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만난 울산 손님, 둘째 날

22.03.05(토)

by 어깨아빠

K네 가족이 거실에서 자고 우리 가족이 안방에서 잤다(애들 재울 때는 한 방에서 재우고 거실에서 어른들의 수다 시간을 가지다가, 잘 시간이 되어서는 K네 아이들을 거실로 옮겼다). 덕분에 아내와 내가 아침 시간에 조금 더 오래 잤다.


곧 생일을 앞둔 소윤이가 할머니에게 미리 생일 선물을 받았다. 소윤이가 강력하게 원하던 인라인스케이트였다. 며칠 전에 배송이 됐고 소윤이는 그때부터 타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꺼내 보고 신어 보고, 언제 타러 나갈 수 있냐고 물어 보고. 아내 혼자 데리고 나가서 태우는 건 불가능하니 내가 있어야 했는데, 평일 저녁에는 내가 있어도 시간이 안 됐다. 자연스럽게 주말을 기약하게 됐고 마침 K의 아들은 롤러스케이트가 있다고 해서 오늘 타러 나가기로 했다.


아침 먹고 짐을 챙겨서 집 근처의 공터로 갔다. 아내가 예전에 가 봤고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기에 좋은 곳이라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그야말로 동네 공터라 주말이었는데도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거기에 생각보다 날씨도 추웠다. 이른 봄의 귀여운 추위를 상상하고 나왔는데 아직 남은 겨울의 사나운 추위와 맞닥뜨린 느낌이었다. 아이들은 특유의 허세로


“하나도 안 춥다”


며 뛰어다녔는데 어른들은 잔뜩 몸을 움츠리고


“어우. 너무 춥다. 조금만 놀고 가야겠다”


라는 말을 많이 했다. 같이 몸을 움직이니 좀 낫긴 했지만 바람이 많이 불어서 뭔가 차가운 기운이 가득이긴 했다. 날이 춥고 바람이 부는 와중에 보호 장구를 차고 스케이트를 신으려니 그것부터 시간이 오래 걸리고 힘이 들었다. 소윤이는 드디어 인라인스케이트를 탄다는 생각에 그저 신이 났다. 아마도 당장 쌩쌩 달리는 장면을 상상했을지도 모르겠다. 난 엄청 많이 넘어질 거라고 예상했는데 의외로 균형을 잘 잡고 섰다. 사실 나도 인라인스케이트를 타 본 게 오래돼서 뭘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소윤이는 넘어질까 봐 겁이 나서 어떻게든 나를 잡으려고 했지만 난 멀어졌다. 일단 잘 서니 혼자 타게 해야 금방 실력이 늘 것 같았다. 앞으로 쌩쌩 달리는 건 아직 멀어 보였지만 그래도 조금씩 앞으로 나가긴 했다.


시윤이가 심심해 보였다. 아니, 심심하다면서 시무룩해졌다. 킥보드를 타긴 했지만 롤러스케이트와 인라인스케이트를 함께 타는 형과 누나와 ‘함께’ 논다는 느낌이 안 들었을 거다. 어떤 면에서는 ‘무엇을’ 하느냐 보다 ‘누구와’ 노느냐가 더 중요한 시윤이에게는 충분히 따분할 시간이었다. 아내에게 소윤이를 넘기고 시윤이와 놀았다. 트렁크에 있던 뜯어진 테니스 공으로 시윤이의 우울함을 달랬다. 한참 재밌게 하다가 공이 배수로에 빠지는 바람에 살짝 위기가 오기도 했지만 무사히 넘겼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제법 오랫동안 놀았다. 서윤이의 공도 컸다. 내내 유모차에서 잔 덕분에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다. 서윤이는 다 놀고 다시 차에 태울 때 깼다. 그럴 때마다 많이 미안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점심으로는 쉑쉑버거를 먹었다. 나와 K가 막내를 데리고 먹었다. K의 막내는 아직 분유를 먹는 아기라 유모차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서윤이에게 햄버거를 줄 수는 없어서 옆에 있는 돈까스 가게에서 돈까스를 포장해 왔다. 서윤이에게 돈까스를 잘라 주고 밥을 떠먹여 주느라 다소 정신이 없기는 했지만 감당 가능한 수준이었다. 어차피 햄버거는 정신없이 욱여넣는 음식이기도 하고.


마트에 들러서 장을 보고 집에 돌아왔더니 어느새 또 저녁 먹을 시간이었다. 평소에 아내와 통화하면 아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어?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어? 아 그러네. 언제 이렇게 시간이 갔냐”


그게 무슨 말인지 절실히 체험했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평소에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때보다 훨씬 빠르게 흐르는 느낌이었다. 돌아서면 두세 시간씩 훅훅 지나 있었다. 그 말인즉, 뭐 한 것도 없는데 밥때가 찾아온 느낌이었다는 거다. 어른들은 배가 별로 고프지 않아서 아이들만 집에 있는 반찬으로 저녁을 먹였다. 밥 먹기 전에는 아이들 샤워도 시켰다.


아이들은 빠르게 흐르는 시간의 틈바구니에서 밀도 있게 시간을 쓰며 알차게 놀았다. 작은 자투리 시간도 놓치지 않고 뭔가를 했다. 보드게임도 하고 책도 읽고 자기들끼리 시답지 않은 이야기로 깔깔대기도 하고. 조금의 갈등이나 다툼이 없는 게 새삼 신기했다(사실 만날 때마다 그러는데도 볼 때마다 신기하다). 오히려 자기 형제에게는 야박해도 남의 동생, 누나, 형에게는 너그러웠다. 서윤이도 언니라고 동생의 이름을 불러가며 엄청 챙기는 것도 재밌었다. 아이들이 북적대는 것에 비해 굉장히 평화로웠고 정신이 사납지 않았다.


그렇게 놀아도 잘 때가 되면 아쉬워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아직 토요일밖에 안 됐잖아’라는 말로 달래며 눕혔다. 시윤이와 서윤이는 꽤 금방 잠들었는데 역시나 소윤이가 오래 걸렸다. 아내들은 야식을 사러 나갔고 K는 엄청 오랫동안 방에 머물렀다. K의 둘째가 엄청 오래 걸렸다. 울산의 Saint.K 라는 별칭(내 마음대로 붙임)을 가지고 있는 그가 열이 받을 정도였다. 그나마도 나올 때 혼자도 아니었다. K의 막내와 함께였다. 그래도 막내는 다 용납이 된다. 우리 집의 막내나 그 집의 막내나 위상은 비슷해 보였다.


내일 교회에 가야 하니 어제보다는 이른 시간에 수다를 마감했다. 시간이 너무 속절없이 흐른다는 생각을 오늘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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