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엄마한테 얘기 안 했어?

22.03.30(수)

by 어깨아빠

아침에 출근할 때 자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 밤 10시가 되어서야 아내를 다시 만났다. 아이들은 그때까지 보지도 못했고. 퇴근하고 바로 축구하러 가느라 그랬다. 축구를 하고 집에 왔는데 깜깜했다. 애들 재우면서 그대로 잠든 건지, 아니면 재우고 나왔다가 다시 들어간 건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잠시 후 아내가 문을 열고 나왔다.


“여보. 잠든 거야? 아니면 다시 들어간 거야?”

“아, 잠들었어”

“몇 시에 들어갔어?”

“한 8시 30분?”

“아 그래? 푹 잤네?”

“어”


아내는 잠에 취해서 한동안 몽롱했다. 아내와 정상적인 대화를 나누기까지는 몇 분이 더 걸렸다.


아내와 아이들은 낮에 지인의 집에 다녀왔다.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만남(아내나 아이들이나)이 아니기 때문에, 만남 자체가 유발하는 피로도가 크지는 않았을 거다. 보통 그럴 때는 서윤이의 상태가 아내의 상태도 결정한다.


“오늘 어땠어? 안 힘들었어?”

“오늘? 어, 뭐 괜찮았어”

“애들 기분 좋게 잤고?”

“어. 뭐 엄청 신나게 자지는 않았지만”

“여보 멘탈은 괜찮아?”

“어, 괜찮아”


진짜인지 아니면 말만 그렇게 하는 건지 전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어쨌든 당장은 기분이 나쁘거나 그래 보이지는 않았다. 아내는 아침 7-8시부터 밤 10시까지 아이들과 붙어 있어서 분리의 욕구가 치솟았겠지만, 난 아이들이 보고 싶었다. 아내가 낮에 찍어둔 사진과 영상을 보며 아쉬움을 달랬다. 서윤이가 혼자서 그림을 그린 이야기, 열심히 선 긋기를 한 이야기, 시윤이가 손과 머리를 약간 다친 이야기 등을 들었다. 소윤이가 서윤이에게 쓴 편지도 봤고.


아내가 아무 잘못 없는 소윤이와 시윤이를 탓하듯 말했다가 사과한 이야기도 들었다.


아내는 낮에 헌 옷 수거하는 아저씨를 불러서 옷을 좀 처분하려고 했다. 어제 미리 약속을 정했고 아내는 미리 헌 옷의 일부를 집 앞에 꺼내놨다. 남은 헌 옷(사실 이게 양이 가장 많았다고 했다)을 마저 정리해서 집 앞에 내놓으려고 했는데 아저씨가 언제 오셨는지 미리 내놨던 옷이 싹 사라졌다. 그러고 나서 휴대폰을 봤더니 아저씨에게 전화가 두 번이나 와 있었고, 아저씨는 아내가 전화를 받지 않으니까 비대면을 원하는 줄 알고 그냥 밖에 있는 것만 가지고 가신 거다. 그냥 들으면 별일 아니지만 아내 입장에서는 굉장히 신경이 쓰이는 일이었나 보다. 남은 헌 옷 더미를 보내야 ‘개운하게’ 정리한 느낌일 테니. 아내는 푸념 섞인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얘기했다.


“소윤아, 시윤아. 전화 온 거 몰랐어?”

“알았어여”

“아니 근데 왜 엄마한테 얘기를 안 했어? 평소에는 그러는 일이 거의 없으면서. 하필 오늘. 하아”

“아, 그냥 엄마가 바빠 보여서”


아내는 아이들에게 뭐라고 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말투와 표정이 오해를 사기에 충분했고 또 약간, 아주 약간 원망의 마음도 없지는 않았을 거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소윤이와 시윤이는 한참을 시무룩하게 앉아 있었다. 모르는 사람 결혼식에 안 왔다고 구받 받았던 조세호님만큼이나 억울했을지도 모른다. 나중에 정신을 차린 아내가 소윤이와 시윤이를 불러서 진지하고 정중하게 사과를 했다고 했다. 아내는 눈물도 흘렸다고 했다. 이렇게 써 놓으니 여기서 ‘눈물’이 어울리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지도 모르지만, 원래 육아라는 게 감정의 고갈과 과잉 사이를 헤매는 여정이기도 하다. 아무튼 아내의 사과를 접수한 아이들은 바로 괜찮아졌다고 했다.


“여보. 역시 진심 어린 사과가 최고야”


잘못과 실수는 어쩔 수 없다면 사과라도 빠르게 해야 한다. 그게 가장 강력한 회복 처방이다. 매번 진심만 있다면 내성도 생기지 않는 최고의 처방이다.


아내 말처럼 평소에는 전화가 오면 소윤이와 시윤이가 득달같이 달려와서 알려 준다. 거의 항상. 그럼 오늘은 왜 그랬을까. 아내도 나도 인정했다.


“아마 평소에 그렇게 알려 줘도 ‘어 알았어. 엄마 지금 바쁘니까 나중에 받을게. 신경 쓰지 마’라고 얘기한 적이 많았겠지”

“맞아 맞아”


아내와 나는 자녀들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며 웃기도 하지만 우리의 연약하고 부족한 부분을 마주할 때도 비슷하게 크게 웃는다. 낳았으니 부모인 거지 부모라서 낳은 건 아니다. 아내나 나나 얼마나 부족한지, 그리고 앞으로도 얼마나 부족할 예정인지 이루 말하기 어렵다.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 서윤이가 깨서 나왔다. 너무 반갑게 서윤이를 맞이했지만 정작 서윤이는 너무 졸려서 시큰둥했다. 아니 오히려 울려고 하면서 내 품을 벗어났다.


오늘은 서윤이 옆에서 자는 걸 시도해 보고 실패하면 소윤이와 시윤이 사이에서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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