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만난 울산 손님, 넷째 날

22.03.07(월)

by 어깨아빠

손님을 계속 거실에 내모는 게 미안해서 어제는 우리 가족이 거실에서 잤다. 아이들은 일찍부터 깨서 움직였지만 그걸로 잠이 확 깨지는 않았다. 그걸 무시하고 푹 잠들 정도도 아니었고. 조금씩 잠이 사라지고 정신이 돌아오고 있는데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결에도 약간의 ‘긴장감’이 가미된 목소리라는 게 느껴졌다. 게다가 이런 내용이었다.


“시윤아. 이리 와 봐. (잠시 묵음) 엄마랑 방에 들어가 보자”


무슨 일인지 정확히는 몰라도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일 것 같기는 했다. 천천히 멀어지던 잠이 확 달아났다. 잠시 후 아내가 시윤이와 함께 나오면서 바로 나에게 얘기를 했다.


“여보. 시윤이도 뭐 났네. 수두 같아. 여보가 한 번 봐봐”

“아, 진짜?”


시윤이를 내 앞으로 데리고 와서 살펴봤다. 자세히 살펴 보기도 전에 확신했다.


“여보. 맞네. 시윤이도 수두네. 하아. 이렇게 옮다니”


수두라는 걸 확신하고 나서는 얼마나 났는지를 살펴봤다. 다행히 엄청 많이 난 건 아니었다. 아내는 약간 평정심을 잃었다. 다른 것보다 K의 아이들에게 옮을까 걱정하느라 더 그랬다. 아직 K와 K의 아내는 자고 있었다. 아내는 소윤이 때처럼 시윤이에게 마스크를 씌웠다. 코로나 시국에 아직까지는 절묘하게 코로나는 피해 가더니 수두의 폭격을 정통으로 맞았다.


K가 먼저 나왔다. K는 아이들이 수두 예방 접종을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른다고 했다. K는 ‘괜찮지 않을까요’라고 말했지만, 아내는 걱정을 떨쳐내지 못하고 ‘오늘 내려가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얘기했다. 일단 K의 아내가 나와야 상황이 정리가 될 듯했다. 난 일단 시윤이를 데리고 병원에 다녀 오기로 했다. 아침을 먹고 바로 시윤이와 함께 나왔다.


“시윤아. 괜찮아? 아프거나 그런 데는 없어?”

“네. 없어여”

“간지러운 건?”

“조금 간지럽긴 해여”


의사 선생님은 수포만 봐서는 수두인지 수족구인지 단순 피부염인지 당장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고 하셨다. 다만 정황상 수두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하셨다. K의 막내를 염두에 두고 ‘7개월쯤 된 아기에게 전염될 가능성’을 여쭤봤다. 그때는 오히려 엄마에게 받은 면역력이 남아 있을 때(사라지는 시기이긴 하지만)라 오히려 괜찮을지도 모른다고 하셨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물론 바이러스라는 게 어차피 이론과 예측대로 움직여 주는 건 아니지만. 시윤이는 혹시 자기를 빼고 누나의 생일 축하를 했을까 봐 걱정했다.


"에이, 시윤아. 그럴 리가 없지. 누나 생일인데 동생인 시윤이 없이 하겠어?"


아침부터 수두에 정신을 뺏기다 보니 소윤이 생일이라는 걸 자꾸 잊었다. 그래도 소윤이에게는 엄청 행복한 생일이었을 거다. 태어나서 매년 양쪽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생일을 보냈는데 올해 처음으로 할머니, 할아버지 없는 생일을 보낸 거다. 조금도 아쉬워하지 않는 걸 보면, 고향 친구(?)와 보내는 생일도 그에 못지 않게 기뻤던 게 분명하다. 게다가 처치홈스쿨의 몇몇 친구들도 집 앞에 와서 선물과 축하를 전달하고 갔다. 소윤이는 특유의 담백하고 얌전한 기쁨을 표현했다.


K네 가족은 예정대로 더 머물기로 했다. 대신 K의 첫째와 둘째는 예방 주사를 맞았다. 첫째는 2차, 둘째는 1차. 우리가 바이러스를 고의로 살포한 것도 아니고 오기 전에도 다 알고 있었지만, 괜히 미안했다. 이렇게 여지없이 전염이 될 줄이야. 덕분에 오늘 계획했던 일정을 전면 취소했다.


K의 아내와 나의 아내 모두 무척 졸려 보였다. K가 먼저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에 갔다. 나도 아이들을 준비시키고 K의 아이들이 병원에서 나올 시간에 맞춰서 나갔다.


“여보. 00랑 같이 좀 자”


K의 막내도 함께 잠들어 줘야 한다는 조건이 있기는 했다.


K와 그의 아이들을 만나서 동네 산책을 했다. ‘사람이 없는 야외’가 우리의 유일한 선택지였다. 그렇게 동네 주변의 산책로를 거닐다가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들어갔다. 때가 때인만큼 문이 잠겨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열려 있었다. 아무도 없는 학교 운동장을 K와 나의 아이들이 전세 내고 놀았다.


철봉, 정글짐, 구름다리, 늑목이 있는 운동장이었다. 아이들은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재밌게 놀았다. 철봉에 매달리기도 하고 정글짐에 올라 가기도 하고 구름다리에 매달려 건너 가기도 하고. 서윤이도 언니와 오빠를 야무지게 쫓아 다니면서 따라했다. K가 아이들을 모두 보고 난 서윤이를 쫓아 다녔다. 모래 운동장이었고 한편에는 모래가 수북이 쌓인 공간도 있었다. 자꾸 거기로 들어 가려는 서윤이의 정신을 다른 데로 돌려 놓느라 애를 먹기는 했지만, 역시나 감당 가능한 수준이었다. 아니, 오히려 서윤이와 노는 게 재밌었다. 점점 더 같이 노는 맛이 난다.


어제와 같은 현상이 벌어졌다. 집에 있다가 병원에 다녀 오고 나와서 산책했는데 벌써 저녁 시간이었다. 아니 진짜 ‘뭐 한 것도 없이 시간이 갔네’ 였다. K도 공감했다.


“오늘은 애들 진짜 일찍 재워야겠어요. 8시에 재워야겠어요”


아직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였다. 아이들과 산책을 조금 더 할까 고민하다가 본능과 경험의 사유가 발동했다.


‘아니야. 그렇게 방심하다가 어떻게 될 지 몰라. 빠른 게 빠른 게 아닐 거야’


K가 아이들에게 귀가 예정 시간을 고지했다.


“얘들아. 지금 53분이니까 55분에 가자. 2분만 더 놀고”


아이들이 속으로 ‘그건 그냥 지금 가자는 소리나 마찬가지 아닌가’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협상 끝에 7분으로 합의를 봤다. 아쉬워 하는 아이들에게 ‘원래 오늘 헤어질 수도 있었는데 하루 더 있게 됐잖아’라고 말하며 ‘너희는 지금 횡재한 거야’라는 명분을 들이밀었다. 착한 아이들은 설득 당했다.


집에 왔더니 K의 아내는 깨어 있었고 나의 아내는 자고 있었다. 아내는 우리가 나가자마자 바로 잠들었다고 했다. 그럼 꽤 잔 거였다. 소윤이와 함께 들어가서 깨웠는데 아내가 화들짝 놀라면서 일어났다.


“뭐야? 뭐야? 지금 뭐야?”


뭐긴 뭐야. 숙면이지. 나중에 들어 보니 아내가 곤히 자는 동안 K의 아내는 많은 일을 했다고 했다. 특히 막내가 똥을 푸지게 싸는 바람에 뒷처리를 하느라 고생을 했다고 했다. 아내를 깨워서 도움을 요청해야 할 정도였는데, 고민하다가 깨우지는 않았다고 했다.


저녁은 피자와 치킨을 먹기로 했다. 아내들에게 아이들 씻기는 걸 부탁하고 K와 내가 음식을 찾으러 나왔다. 은근히 오래 걸렸다. 8시에 재우자던 K와 나의 결의를 수호하는 게 불가능해졌다는 걸, K도 나도 느꼈다.


“와, 오늘도 늦었네요”

“그러게요. 가서 먹이고 그러면 8시에 눕히기만 해도 선방이네요”


감사하게도 아내들이 아이들을 모두 씻겼다. 그렇게 부탁하고 나오기는 했지만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니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너무 반가운 소식이었다.


피자와 치킨을 맛있게 먹고 아이들을 눕혔다. 또 ‘취침 시간 불변의 법칙’이 작용했다. 결국 그 시간이었다. 참 신기한 노릇이다. 우리 아이들을 애초에 거실에서 재웠다. 큰 의미는 없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시윤이와 K의 아이들을 멀리 떨어뜨리기 위한 조치였다. 서윤이는 엄청 종알거렸다. 엄청 떠들다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오늘도 소윤이가 좀 오래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제법 금방 재웠다. 산책로와 학교 운동장에서 열심히 걷고 뛰게 한 성과였다.


어느덧 마지막 밤이었다. 나는 출근을 해야 하고 K는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하니 1시로 시간을 정하고 수다를 시작했다. 아이들에게는 2분, 7분으로 에누리 없이 잘랐던 시간을 무려 한 시간이나 더 줬다. 물론 우리 스스로. 2시가 다 돼서 자리에 누웠다.


내일 출근할 생각을 하니 본능적인 거부감이 차올랐지만, 의지로 감사를 끌어올렸다. 평범한 주말이었고 휴가 내서 딱 하루 더 쉰 건데 엄청 긴 연휴를 보낸 기분이었다.


‘그래도 내일만 출근하면 또 쉰다’


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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