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2.30(주일)
아내와는 아직 데면데면한 단계였다. 어제만큼 감정이 달아오른 상태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살가운 대화를 주고받지도 않았다. (육아) 비즈니스를 위한 필수적인 대화만 오고 갔다.
어젯밤에 못 먹은 대신, 오늘 아침으로 미룬 샌드위치를 대령해야 했다. 집에 식빵이 없어서 아침부터 나가 식빵을 사 왔다. 편의점 식빵은 왠지 싫어서, 큰 길가에 있는 빵집까지 가서 사 왔다. 소윤이의 요구는 상세했다.
"아빠. 햄이랑 치즈만 넣어주세여"
아마 홍루이젠 느낌의 샌드위치를 요구하는 듯했다. 계란은 빼고 햄이랑 치즈만 넣어서 만들었다. 달달한 맛을 위해 잼도 발랐다. 소윤이는 물론이고 시윤이도 야무지게 잘 먹는 걸 보니, 아침 추위를 뚫고 5분이나 더 멀리 다녀온 보람이 느껴졌다.
활동 시작 자체도 늦고, 샌드위치에 은근히 시간이 소요돼서 역시나 매우 촉박한 주일 아침이 되었다. 또 4부(평소에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3부) 예배를 드리자고 할까 고민하다가 일단 준비해보자는 심정으로 부지런을 떨고 있는데, 아내가 얘기했다.
"나는 오늘 그냥 집에 있을 게. 힘든 건 아니고 혹시나 전염될까 봐"
더 열심을 냈다. 아내가 아이들과 떨어져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건 물론이고, 나도 (애들과 함께) 아내랑 오래 붙어 있어 봐야 그다지 유익할 것 같지 않았다.
아내는 준비할 필요가 없으니 아예 한 명을 맡아서 준비시켰다. 덕분에 평소보다 더 빨리 출발할 수 있었다. 혹시나 시윤이가 잘까 싶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자기에는 좀 이른 시간이긴 했다. 소윤이는 내 예상대로, 엄마 보고 싶다는 핑계를 대며 새싹 꿈나무 예배드리는 걸 거부하려 했다.
"어. 소윤아. 아무리 울고 떼써도 안 된다는 건 소윤이도 잘 알지?"
오늘은 시윤이까지 안고 있었기 때문에 더 지체하기 힘들었다. 신속하게 가장 가까이 있는 선생님에게 소윤이를 넘겨 드렸다. 2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여자 선생님이었는데, 소윤이를 넘기고 나니 좀 미안했다. 이제 내가 안기에도 버거운 16kg의 거구가 되었는데, 여자 선생님에게는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죄송해서 괜히 한마디 덧붙였다.
"소윤아. 선생님 힘들어"
시윤이는 예배 태도가 좋았다. 가만히 앉아 있거나, 돌아다니더라도 굉장히 정숙하게, 내 주변만 살짝살짝 맴돌았다. 내가 문제였다. 왜 이렇게 졸린지 장의자에 앉은 시윤이가 혹시나 넘어질까 불안한 마음이 있으면서도 꾸벅꾸벅 졸았다. 정신없이 졸다가, 예배 끝자락 즈음 시윤이가 갑자기 징징대는 통에 잠이 확 깼다. 시윤이는 졸렸는지 나한테 안아달라고 하더니 안기자마자 거의 잠들었다. 그대로 재울까 하다가 예배가 거의 끝날 무렵이라, 차라리 밥은 먹이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계속 말을 걸었다. 뭔가 적극적으로 깨우기는 미안하니까, '깨면 깨고, 말면 말아라'는 심정으로.
가까스로 잠을 떨쳐낸 시윤이와 함께 소윤이를 데리러 2층으로 올라갔다. 소윤이는 밝은 표정으로 나왔다.
"소윤아. 오늘도 목자님 방에만 있었어?"
"아니에요. 오늘 잘했어요"
선생님이 대신 대답하셨다. 진실은 알 수 없었지만, 소윤이 기분은 좋아 보였다. 애 둘을 데리고 밥 먹으러 식당에 갔다. 아, 소윤이를 데리고 가기 전 자리는 미리 맡아 놨다. 뭔가 얌생이 같아 보이긴 했지만, 혼자 둘을 먹여야 하니까 이 정도는 괜찮다며 스스로 용서했다. 사람이 너무 많았다. 잠시 자리에 앉아 사람이 좀 빠지기를 기다렸다가 소윤이는 자리에 앉혀 놓고, 시윤이를 데리고 줄을 섰다. 시윤이를 안고 있어서 손을 하나밖에 쓸 수 없었다. 두 그릇에 나뉘어 담긴 밥을 한 그릇으로 합치고, 두 개의 그릇을 하나로 포갰다. 국도 한 그릇에 1인분보다 더 많이 받았다.
자리에 돌아가 보니 (담임목사님) 사모님이 소윤이와 얘기를 나누고 계셨다. 내가 상황 설명을 하지 않아도 정확히 알고 계셨다. 소윤이로부터, 엄마는 A형 독감이고 이제 거의 나아서 기침만 조금 하는 상태지만 혹시 몰라서 오늘은 안 왔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셨다.
다행히 시윤이가 제법 협조적이라 그리 고난의 시간은 아니었다. 밥 먹으면서 소윤이에게 얘기했다.
"소윤아. 시윤이가 왠지 잘 것 같아"
"왜여?"
"아. 예배드릴 때 안 잤거든. 그래서 말인데 시윤이가 혹시 잠들면 우리 카페 갈까?"
"키즈 카페여?"
"아니. 그냥 카페"
"그러자여. 편의점에 가서 뭐 맛있는 것도 사고"
"오늘은 편의점은 못 가지"
"왜여?"
"시윤이가 자면 못 가지"
"시윤이 유모차에 태우면 되지여"
"그러다 깨면 어떻게 해"
"그럼 그냥 집에 가면 되지여"
"그럴까? 유모차에 태워볼까?"
"그래여"
"그런데 소윤이는 카페 가면 시끄럽게 떠들지도 못하고 가만히 있어야 되는데 뭐가 재밌어?"
"그냥 맛있는 거 먹으면서 아빠랑 얘기도 하고 그러면 좋지여"
나와 소윤이의 바람대로 시윤이는 카시트에서 잠들었다. 워낙 농축된 잠이라 웬만해서는 깨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대로였다. 소윤이는 멘토스 두 개를 골라서 그중 여섯 알만 먹기로 했다. 소윤이는 자기 말처럼, 별로 하는 게 없어도 정말 재밌게, 기분 좋게 있었다. 나는 딱히 하는 거 없이, 소윤이 왔다 갔다 하는 거 보고, 가끔씩 대화도 나누고 그렇게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친구들 단체 카톡방에 카톡이 왔다. 친구 한 명이 얼마 전 얘기를 낳았는데, 다른 친구 하나가 자기는 오늘 가 볼 거라며 같이 갈 사람 있냐고 물었다. 집에 돌아가 봐야 애들이랑 씨름해야 하고, 또 뭔가 개운하게 풀리지 않은 아내랑 마주치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조리원이 신림동이라 막힐 줄 알았는데, 검색해보니 의외로 30분밖에 안 걸렸다. 또 (내) 엄마, 아빠 집 근처라 내심 저녁까지 해결하고 오면 어떨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아내에게도 소식을 전했다. 소윤이도 좋아했다. 소윤이는 귀가만 아니면 어디든 좋은가 보다. 막 출발하려고 할 때쯤 시윤이가 깼다. 다행히 이번에는 시윤이가 억울해하지 않고 기분이 좋았다. 혹시 소윤이가 잠들까 봐, 어린이 찬양을 틀어주고 계속 대화를 유도하고 노래를 함께 불렀다. 시윤이는 옆에 지나가는 차와 버스를 보며 계속 "빠. 빠(버스)", "부우우우" 쫑알거렸다.
아기 낳은 친구네 부부, 다른 친구네 부부(13개월 아들 한 명 있음)가 조리원 바로 옆(같은 건물) 카페에서 먼저 만나고 있었다. 시윤이는 유모차에 앉히고 소윤이는 손을 잡고 입장했다. 조금은 가엾게, 조금은 경이롭게 나를 맞아줬다. 사실 나도 이렇게 둘을 데리고 오랜 시간 함께 있는 건 거의 처음이다. 찬사를 받기에는 아직 커리어를 더 쌓아야 한다. 다만 왠지 다른 세계에 있는 듯한 느낌은 있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아무리 보고 듣고, 공부해도 진짜 내 애가 생긴 것 하고는 천지 차이인 것처럼. 내가 애 셋을 가진 이의 삶을 그저 관념적으로 이해하고 대단하다며 감탄하는 것처럼. 막 부모가 된 친구가, 이제 돌을 갓 지난 아들 한 명을 가진 친구가, 오늘의 내 삶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 거다.
뭐랄까. 나의 경우에, 못 먹을 건 아니지만, 굳이 찾아서 먹고 싶지는 않은 치즈처럼. 죽을 만큼 힘들어서 못할 짓은 아닌데 애써 자처하기는 싫은 느낌이랄까. 고작 하루였는데도. 아내를 비롯해, 이런 삶이 일상인 모든 이는 박수받아 마땅하다.
조리원에서도 둘 다 얌전히 잘 있었다. 소윤이는 약간의 수줍음 덕분에 내 옆에 한참 붙어 서 있었고, 시윤이는 유모차에 계속 앉아 있었다. 다들 시윤이보고 얌전하다며 난리길래 억울한 마음으로 진실을 밝혔다.
"아니야. 그냥 타이밍이 맞은 거야"
떡은 남의 떡이 커 보이고, 애는 남의 애가 얌전해 보이는 법이다. 세상에 얌전한 애가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그리 많지도 않을 거다. 얌전해 보이는 애만 존재한다.
(내) 엄마한테 슬쩍 전화를 해 봤는데 받지 않았다. 그냥 집으로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자리를 정리하며 소윤이에게 얘기했다.
"소윤아. 가자"
"아빠. 이제 우리 어디 가여?"
"어디 가긴. 집에 가야지"
"집에 가기 싫어여어어어어어어(울음)"
"왜 가기 싫어. 엄마 보러 가야지"
"아니야. 싫어어어어어어. 너무 쪼금 있었어어어어어어"
"소윤아. 뭐가 조금이야. 아침에 10시부터 나와서 지금 4시인데"
"아니. 여기 너무 조금 있었다구우우우우우우"
"알았어. 소윤아. 그럼 신림동 할머니한테 전화해 볼까?"
이번에는 아빠한테 했다. 요즘 쉬는 날마다 너무 자주 간 것 같아서 약간 망설여지긴 했는데 일단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아빠와 통화가 됐고, 엄마와 아빠는 교회 남선교회 월례회 모임 및 식사 중이었다. 아빠는 흔쾌히 오라고 했다. 애들이랑 내가 먼저 집에 들어갔다. 잠시 후 엄마랑 아빠도 왔다. 자유를 얻고 광명을 찾았다. 후아. 몇 시간만의 해방인지. 홀가분하구나. 소윤이랑 시윤이도 한 번의 짜증도 없이, 내내 즐겁게 있었다. 아내는 하루 종일 고요한 집에 있는 게 어색하다며, 저녁에는 나가서 밥도 먹고, 카페에도 간다고 했다.
7시가 넘어서 출발했다. 내심 가면서 잠들길 바랐다. 우와. 강철체력 강소윤. 그것도 계속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하며 갔다. 시윤이는 잠들어서 도착할 때쯤 아내를 호출했다. 시윤이는 잠깐 깼지만 아내가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토닥여주니 다시 눈을 감았다. 소윤이는 집에 도착해서 오줌만 싸고 바로 눕혔다.
오늘은 자기 옆에 누가 눕냐고 물어보길래, 엄마도 아빠도 침대에서 잔다고 했더니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었다. 시윤이가 자니까 조용히 하라고 했더니, 소리도 안 내고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훌쩍거렸다.
"소윤아. 오늘은 아빠가 소윤이 옆에서 잘 게"
"네에"
애들을 재우고 나와서 아내와 공식적인 화해를 했다. 개운하게. 다행이다. 평화와 화합의 2018년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어서.
2일간의 독박 육아체험 총평.
[못할 짓도 아니지만, 자처할 짓은 더더욱 아니다. 어딘가로 계속 이동하면 그나마 살 만하다. 조력자가 있다면야 말할 것도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