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기에는 고단한 하루

22.03.25(금)

by 어깨아빠

알람 소리에 깨서 나가려고 했는데 아내가 붙잡았다.


“여보. 10분만 더 자면 안 돼요?”

“어? 그래”


아내가 갑자기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는 일도 거의 없고. 10분만 누워 있으려고 했는데 그냥 한 시간을 더 잤다. 그 한 시간을 편안하게 잘 수 없다는 걸 알았지만 그냥 더 누워 있었다. 원래 없어야 할 아빠가 누워 있으면 애들이 더 놀란다.


“엄마. 엄마. 아빠가 아직 안 나가셨어여”


평소보다 늦게 집에서 나가면 얻는 가장 큰 이득은 아이들 얼굴을 보고 출근하는 거다(물론 아내의 얼굴을 보고 가는 건 감히 값을 매기기 어려운 이득이고). 차례대로 한 명씩 뽀뽀를 하고 집에서 나왔다.


처치홈스쿨 모임이 있는 날이었기 때문에 바쁘고 피곤한 건 당연한 일이다. 매일 이렇게만 쓰니까 힘든 일을 억지로 했다고 오해할까 봐(나중에 자녀들이) 기록하자면, 힘든 것 이상의 기쁨과 보람이 있다. 아내와 나는 ‘우리는 처치홈스쿨을 해서 다행’이라는 간증 아닌 간증을 자주 나누곤 한다. 입에 쓴 약이 몸에 좋고 몸이 곤한 육아의 열매가 달기 마련이다. 아무튼 아내는 아침 일찍부터 처치홈스쿨을 하기 위한 하루를 시작했다.


아내는 처치홈스쿨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바로 와서 부지런히 반찬을 만들었다. 코로나 때문에 격리 중인 지인에게 반찬을 만들어서 갖다주고 싶다고 했다. 저녁에는 다 함께 교회에 가기로 했기 때문에 아내에게 주어진 시간은 2시간 남짓이었다. 아내는 이것저것 반찬을 만들었는데 뭘 만들었는지 자세히 듣지는 못했다. 다만 여러 개의 반찬통이 담긴 가방이 꽤 무거웠다. 아내도 나중에 얘기하기를, 시간에 쫓기면서 만드느라 정말 힘들었다고 했다.


원래 교회 근처 식당에서 만나서 저녁을 먹으려고 했는데 아내가 목표한 시간보다 조금 늦어져서 나도 일단 집으로 왔다. 아내와 아이들도 모든 준비를 마치고 막 나오려고 하던 참이었다. 아내에게서 어떤 ‘숨가쁨’이 느껴졌다. 시윤이는 막 울음을 그친 표정이었다. 왜 그랬는지는 듣지 못했다. 내가 느끼는 분위기는 괜찮았는데 실제로는 ‘그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감이 안 잡혔다. 어쨌든 내가 함께 한 뒤로는 계속 괜찮았다.


일단 지인의 집에 가서 반찬을 전해줬다. 격리자의 집이니 아내만 내려서 문 앞에 놓고 왔다. 어제 자기 전에 아내와 오늘의 계획을 구상할 때만 해도 저녁으로 샤브샤브를 먹을 생각이었다. 아내가 며칠 전부터 계속 먹고 싶다고 했다. 어제 계획한 시간보다 한 시간이 늦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무리였다. 다른 곳을 열심히 찾아서 한 군데를 정했다.


찜닭 가게였다. 여러 가지 메뉴가 있길래 맵지 않은 것도 있는지 물어봤다. 고추씨를 빼면 된다고 하길래 ‘아예’ 안 매운 게 맞는지 다시 물어봤다. 아예 안 맵게도 가능하다고 했다. 뼈와 순살 중에 골라야 했는데 순살로 정했다. 나나 아내는 순살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아, 아내는 잘 모르겠다. 난 순살은 닭으로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순살을 먹는 일은 거의 없다. 오늘은 아이들과 함께 먹었고 또 시간의 여유가 그렇게 많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아내와 나의 피로 수치가 매우 높았다. 살을 발라주는 것조차 귀찮게 느껴졌다. 순살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여보. 순살 편하다. 앞으로도 애들이랑 먹을 때는 순살 먹어야겠다”


뭣도 아닌 뼈닭 사랑을 포기하면, 이토록 편하다는 걸 깨달았다.


시윤이는 예배가 시작되자마자 졸기 시작했다. 의자에 누워서 자라고 해도 자기는 안 잘 거라면서 꼿꼿이 허리를 세우고 앉긴 했는데 오래 가지는 못했다. 졸았던 건 잠깐이었고 금방 곯아떨어졌다. 서윤이도 처음에 활발하게 남은 연료를 소진하더니 곧 유모차에 누워서 잠들었다.


오늘도 역시나 소윤이만 살아남았다. 아내도 갔다.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소윤이와 나만 정신이 멀쩡했다. 난 원래 야행성에 가까워서 밤에는 잘 졸지 않는다. 아내는 야행성이고 주행성이고를 떠나서, 그녀의 오늘 하루가 너무 고단했다. 당장 쓰러져서 잠을 자도 모자랄 판에 거기 나와서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어떻게든 정신을 차려 보려고 자꾸 뭘 쓰는 아내의 손과 펜이 안쓰러웠다.


아내는 예배를 마치고 집에 와서도 피곤을 떨쳐 내지 못했다. 서윤이는 계속 그대로 잤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씻겨서 눕혔다. 서윤이가 이미 잠들었으니 아내는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인사를 건네고 문을 닫았다. 오랜만에 애들을 재우지 않았지만 그때가 이미 자정이었다. 아내의 눈은 벌겋게 충혈된 것처럼 피곤이 가득 아니 피곤에 절어 있었다.


아내는 잠깐 앉아서 휴대폰을 보다가 먼저 들어갔다. 아내가 들어가면서 얘기했다.


“여보. 내일 아침에는 좀 더 자. 애들 아침은 내가 먹일게”


저번에도 이렇게 말해 놓고 죽은 듯 미동도 없이 잤다. 그걸 생각하면서 소리 없이 미소를 지었더니 아내도 내 생각을 간파한 듯 같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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