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대신 운동을

22.03.15(화)

by 어깨아빠


소윤이는 편지를 많이 쓴다. 아내와 나에게는 물론이고 동생들에게도. 다만 서윤이에게 집중되는 경향이 좀 있다. 오늘도 서윤이에게 마음을 가득 담은 장문의 그림 편지를 써서 줬다. 서윤이는 글씨는 몰라도 언니의 마음을 느꼈는지 엄청 뿌듯하게 읽었다고 했다. 시윤이에게 쓴 편지는 없었다. 아내가 유도해서 결국 하나 쓰기는 했는데, 무척 짧았다고 했다. 시윤이가 신경을 안 쓰면 모르겠는데 그건 또 아니다. 시윤이는 서운해한다. 막상 편지를 써 주면 막 엄청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심드렁하면서. 그러니 써 주는 소윤이는 또 맛이 안 나니까 안 쓰게 되고.


아내는 서윤이가 선 긋기를 한 사진을 보내줬다. 난 사진으로만 봐서 감흥이 덜 했지만 신기한 일이었다. 원래 그때쯤에 소윤이, 시윤이도 선 긋기를 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것과 상관없이 서윤이가 그걸 해낼 수 있을 만큼 컸다는 게 신기했다. 나도 직접 보면 훨씬 더 격한 반응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그러고 나서는 옷과 수건을 개는 세 남매의 사진을 받았다. 홈스쿨 하는 아이들의 일상이다. 엄마가 아이들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대신 아이들도 우리 집의 모든 일상에 책임을 져야 한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보고 배운 게 무섭다고 서윤이도 한자리 차지하고 앉아서 열심히 수건을 갰다. 당장의 완성도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앞으로 수도 없이 하다 보면 소윤이의 경지(나보다 나은)에 오르게 될 거다.


오늘의 저녁은 가지밥이었다. 아내의 대표 요리가 된 느낌이다. 맛의 완성도가 굉장히 높다. 다만 항상 양이 부족한 모양이다. 나는 괜찮은데 애들이 더 먹겠다고 난리였다. 아내가 평소보다 더 한다고 했는데도 아이들의 식욕을 채우기에는 모자랐나 보다. 밥은 괜찮았는데 가지가 부족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맨밥이라도 더 먹겠다며 다시 밥을 채웠다. 매일 보니까 몰라도 쑥쑥 크고 있나 보다.


저녁에는 목장 모임이 있었다. 아내가 아이들을 맡아서 씻기고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아내는 목장 모임이 끝날 때까지 나오지 않았다. 아니, 나오지 못했다. 아내는 10시가 다 돼서 나왔는데 바로 아이패드로 유튜브를 켜고 운동을 시작했다. 엄청난 의지였다. 그때 나도 작은방에서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한 명은 방에서, 한 명은 거실에서 헉헉대며 운동을 하는 모습을 과연 한 달 뒤에도 볼 수 있을지 생각하니 그냥 웃음이 나왔다. 예전에 언젠가 이랬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르기도 했고.


그래도 아내는 여전히 굳은 결심을 유지하고 있다. 며칠 동안 밤에 아내가 빵 먹는 모습을 못 봤다. 생각보다 우울해하지도 않는 것 같다. 매일 자기가 먹는 음식 사진도 열심히 찍는다. 이러다 진짜 몸짱 엄마 되는 거 아니야(라고 썼는데, 뭔가 ‘몸짱’이라는 단어가 너무 옛스럽게 느껴지네. MZ 세대는 이럴 때 뭐라고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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