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3.08(화)
어제(..가 아니라 조금 전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지도) 늦게 잔 데다가 오랜만에 알람을 맞추고 일어나려니 무척 피곤했다. 정신을 좀 차리고 보니 작은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려고 하는데 안방에서 누군가 나왔다.
“아빠”
“어, 00아. 삼촌이야”
K의 둘째였다. 작은방에 있던 사람은 K였다. 그때는 무슨 상황인지 몰랐고 나중에 들어서 알게 됐다. K의 둘째가 자다가 오줌을 쌌고 K는 갈아입힐 옷을 챙긴 거였다.
K의 가족은 아침을 먹고 떠난다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제법 담담하게 이별의 순간을 흘러 보냈다고 했다. 아마 굉장히 아쉬웠겠지만 곧 또 만나게 될 거라는, 경험적 확신이 섰을 거다. 또 K의 가족이 떠날 때 아내가 일부러 아이들도 데리고 나왔다고 했다. 이별의 아쉬움도 희석시키고 장도 볼 겸. 소윤이와 시윤이는 괜찮았는데 오히려 아내가 울었다고 했다. 헤어질 때도 울고 헤어지고 나서도 울었다고 했다. 애들 걱정할 게 아니라 아내를 걱정(?)해야 했다.
K의 아내는 떠나기 전에 ‘토마토 스튜’를 만들어 줬다. 처음 온 날부터 하려고 했던 건데 오늘에서야 하게 됐다. 안타깝게도 K의 자녀들은 모두 외면했고 시윤이와 서윤이가 엄청 잘 먹었다고 했다. 내 저녁도 토마토 스튜였다. 내 입에도 괜찮았다. 뭔가 밥과 함께 먹는 건 당기지 않아서 스튜만 먹었다. 덕분에 밤에 배가 조금 고팠다. 저녁 소식을 유도하는 건강식이기도 했고 야심한 밤의 허기와 야식을 유발하는 위험한 음식이기도 했다. 아무튼 난 맛있게 잘 먹었다. 캠핑 가서 푹푹 끓여서 뜨끈하게 먹으면 맛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캠핑은 한 번도 안 해 봤지만.
아내는 원래 저녁에 약속이 있었다.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었는데 취소했다. 시윤이가 그러고 있으니 나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고 했다. 물론 아내가 엄청 갈망하던 자리가 아니긴 했지만, 괜히 안타까웠다. 시윤이의 수두가 더 심해지고 그런 건 아니었지만 두고 가려니 마음이 편하지 않았나 보다. 내일 예정되었던 처치홈스쿨 엄마 선생님 모임에도 못 나가게 됐다. 엄마들끼리만 만나는 모임이었지만, 만에 하나의 가능성까지 고려해서 보수적으로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그것도 아쉬웠다. 처음으로 애들 없이 엄마 선생님들끼리 만나는 거였는데.
시윤이가 평소에 워낙 간지럽고 불편한 걸 못 참는 탓에 걱정을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 가려운 걸 잘 참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하루 종일 간지럽다고 짜증 내는 것도 각오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의사 선생님 말대로 수포가 확 늘어나지도 않았다.
“집이 허전하네”
아내 말처럼 며칠 동안 북적북적하던 집이 매우 조용해진 느낌이었다. 따지고 보면 우리 가족만 해도 다섯 명이나 되는데. 다섯 명이어도 한가롭게 느껴질 정도라니. 저녁 먹고 나서는 소윤이 생일 축하를 한 번 더 했다. 우리 가족끼리 축하하는 시간도 가지고 싶었다. 아, 그러고 보니 아내가 오늘 약속을 취소한 데는 이 이유도 있었다. 아내가 나가게 되면 축하의 시간도 사라지니까.
애들을 재우고 영화를 봤다. 영화를 보고 나서는 아내와 한참 진지한 얘기도 나눴다. 깊게 남은 이별의 여운을 휴일 전날의 기쁨으로 달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