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마지막 날의 일상

22.03.31(목)

by 어깨아빠

얼마 전부터 가족 등산을 향한 아내의 소망이 커졌다. 온 가족이 낮은 산이라도 오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이다. 건강에도 좋고 가족 시간을 보내기에도 좋고. 다만 아내도 나도 등산을 해 본 적이 별로 없다. 각자 모르는 남남으로 살 때는 물론이고 연애할 때도 함께 산에 가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결혼하고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오히려 환상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나도 가 보고 싶기는 하다.


자녀가 셋인데다가 막내는 아직 오래 걷기에는 무리니 아내나 내가 짊어져야 한다. 이런 사람들을 위한 ‘등산 캐리어’라는 게 있다는 걸 안 지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0kg이 넘는 막내를 등에 짊어지는 대신 허리와 어깨에 가해지는 부담을 최대한 줄여주는 필수 준비물이라고 했다. 새 제품은 20만 원이 넘는다는 것에도 깜짝 놀랐다. 아내는 열심히 당근마켓을 뒤지고 있다. 오전에도 사진을 하나 보냈다. 난 아무런 정보도 없고, 모르고, 앞으로도 모를 예정이다.


“여보가 알아서 사. 난 잘 모름. 디자인 이런 거 필요 없음. 여보가 시세와 공급의 흐름을 잘 파악해서 알아서 결정하시도록”

“6만 원 던져봄”


원래 8만 원에 올라온 건데 2만 원 에누리를 시도한 거다. 아내가 던진 6만 원은 시원하게 까였다. 당장 급한 건 아니니까 기다리다 보면 적당한 물건이 나타나겠지.


아내는 낮에 잠시 장모님께 다녀왔다고 했다. 잠깐 형님(아내 오빠)도 만나고. 집에는 안 가고 밖에서 만났다고 했다. 보통 그런 날은 소윤이나 시윤이의 볼멘소리가 나오기 마련인데 웬일인지 오늘은 잠잠했다. 나를 만나기 전에 이미 아내에게 한바탕 쏟아냈는지도 모르겠다.


퇴근하는데 아내가 전화를 해서 저녁을 밖에서 먹자고 했다. 월급날이니 소소하게라도 외식을 하자는 뜻이기도 했고, 아내와 아이들도 집에 오는 중이라 집에 가서 저녁 준비하고 먹기에는 너무 오래 걸린다는 뜻이기도 했다. 요즘 새롭게 우리 가족의 마음을 얻은 우동 가게에서 만났다. 평소에는 내 배를 조금도 채우기 어려울 정도로 잘 먹던 소윤이와 시윤이가 오늘은 영 시원찮았다. 점심에 삼겹살을 먹었는데 너무 배부르게 먹었다고 했다. 소윤이는 이렇게 얘기했다.


“아빠. 제가 어느 정도로 배가 불렀냐면여 할머니랑 만나서 카페에 가서 핫초코를 먹었는데 제가 그걸 남겼다니까여”


그럼 정말 배불렀던 거다. 그때 찼던 배가 저녁까지 꺼지지 않았나 보다. 시윤이도 소윤이와 마찬가지였고 졸리기까지 했다. 지난번과 똑같이 시켰는데 오늘은 나도 배가 부른 걸 보면 확실히 애들이 조금 먹긴 했나 보다.


그러고 보니 그저께 밤에 보고(눈으로는 어제도 봤지만 소통과 교감을 한 건 그저께 밤이 마지막) 처음 보는 거였다. 서윤이는 기다리는 나를 보며 차 창문이 내려가기도 전에 나를 불러댔다.


“아빠아. 아빠가 더 내여 두데여어”

“아빠아. 더 손 답다여어”

“아빠아. 안아 두데여어”


연신 ‘아빠, 아빠’ 하는 게 어찌나 듣기 좋던지. 서윤이만큼이나 소윤이와 시윤이도 반가웠다. 서로 ‘어제는 못 봤다’는 얘기를 하며 반가움을 표현했다. 소윤이는 지난주에 서윤이 뇌파 검사받으러 갔던 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울면서 나왔던 이유를 얘기해 줬다. 사실 난 그날 소윤이가 운 것도 오늘 알았다. 아내는 우는 걸 봤지만 이유는 못 들었다고 했다.


“아, 왜 울었냐면 조금만 더 일찍 일어났으면 아빠 볼 수 있었는데 못 봐서”


시윤이는 그냥 곱다. 낮에 아내에게 영과 육의 고난을 선사하는 주체가 될 때는 차마 그렇게 보이지 않겠지만, 내 눈에는 참 곱고 어리다. 여전히 아기 같고, 어설픈 면도 많고. 나름대로는 수를 쓰는데 그게 다 보이는 것도 시윤이답고.


아내는 세 녀석 모두 샤워를 해 줬다. 확실히 내가 할 때보다 오래 걸린다. 다른 말로 하면 훨씬 아내가 훨씬 더 꼼꼼하게 씻긴다는 말이다. 사실 뭐든 그렇다. 설거지도 청소도 아이들 씻기는 것도 다 아내가 훨씬 세밀하고 오래 걸린다. 난 빠르지만 구멍이 많고. 내가 오래 걸리는 건, 내 몸 씻을 때와 내 몸에 있는 거 내보낼 때뿐이다. 그 시간만큼은 누구도 침범하지 못하는 도피처 같은 시간이니까.


밤에는 온라인 모임이 있었다. 그래도 아내는 함께 들어가서 1시간 가까이 누워 있다가 나왔다. 소윤이는 그때까지 잠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나가는 엄마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아내는 허탈함과 짜증, 속상함 등의 뒤섞인 표정으로 나왔다. 그렇게 오랜 시간 기다려 줬는데 기껏 나올 때는 눈물을 마주해야 하니 안쓰러움보다는 짜증이 앞서게 마련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언제까지나 소윤이가 우리 옆에서 자지 않을 거라는 건 알지만, 당장은 그 상상만으로 감정을 이겨내기 어려울 때도 많다. 그래도 울리면서 재우고 싶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천년만년 기다려 줄 수도 없고.


온라인 모임이 끝나고 나서도 아내는 바빴다. 내일 처치홈스쿨 준비도 해야 하고, 최소한의 집 정리도 해야 하고. 일기를 다 쓰고 나면 나도 좀 같이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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