불변의 법칙’이 존재하는 것처럼. 오늘은 좀 앞당겨 보자고 마음을 먹고 움직여도 항상 그랬다. 참 신기한 노릇이다.


K와 내가 아이들을 재우고 아내와 K의 아내는 밖으로 나갔다. 내일이 소윤이 생일인데 준비가 하나도 안 되어 있었다. 간단하게라도 꾸밀 재료를 사서 오늘 밤에 준비를 해야 했다. 아내는 풍선과 장식용 나뭇잎(?)을 사 왔다. 작은 꽃 화분도 하나 샀다. 소윤이가 얼마 전부터 화분을 너무너무 키우고 싶다고 했는데, ‘가만히 두지 않을 서윤이’ 때문에 계속 미뤘었다.


나는 미역국을 끓였다. 아내와 K의 아내, 그리고 K까지. 소윤이 생일 준비에 동참했다. 그 늦은 밤에 남의 딸 생일 준비에 동참시키는 게 조금 미안했다. 그래도 그들 덕분에 준비가 많이 풍성해졌다.


생일 준비 덕분에 야간 수다 개시 시간이 많이 늦어졌다. 마치 무슨 의식을 치르는 느낌이기도 했다. 아무리 피곤하고 졸려도 그 시간만큼은 사수해야 한다는 어떤 종교 결사체의 강성 구성원들처럼, 자연스럽게 상을 펴서 주전부리를 꺼내 놓고 그 주변에 둘러앉았다.


너무 신이 나서 목소리가 커졌다가도 아이들의 울음소리나 기척이 들리면 깜짝 놀라서 목소리를 낮추곤 했다(아마, 내가 가장 목소리가 컸던 것 같기도 하다). 각각 자녀가 한 명일 때부터 이어진 ‘야간 수다’의 시간이, 자녀가 많아진 지금도 잘 보존되고 있어서 감사했다.


중요한 의식처럼 이 시간을 수호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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