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3.14(월)
아내와 아이들은 오랜만에(?) 아침 일찍부터 외출을 했다. 아침 9시에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상자 텃밭 신청을 받는다고 해서 그걸 신청하러 갔다. 안 그래도 소윤이가 식물을 키우고 싶다는 얘기도 많이 하고, ‘정말’ 키워보고 싶어 해서 고민이었다. 베란다에 두자니 화분을 기를 만한 환경도 아닌 데다가 서윤이가 가만히 두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미루기만 했는데 마침 그런 걸 신청받는다고 하길래 아내와 아이들은 아침부터 나갔다. 심지어 아침까지 먹고.
아내에게 영상 통화가 왔다.
“여보. 사람이 하나도 없어”
“별로 신청하는 사람이 없나 보네. 잘 됐네”
“놀이터에도 사람이 하나도 없네”
아내와 아이들은 조금 일찍 나간 거라 기다려야 했다. 통화를 끊고 얼마 안 돼서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여보. 반전. 안에서 기다리고 계셨음”
“헐. 대박. 많이?”
“우리 13번”
“오 다행이네”
“딴 데 다녀왔으면 못 했겠다”
20번까지만 신청을 받는 거였으니 방심하고 산책이라도 하고 왔으면 수고가 물거품이 될 뻔했다.
요즘 아내는 밤마다 운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와서 엄청 열심히 한다. 물론 아직 작심삼일의 범주 안에 있지만, 그래도 꽤 열심히 한다. 20분짜리 순환 운동을 유튜브로 보며 따라 한다. 아내는 고작 이걸로 운동이 되겠냐고 말하기도 하지만, 난 짧아도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한 거라며 독려한다. 아침에도 놀이터에서 열심히 운동을 했다고 했다.
줄 없는 줄넘기 200회
팔 벌려 뛰기 60회
스쿼트 20회
기타 유산소 10분
아내가 보내 준 아침의 운동 기록이다. 누굴 독려할 입장이 아니라 독려 받아서 해야 할 입장이지만 열심히 응원하고 있다. 아내나 나나 이제 용모를 위해서가 아니라 건강을 위해서라도 운동을 해야 한다는 걸 자주 느낀다.
아침에 정말 대충 챙겨서 나갔는지 애들이 다 내복 차림이었다. 내복에 점퍼만 입혀서 나갔다고 했다. 그 차림으로 놀이터에서도 놀고 산책도 하고 왔다고 했다. 어린이집 등원하는 아이들이 옆을 지나가기도 했다고 했다. 서로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오후에 아내에게 갑자기 제안을 했다.
“여보. 오늘 나갔다 올래?”
“갑자기?”
“그냥. 아무 일도 없으니까”
자유 부인의 시간을 자주 갖도록 해야겠다는 다짐의 실천 차원이었다. 아내는 바로 확실히 답하지는 않았다. 난 나갔다 오려고 계속 얘기했다.
“여보. 나 진짜 나갔다 와? 오늘 그럼 엄마 만나고 올까?”
좋은 생각이었다. 아내에게 퇴근하자마자 교대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얘기했다. 아내는 그럼 저녁에 먹을 국 하나만 끓이겠다고 했다. 사실 국도 필요 없었다. 아내는 ‘국 하나만’이라고 말했지만, 그거 만들려면 엄연히 수고와 시간이 들어가야 했다. 국도 만들지 말고 나가라고 할까 하다가 말았다. 대신 애들한테 미리 말만 잘 해 달라고 했다. 갑작스럽게 소식을 듣고 오열하지 않도록.
역시나 아내는 된장국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끓이고 있었다. 아내를 재촉했다. 아내는 된장국을 다 끓이고 옷을 갈아입고 나갔다. 아내의 머리가 마치 대역 죄인 같았다. 무슨 쇼생크 탈출도 아니고, 그러 험하게 얻어야 하는 자유라니.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 모두 밥을 무지 많이 먹었다. 시윤이는 한 세 번을 더 떠 줬다. 밥 잘 먹는 자녀들을 보는 것만큼 큰 기쁨은 없다. 곳간에 쌀이 비는 걱정 따위는 잊게 만드는 놀라운 일이다.
자리에 누웠는데 엄청 졸렸다. 지난번처럼 휴대폰을 무수히 떨어뜨렸다. 결국 나도 살짝 잠들었다. 한 20-30분 잔 거 같다. 소윤이까지 잠들어 있었다. 안방에서 나와서 작은방으로 갔다. 나도 운동을 했다. 운동을 끝내고 씻지도 않고 바로 설거지를 했다. 설거지를 거의 다 마쳤을 무렵 방에서 서윤이가 나왔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서 서윤이와 누웠다. 생각보다 오래 누워 있다가 나왔다. 혹시나 또 깰까 봐 아내가 올 때까지 씻지도 못했다.
아내는 장모님, 장인어른과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왔다.
“여보. 엄마랑 아빠가 엄청 좋아하시더라. ‘아니 이게 웬일이야’ 이러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고 했다. 아내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나갈 때는 대역 죄인 같았는데 돌아올 때는 아씨였다. 빠른 시일 안에 ‘자유 부인의 날을 정례화하는 건’을 입법에 부치고 공표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