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3.16(수)
아이들을 못 봤다. 퇴근하자마자 바로 일이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늦게 끝났고, 자정을 넘겨서 집에 돌아왔다. 세 녀석 모두 보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막내가 제일 보고 싶었다. 혹시 깨서 안 나오나 싶었는데 오늘은 안 깨고 잘 잤다. 방에 들어가서 자는 걸 보는 것도 좋지만, 살아 있는(?) 아이들을 보는 것하고는 또 다르다.
아내는 낮부터 머리가 엄청 아프다고 했다. 아내의 두통은 다소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편이라 나도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는데, 내 느낌에 아직 두통이 올 때는 아니었다. 두통이라는 게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게 당연하긴 하지만. 낮에는 정말 많이 아팠다고 했다. 아무것도 못하고 쓰러져 누워 있어야 할 정도로. 낮에 잠깐 나갔다가 커피를 샀는데 그걸 제대로 마시지도 못 할 정도였다고 했다.
아무리 두통이 심해도 거르지 못하는 일이 있다. 먹고 싸는 일. 본인의 먹는 것이야 얼마든 미룰 수 있지만 자녀의 먹는 일은 그러기가 어렵다. 요즘 한창 잘 먹어서 끼니 때가 되면 여지없이 배가 고프다며 밥을 재촉하는 녀석들에게 ‘오늘은 엄마가 아프니 한 끼 굶자’라고 할 수가 없다. 아직 자기들끼리 차려 먹는 건 안 되고. 뭐 시키면 하기야 하겠지만, 그거 신경 쓰느니 차라리 아내가 직접 차려 주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아내는 두통을 안고 겨우겨우 저녁을 줬다고 했다. 만두와 두부 같은 걸로 대충 줬는데 그것도 어찌나 잘 먹던지 계속 더 달라고 난리였다고 했다. 그래도 소윤이와 시윤이는 이제 엄마가 힘들어 보이면 알아서 집안일도 하고, 그 밖에도 엄마에게 기쁨과 즐거움이 될 만한 일을 찾기 위해 노력할 정도로 컸다. 아직 어린데 그래도 컸다.
다행히 약효가 좀 있었는지 애들을 재우고 나와서는 두통이 조금씩 사그라들었다고 했다. 물론 약 못지않게 퇴근의 효과도 봤다고 생각한다. 계속 ‘아, 이제 이거 해야 하는데’라고 생각하며 은근한 긴장 위에 있다가 ‘아, 드디어 끝났다’의 세계로 접어들 때의 안정감은 겪어보지 않고는 느끼기 어렵다. 아내의 머리 어딘가를 짓누르던 통증의 근원은 약과 퇴근의 합동 공격에 위세가 약해졌을 거다.
날을 넘겨서 집에 들어왔을 때 아내는 거의 멀쩡한 사람이었다. 그때는 두통이 거의 다 사라졌다고 했다. 남편 없이 하루를 보낸 아내도, 일보다 피곤한 만남을 소화하고 온 나도 둘 다 무척 피곤했다. 게다가 내일은 아내가 애들 셋을 데리고 병원에 가야 했다. 그것도 아침 일찍.
“여보. 내일 일어나면 나 깨워”
말이 내일이지 ‘이따가’가 더 어울릴 만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