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4.01(금)
바쁜 날이다. 나야 뭐 매일 같은 일정의 반복이고 아내와 아이들이 바쁜 날이다. 아내는 처치홈스쿨 하기 전날에는 약간의 부담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심한 건 아니지만 ‘아, 내일 힘들겠지’라며 소극적인 각오를 다지는 정도랄까. 물론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건 아니다. 아주 순간적으로 ‘아,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고 느낄 때는 종종 있지만, ‘힘들지만 유익하고 기쁜 일’이라는 걸 아니까 의지를 내는 거다. 코로나 덕분에 2년 동안 모이지 못했던 아쉬움과 그리움을 어느새 싹 잊게 만들 정도로 고단한 일상이기는 하다.
오후에는 한강으로 나들이(?)도 나간다고 했다. 점심을 먹으려고 사무실에서 나왔는데 날씨가 너무 좋았다. 적당한 온도와 선선한 바람, 새파란 하늘과 과하지 않은 구름까지. 나도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는, 실현하지 못할 욕망이 끓어올랐다. 아내와 아이들이라도 좋은 날씨를 마음껏 누려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서윤이는 오늘 처치홈스쿨에서 생일 축하를 받았다. 난 사진과 영상으로 그 모습을 봤다. 가만히 앉아서 언니와 오빠들의 선물을 받는 게 꼭 이걸 왜 받는지 다 아는 듯했다. 원래 생일인 자녀의 엄마가 편지를 읽어 주는데 서윤이에게는 소윤이가 편지를 쓰고 읽어줬다. 영상에는 소윤이 목소리가 하나도 안 들렸지만 난 미리 편지를 봐서 내용은 알고 있었다. 막냇동생을 향한 소윤이의 ‘순도 100% 사랑’이 담긴 편지였다. 당사자인 서윤이는 아직 그 정도까지는 헤아리기 어려운 듯 멀뚱멀뚱 앉아 있기만 했다.
서윤이는 퇴근한 나에게 다른 언니, 오빠가 써 준 편지도 들고 와서 자랑을 했다. 어설픈 발음으로 누가 준 건지 얘기도 해 주고. 막상 생일 축하받기 전에는 아내와 진한 훈육의 시간을 가졌다고 했다. 날이 갈수록 고집의 농도가 진해지는 탓에 점점 이런 시간이 자주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저녁 먹을 때도 터무니없는 걸로 짜증 내고 울길래 아주 약하게 훈육을 했다. 아내는 더 강한 훈육을 원하지만, 난 아직 준비가 안 됐고 앞으로도 더딜 예정이다. 그나마 소윤이와 시윤이 때의 경험과 후회를 교훈이 되어서 다행이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그때도 이렇게 했더라면 좋았을 테니까).
저녁 먹고 나서 금방 다시 나왔다. 교회에 가야 했다. 예배를 드리는데 아내에게 계속 카톡이 왔다. 요즘 우리 아파트에 밤마다 엄청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있다. 우리 집에서는 엄청 크게 들리지는 않는다. 목청 좋은 어떤 사람이 2번 방에서 부르는 ‘Tears’를 노래방 계산대에서 듣는 정도의 크기로 들린다. 꽂히면 엄청 거슬리긴 한다. 우리보다 더 가까이 있는 누군가가 너무 열이 받았는지 거기에 대항하듯 쿵쿵거리는 소리를 냈다고 했다. 아내는 노랫소리와 쿵쿵대는 소리에 2중 피해를 입는 셈이었다. 나보다 많이 온유한 아내는 보통 이런 일을 겪어도 ‘그냥 그런가 보다’하고 넘기는 편인데, 오늘은 그러기가 어려웠나 보다. 아내가 보낸 카톡 메시지에서 짜증과 분노가 느껴졌다. 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는 고요했다.
아내는 돌아온 나를 보자마자 얘기했다.
“여보. 오랜만에 영화라도 한 편 봐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럴까?”
아내는 영화를 고르고 난 일기를 쓰는 사이에 서윤이가 깨서 나왔다. 나와 아내 둘 다 평소와 뭔가 다르다는 걸 느꼈다. 울음의 길이도, 울음의 강도도, 울음의 모양도. 아니나 다를까 서윤이 코에서 그렁그렁하는 소리가 났다. 불편해서 그랬던 건지 아니면 어딘가 안 좋은 건지, 서윤이는 평소와 다르게 꽤 울다 다시 잠들었다. 거실에 누워서.
우리 영화는 어떻게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