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3.27(주일)
냉동실에 얼려 놓은 밥이 충분할 때, 아침에는 그것만큼 든든한 게 없다. 특히 전기밥솥이 없어서 예약 취사가 불가능한 우리 집은 더더욱 그렇다. 냉동실에 있는 밥그릇 두 개를 꺼내서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계란 세 개를 부쳤다. 주말 아침, 최고의 음식인 Rice with fried egg (+soy sauce) 로 아이들의 주린 배를 달랬다.
아침을 먹기 전에, (내가) 일어나자마자 소윤이를 불렀다. 어제 있었던 ‘시윤이 따돌리고 뛰쳐나가려고 했던 일’에 관해 이야기했다. 아직 여덟 살인 소윤이에게 너무 쉽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은, 다소 벅찬 듯 보이지만 노력하면 실천 가능한 생활 규칙을 적절하게 부여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소윤이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했을지도 모르지만, 소윤이가 충분히 건강하게 소화하고 잊을 만한 정도였다고 생각했다. 상황을 핑계 삼다 보면 어떻게 하나님 편에 서겠냐고 가르쳤다. 아, 이 또한 내가 나에게 하는 자아비판이었다. 누가 누구를 가르치나 싶은 생각이 매일 들지만, 그래도 부모니까 가르쳐야 한다. 자녀가 셋이니 그만큼 반성할 기회도 많아진다.
그다음에는 시윤이도 호출했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돈’에 관해 얘기했다.
‘누리고 있는 것을 감사해야 한다, 너희는 지금도 충분히 누리고 있다, 부러운 마음이 들 수는 있지만 자꾸 그걸 입술로 표현하면 진짜 불행해진다, 의지를 발휘해서 불평을 없애고 감사의 습관을 가져야 한다’
이건 더더욱 강렬한 자아비판이었다. 얘들아, 아빠부터 잘 할게. 아빠도 어려운 걸 너희한테 가르쳐야 한다니. 안 가르칠 수도 없고.
서윤이는 예배 시간 내내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크게 소란을 피우거나 시끄럽게 하지는 않았지만 뭔가 계속 신경을 쓰이게는 했다. 지난주 같았다. 중간에 유모차에 앉기는 했지만 그건 순전히 손을 빨기 위해서였다. 서윤이도 이제 완전히 숙지했다. 유모차에 앉으면 마스크를 벗고 손을 빨 수 있고, 유모차에서 내려오면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걸.
식당에 가서 점심 먹을 때까지도 서윤이는 자지 않았다. 덕분에 점심 먹는 태도가 영 불량했다. 아주 조금씩은 서윤이에게도 교육과 훈육을 시행하고 있지만, 그야말로 맛보기 수준일 뿐이다. 오늘도 ‘졸린’ 서윤이의 상태를 충분히 감안해 정상참작을 해 줬다. 서윤이는 다시 차에 타자마자 잠들었다. 집에 와서 방에 눕혀도 계속 잤고.
그 시간에는 나도 아내도 너무 졸리다. 그게 식곤증인 건지 아니면 그냥 그 시간이 되면 졸린 건지는 모르겠다. 평소에 사무실에서도 그 시간이 제일 고비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서윤이의 방해 없이 엄마, 아빠와 놀 수 있는 절호의 시간이고. 오늘은 시윤이가 ‘메모리 게임’을 하자고 했다. 나름 두뇌를 가동해서 뒤집은 카드를 기억해야 하는 게임인데, 전혀 그러지 못했다. 졸린 걸 참고 게임에 임하기 위해 이미 많은 애를 썼다. 피곤한 티를 내면 아이들이 서운해하기 때문에 꾹 참아야 한다. 그래도 티는 나겠지만, ‘꾹 참고 어떻게든 노력하는 모습’과 ‘피곤한데 억지로 하는 것’과는 하늘 아니 대기권 밖 우주와 지하 10층 정도의 차이로 느껴질 거다.
아내는 갑자기 비염이 심해져서 정신을 못 차렸다. 정말 말 그대로 정신을 못 차리고 눈도 제대로 못 떴다. 급히 약을 먹기는 했지만 바로 약효가 나타나지는 않았다.
“여보. 나 30분만 자고 올게”
“그래, 알았어”
아내는 서윤이를 데리고 방에 들어갔다. 마치 지난주의 데자뷔 같았다. 서윤이는 아내를 재우고 다시 나왔다. 아내는 나와 소윤이, 시윤이가 축구하러 나갈 때까지 잤다. 한 시간이 조금 안 되게.
서윤이는 오늘도 자기만 남기고 떠나는 아빠와 언니, 오빠를 보며 입을 삐죽 내밀었다.
“나두우 가고 지픈데에엥”
“서윤아. 아빠가 올 때 서윤이 선물 사 올까?”
“네에? 뭐야구여어?”
“아, 아빠가 올 때 서윤이 선물 사 오냐고”
“네에. 떤무 사 두데여어”
“뭐 사 줄까?”
“빠앙”
축구장으로 가면서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부탁했다.
“소윤아, 시윤아. 혹시 이따가 아빠가 까먹으면 서윤이 빵 사야 된다고 꼭 얘기해”
“네. 꼭 얘기할게여. 안 그러면 서윤이 너무 서운해 할 거에여”
“그러니까”
소윤이, 시윤이와 함께 축구장에 가기에는 아주 좋은 날씨였다. 아내 혼자 있을 때는 밖에 나가도 그저 산책 정도니까 이럴 때라도 숨이 찰 정도로 좀 뛰어야 한다. 해가 지니 약간 쌀쌀하기도 했지만 그래 봐야 영상의 온도였다. 혹시 몰라서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춥지는 않은지 계속 물어봤는데 오히려 덥다고 했다.
빵집에 들러서 소보로빵 하나를 샀다. 저번에도 같은 빵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서윤이가 엄청 반가워했다. 할머니와 영상 통화를 하다가 문 여는 소리가 들리니까
“어찌어빠 와따아아”
하면서 문으로 막 뛰어가고 그랬다고 했다. 서윤이는 언니가 건네는 빵을 받아 들고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좋아했다. 밥 먹고 먹자면서 가지고 가려는 엄마에게
“제가아 까지고 있으께여어어”
라고 말하고는 품에 안고 놓지를 않았다. 진짜 맛있어서 좋아하나 보다. 밥 먹고 빵을 반으로 잘라서 절반을 줬는데 다 먹었다.
아내는 지난주처럼 ‘아이 하나’의 기분을 체험하는 정도로 고생스럽지는 않았다고 했다. 비염 증세도 조금 나아졌고. 서윤이와 스킨십을 많이 하면서 놀았고 서윤이도 좋아했다고 했다. 아무리 수월했다고 해도 ‘남은 자’의 수고는 언제나 박수받아야 마땅하다. 박수 대신 커피를 선물했다.
“여보. 커피 사 줄까?”
“아니야. 괜찮아”
“진짜? 왜 사 줄게. 마셔”
“괜찮아”
“마지막으로 물어본다”
“그럴까?”
“그래. 근데 여보 냉장고에 커피 있던데”
“아, 아까 따로 따라 놓은 거 있구나”
“그럼 그거 마시면 되겠네”
“그러게. 그러면 되겠네”
5분 뒤.
“아니다. 그건 그냥 내일 마시고 오늘은 여보한테 사 달라고 해야겠다”
“와, 어떻게든 벗겨 먹으려고”
“여보가 사 준다며”
“농담이야. 나 어차피 돈 쓸 데가 없어. 회사집회사집회사집이야”
커피 정도야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