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3.17(목)
서윤이가 마지막으로 뇌파 검사를 받는 날이었다. 사실 서윤이의 일상에서 조금도 이상한 점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평소에는 아예 잊고 지낸다. 가끔 서윤이가 ‘그날’을 떠올리게 하는 몸동작이나 표정을 지으면 순간적으로 찌릿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뇌파 검사’라는 단어를 들으니 그때가 떠오르면서 괜한 걱정과 불안이 살짝 고개를 들기도 한다.
원래 (내) 엄마에게 소윤이와 시윤이를 맡기고 병원에 가려고 했는데 엄마가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지인에게 맡기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는데 그 이른 시간에 누군가에게 맡기기도 좀 애매했다. 결국 아내가 셋 모두 데리고 병원에 가는 게 유일하게 남은 선택이었다. 아내에게는 ‘뇌파 검사’ 그 자체보다 ‘뇌파 검사를 받기 위해 오가는 길’의 부담이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
알람 소리에 눈을 뜨고 바로 아내를 흔들어 깨웠다. 아내는 서윤이도 깨워서 거실로 데리고 나왔다. 뇌파 검사를 하려면 잠을 자야 한다. 수면 유도제를 먹기는 하지만 만약을 대비해 아이를 최대한 졸린 상태로 만들어서 가는 것이 좋다. 늦게 재우고 일찍 깨우기. 원시적이지만 가장 효과도 좋고 이것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기도 하다. 수면 유도제를 먹을 리 없지만 먹은 것보다 더 졸릴 아내도 걱정이 됐다. 더군다나 애 셋을 데리고 가야 한다니. 출근길에 서윤이의 배웅을 받으니 기분은 좋긴 했다. 예상대로 소윤이와 시윤이도 얼마 안 돼서 일어났다고 했다.
아내가 병원에 도착해서 곤히 잠든 서윤이 사진을 보내줬다. 안쓰럽기 짝이 없었다. 병원 침대에 누운 걸 보니 또 ‘그날’ 생각이 났다. 그때마다 명치 언저리가 찌릿찌릿하다. 이게 무슨 느낌이라고 해야 하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동물인 쥐를 봤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기도 하고. 그 저릿함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아내가 사진을 또 보냈다. 이번에는 검사를 마치고 나온, 여전히 잠들어 있는 서윤이 모습이었다. 검사받으러 가기 전 사진보다 몇 배는 더 안쓰러웠다.
“소윤이랑 시윤이는 괜찮았어?”
“그럼. 오히려 도움을 많이 줬지”
덩달아 소윤이와 시윤이도 고생이었다. 검사받기 전까지 아무것도 먹으면 안 되는 동생 덕분에 아침도 제대로 못 먹고. 아내도 많이 지친 목소리였다. 그 아침부터 일어나서 세 자녀와 함께 병원에 가는 일 자체가 이미 매우 고된 일이다.
아내는 검사를 마치고 장모님께 갔다. 안 그래도 다시 집에 와서 밥 챙기고 시간 보내는 게 오늘은 유난히 힘들 것 같아서 나도 얘기를 했었는데 마침 장모님께도 전화가 왔다고 했다. 아내는 고민 끝에 가기로 했다고 했다. 아이들이야 할머니 만나는 건 언제든 좋고 아내도 마찬가지겠지만 다시 올 일을 생각하면 좀 힘들더라도 어떻게든 집에서 혼자 버티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기도 할 거다.
오늘도 애들을 못 만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아내와 아이들이 내가 나가기 전에 돌아왔다. 저녁은 일찌감치 먹었고 부리나케 퇴근하신 장인어른 얼굴만 보고 바로 출발했다고 했다. 덕분에 축구하러 나가기 전에 잠깐이나마 아이들 얼굴을 봤다.
“여보. 밖에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데?”
“아, 그래? 많이 와?”
“음, 많이 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무시할 정도는 아니야”
“아 그렇군”
“여보가 비 올 때도 축구를 갔었나?”
“갔던 적도 있지. 오늘은 꼭 갔다 와야겠어. 그래야만 해”
“아, 난 여보가 축구 안 간다고 하면 카페라도 갔다 오라고 하려고 했지”
“아니야. 오늘은 축구하러 가야겠어”
어제 늦은 시간까지 진을 뺐더니 스트레스 해소가 간절했다. 이렇게 말하니까 뭐 계속 안 가다가 오랜만에 가는 것 같아서 좀 민망하지만. 아내, 아이들과는 스치듯 인사를 나누고 다시 헤어졌다.
축구하고 와서야 아내와 제대로 이야기를 좀 나눴다. 아내는 무척 피곤하다고 했다. 평소와 다르게 매우 이른 시간부터 일어나서 움직인 탓도 있었지만, 아내도 계속 마음의 부담이 있었다고 했다. ‘뇌파 검사’가 주는 무게감과 더불어서 예상치 못하게 세 녀석을 모두 데리고 움직여야 한다는 부담감까지. 요즘 같은 시국에는 병원에서도 ‘다자녀’를 반기지 않는다. 아내는 여러 번 ‘당황스러워하는’ 시선을 느꼈다고 했다. 어떤 간호사 선생님의 말이 정답이었다.
“아, 네. 뭐 오죽하면 이렇게 다 데리고 오셨겠어요”
그런 묘한 긴장이 풀렸는지, 아내는 무척 피곤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