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에서 치킨으로, 결국 방으로

22.03.18(금)

by 어깨아빠

며칠 전에 아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사실은 소윤이 옷을 많이 샀던)에서 새로운 옷이 출시된다고 했다. 상시 판매하는 게 아니라 미리 예약받은 수량만 파는 거라 금방 품절이 된다. 다 지났지만 결혼기념일 선물로 사 줄 테니 주문하라고 돈까지 보냈는데 아내는 결국 때를 놓치고 말았다. 아이 셋과 함께 지내다 보면 시간 맞춰서 뭘 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오늘 2차로 예약을 받는다고 했다. 아내가 오늘은 안 놓치고 주문을 했다. 공지된 옷의 치수와 몸의 치수가 너무 차이가 안 난다면서 걱정했다. 이러다 못 입는 거 아니냐고. 아내를 격려했다. 운동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몸이 줄어들 거라고.


시윤이는 드디어 마스크를 벗었다. 생겼던 수포에 모두 딱지가 앉았다. 무 자르듯 구분이 가능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딱지가 앉으면 전파력이 소멸된 것으로 본다고 했다. 드디어 마스크를 벗고 뽀뽀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됐다. 아내와 나는 ‘시도 때도 없이 간지럽다면서 짜증을 낼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시윤이도 이렇게 컸나 싶을 정도로 의젓하게 잘 넘겼다. 긁으면 안 된다고 하니까 긁지도 않고. 가려워도 꾹 참고. 기특하다.


아내는 어제보다 더 피곤해 보였다. 퇴근했을 때 아내와 아이들 모두 잠옷 차림 그대로였다. 어디를 나갔다 와서 피곤한 게 아니라 너무 피곤해서 어디 나갈 생각을 못 했던 것 같았다. 저녁 음식이었던 김치볶음밥에서도 아내의 피로도가 느껴졌다. 대체로 ‘볶음밥’류의 음식은 식단 고민과 조리 과정의 간소화가 간절할 때 선택하게 된다.


저녁을 먹고 교회에 가야 했다.


“소윤아, 시윤아. 아빠 갈게. 엄마 말 잘 듣고 잘 자. 내일 보자”


교회에 다녀왔을 때도 아내는 여전히 피곤에 흠뻑 젖어 있었다. 서윤이 뇌파 검사의 여파기도 했고 월요일 빼고는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연속으로 남편 없는 저녁 시간을 보낸 후유증이기도 했다. 거기에 어제 너무 일찍 일어난 것도 있었고.


피곤에 절어서 아무것도 못 하고 그저 앉아서 쉬던 아내가 얘기했다.


“아, 갑자기 떡볶이 먹고 싶다”


한 3초 여운을 주고 대답했다.


“콜?”


급히 배달 앱을 켜서 찾아봤지만 시간이 너무 늦어서 시킬 만한 곳이 없었다. 마침 배도 고팠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적당한 곳을 찾지 못했다. 화르르 타올랐던 떡볶이를 향한 열망이 사그라들려고 하는데 아내가 다시 얘기했다.


“여보. 00네는 치킨 먹는대”

“왜?”

“어? 00오빠가 시켜서”

“하아. 대박. 우리도 먹을까?”


불씨는 치킨으로 옮겨붙었다. 떡볶이에 비하면 치킨은 시킬 곳이 넘쳐났다. 오히려 어디서 시켜야 할지 고민이었다. 그렇게 고민을 하는데 문득 이성의 회로가 작동했다.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시키면 30분은 걸릴 텐데, 그 시간에 앉아서 먹는 모습을 상상하니 그렇게 유쾌하지가 않았다. 무엇보다 아내는 당장이라도 눕기만 하면 잠들 것 같았다. 결정적으로 마지막에 이 생각이 났고, 마음을 접었다.


‘왠지 치킨 기다리는 동안 서윤이 깰 거 같은데’


아내의 표현처럼 ‘만족 지연’을 하기로 했다. 불씨를 완전히 밟아서 껐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에 서윤이가 깨서 나왔다. 효녀다. 피곤한 엄마를 조금이라도 일찍 자게 하려는 막내의 마음인가. 사실 그때도 엄청 이른 시간은 아니었지만 괜히 버텨 보려는 엄마를, 막내가 기어코 끌고 들어갔다.


“먼저 들어가. 난 더 있다 잘게”


왜인지 그냥 자기에는 아쉬운 마음에 난 거실에 남았다. 당연히 유의미한 무언가를 하지는 않았다. 주말의 첫 밤을 조금 더 생생히 느끼고 싶었을 뿐이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