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4.02(토)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먼저 거실로 나갔다. 언제쯤 나갔는지는 모르겠지만 꽤 이른 시간에 그렇게 한 것 같았다. 잠에서 깨고 나서도 더 누워 있었다. 다시 잠을 청할까도 싶었는데 아침에 좀 부지런히 움직여야 해서 그냥 조금만 더 누워 있다 나가기로 했다. 잠결에도 서윤이의 칭얼대는 소리가 많이 들렸는데, 잠이 깨고 나서는 거기에 소윤이와 시윤이의 목소리도 더해졌다.
‘으이그. 아침부터 서로 양보 좀 하지’
정도로 생각하고 넘겨줄 만한 수준이었다. 자꾸 반복되는 게 문제였다. 그러다 ‘강소윤, 강시윤’ 이렇게 둘을 부르는 아내의 목소리도 들렸다. 아내도 갈 때까지(?) 갔다는 걸 직감했다. 바로 문을 열고 나갔다. 아내의 훈육에 감정이 혼재되지 않았을 때는 같이 있어도 웬만하면 아내가 훈육할 때는 개입하지 않는 편이다. 아내의 감정이 섞이려고 할 때나 이미 섞였을 때는 내가 나서기도 한다. 평일에도 숱하게 마주하는 상황일 텐데 주말에라도 후회할 상황을 피했으면 좋겠는, 내 나름대로의 배려랄까. 악역의 옷을 입기 직전인 아내를 대신해 나서는 셈이다. 감정을 배제하고 깔끔한 훈육이 되기도 하지만 나도 감정을 빼지 못하고 악역이 되기도 한다.
오늘은 악역까지는 아니었다. 다만 좀 더 차분하고 짧게 했으면 훨씬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금방 제 기분을 찾는 걸 보니 다행히 내가 막 쏟아낸 건 아니었나 보다. 언니와 오빠에게 심각하게 훈육을 할 때 서윤이는 계속 옆에서 애교를 부렸다. 나에게 직접 애교를 부리기도 하고, ‘난 이 상황을 하나도 몰라’라는 듯 태연스럽게 흥얼거리며 왔다 갔다 하기도 했다. 모를 리가 없다. 이제 서윤이는 다 안다. 오히려 일부러 더 그런다. 모두에게 사랑을 많이 받는 대신 모두에게 웃음과 ‘마음 연화제’를 선사하는 것으로 자기 밥값을 한다.
조카(동생 딸)의 돌이었다. 동생네 집에서 양쪽 부모님과 형제들만 모이기로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사촌 동생에게 줄 편지를 썼다. 소윤이는 사촌 동생들을 정말 좋아한다. 시윤이도 마찬가지지만 ‘아기’를 향한 마음 자체가, 소윤이가 워낙 특별하다. 요즘은 할머니보다 사촌 동생을 보는 게 더 반갑다는 말도 종종 한다. 소윤이는 사촌 동생에게 꽃을 주고 싶다면서, 자기 용돈을 들여 꽃도 샀다.
매제의 부모님과 누나 가족과 함께 해야 하는 자리니 매우 어색한 자리긴 했다. 아내 말에 의하면 내 성향을 많이 닮았다는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도 마찬가지인 자리였을 거다. 시윤이보다 한 살 어린 여자아이(매제의 조카)도 있었는데, 당연히 소윤이와 시윤이는 먼저 말을 걸지 못했다. 그 아이도 엄청 적극적인 성향은 아니어서 막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수줍게 와서 말을 걸면, 소윤이와 시윤이가 겨우 그 대답만 해 주는 정도였다. 우리는 종종 이런 걸 ‘사회성’으로 오해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건 ‘사교성’일뿐이고, 누구나 사교성이 좋을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는 걸 배우고 나서는 소윤이와 시윤이의 그런 모습에 ‘사교’를 강요하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아내 말처럼 정말 내가 딱 그렇다. 그래도 애들이 나보다는 낫다. 장난감을 모아둔 방에 들어가서는 조금씩 낯선 기운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있었으면 서로 급격하게 가까워졌을지도 모르는 그때, 나와야 했다.
우리 집으로 오지 않고 (내) 엄마 집으로 갔다. 하룻밤을 자기로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조금씩 흥분 지수가 상승했다. 다른 게 아니라, 평소에 하던 장난인데 좀 진하거나 평소에 하지 않는 장난을 하거나 평소보다 청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오히려 서윤이는 아직 그런 게 없다. 다만 요즘 부쩍 고집이 늘고, 고집이 관철되지 않았을 때 보이는 태도의 질이 나빠졌다. 나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시간을 서윤이와 보내는 아내는 나에게 하루빨리 더 강력한(?) 훈육에 돌입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난 서윤이를 보며 이렇게 호소하곤 한다.
“서윤아. 아빠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 그냥 지금 말 잘 듣자. 아빠 너 혼내고 싶지 않아”
알고 있다. 언젠가는 거쳐야 하고, 이제 미루기 어려운 시기에 도래했다는 걸. 역시나 또 생각한다.
‘아, 소윤이와 시윤이도 이런 마음으로 키웠으면 더 좋았을 텐데’
사촌 동생의 첫돌 덕분에 가려진 서윤이의 생일을 축하하는 의식(?)도 거행했다. 작년까지 매년 양쪽 할머니, 할아버지를 불러 생일 축하를 받던 언니나 오빠에 비하면 매우 간소한 축하였다. 괜찮다. 다른 걸로 사랑을 넘치게 받고 있으니까. 약식이어도 자기 생일 축하해 주니까 좋은지 함께 박수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그러고 나서는 입문한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케이크를 잔뜩 먹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역시나 엄청 늦게 누웠다. 오늘도 할머니와 함께 누웠고. 난 혼자 거실에 앉아 있다가 심심해서 아내와 서윤이가 누운 방에 들어갔다. 아내와 서윤이 모두 안 자고 있었다.
“여보. 재우고 나갈 거야?”
“응, 나갈 거야”
같이 누워서 좀 쉬려고 했는데 갑자기 전화가 왔다. 차를 좀 빼 달라는 전화였다. 내려가서 차를 빼 주고 다시 올라와서는 방에 안 들어가고 TV를 켰다. 오랜만이었다. 깜깜한 집에서 나 혼자 거실에 누워서 TV 보는 내 모습. 이걸 아니까 신혼 때부터 아예 TV를 안 놓은 거다. 없으면 몰라도 있으면 이럴 게 뻔하니까. 아내는 나오지 않았다. 잠들었거나 안 잠들었어도 굳이 안 나오는 것 같았다. 난 혼자 채널을 수시로 돌려 가며 TV를 봤다. 조금도 쓸쓸하거나 심심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보다가 나도 모르게 살짝 잠이 들었다. 많이 자지는 않았고 한 30-40분 정도 잤다.
TV를 끄고 방에 들어가서 누웠다. 서윤이 옆에 누워서 볼 만지면 얼굴을 돌리고, 발 만지면 발을 빼고, 뽀뽀하면 화들짝 자세를 바꾸는 서윤이를 쫓아다니면서 괴롭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