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4.03(주일)
소윤이와 시윤이는 오늘도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서 자기로 했다. 나와 아내, 서윤이만 집으로 돌아오고. 소윤이와 시윤이의 간절한 바람이었다. 이미 진작에 결정된 일이었는데 어제 아침에 소윤이와 시윤이의 ‘투닥거림’이 있었을 때, ‘너희 둘이 엄마, 아빠 있는데도 그러는데 무슨 할머니, 할아버지랑 잔다고 그래. 그냥 올 거야’라고 고의적인 가짜 엄포를 날렸다. 안 그래도 가기 전에 아이들에게 진지하게 얘기를 한 번 하려고 했었다. 엄마, 아빠 없이 할머니, 할아버지와 지낼 때 지켜야 하는 일에 관해서. 일단 가짜 엄포로 기초를 다졌다고 해야 하나. 협박용 카드로 쓰는 건 아니었다.
어제 자기 전에 다시 아이들을 불러서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라고 하기에는 내가 일방적으로 말을 많이 하긴 했네). 못 지킨다고 죄책감에 빠질 필요는 없지만 최대한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아빠와의 약속 몇 가지를 단단히 일러줬다. 모두 지킬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또 지키고 안 지키고를 명확히 나눌 수 있는 약속은 하나뿐이었고 나머지는 스스로의 판단과 기준에 달린 것이었다.
“너네가 이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할 수 있으면 할머니, 할아버지랑 자고 오고 아니면 엄마, 아빠랑 같이 가. 어떻게 할래?”
당연히 둘 다 지킬 수 있다고 했다.
예배는 온라인으로 드렸다. 원래 아내와 나, 서윤이는 일찌감치 나와서 우리 교회 예배를 드릴까 싶기도 했는데, 그러면 소윤이와 시윤이가 제대로 예배를 못 드릴 것 같았다. 마침 (내) 엄마, 아빠도 요즘은 온라인으로 드리고 계신다고 하셔서 다 함께 우리 교회 예배를 드렸다. 셋 모두 새벽같이 일어났다. 서윤이는 너무 졸렸는지 중간에 누워서 손을 빨다가 그대로 잠들었다.
서윤이가 깨면 슬슬 정리해서, 아내와 나와 서윤이는 떠나기로 했다.
“소윤아. 엄마, 아빠 그냥 저녁까지 먹고 갈까?”
“아니여. 안 돼여”
“왜. 그냥 저녁도 먹고 갈게”
“아아, 안 돼여. 얼른 가야 돼여”
소윤이의 반응이었다. 시윤이는 조금 느낌이 달랐다.
“그래여. 저녁까지 먹고 가여. 그럼 저는 좋져”
서윤이는 푹 못 자고 깼는지 울면서 일어났다. 상전을 모시는 듯 극진하고 신속하게 할머니가 대령한 딸기 덕분에 금방 진정이 됐다. 짐을 챙겨서 나왔다. 할아버지 곁에 서서 우리를 배웅하는 소윤이와 시윤이의 모습이 영 어색했다. 서윤이도 언니, 오빠가 차에 안 타는 게 이상했는지
“어찌오빠는여어?”
라고 계속 물어봤다.
서윤이는 아까 낮잠이 부족했던 건지 아니면 피로가 누적이 됐는지 가는 길에 또 잠들었다. 장도 보고 카페에도 들러서 커피를 샀다(난 차에 있었고 아내만 내렸다). 집에 도착했을 때도 깨지 않아서 주차장에 차를 대고 아내와 한참 앉아 있었다. 소윤이 때는 그런 시간을 갈망하며 어떻게든 만들어서 최대한 오래 유지하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서윤이 때는 그런 게 없었다. 해탈자의 삶처럼 있으면 좋고, 없어도 어쩔 수 없고, 없는 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며 보냈다. 막상 무지 오랜만에 그런 아늑한 시간이 생기니 좋긴 좋았다. 서윤이는 정말 오래 잤다. 집에 올라가려고 자는 서윤이를 깨워야 할 정도였다.
서윤이는 일어나자마자 언니와 오빠를 찾았다.
“어찌어빠느으은?”
“언니랑 오빠는 할머니 집에 있지”
“후웅. 어찌어빠 버거지푼데엥”
서윤이에게 언니, 오빠는 어떤 존재일지 궁금하다.
난 바로 축구하러 가려고 나왔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없는 시간이 굉장히 생경했다. 나에게도 아내에게도. 그리고 서윤이에게도. 저녁에는 약속이 있어서 한 시간 정도 일찍 돌아왔다. 축구하고 돌아온 나를 맞이하려고 서윤이가 빠르게 뛰어왔다. 나와 포옹을 마치고는 현관문을 보며 얘기했다.
“어찌어빠는 왜 안 어지이이?”
“언니랑 오빠는 할머니 집에 있다니까. 아빠랑 축구하러 간 거 아니야”
“어찌어빠 버거짚다아”
저녁에는 지인의 집에 가서 함께 식사를 하고 얘기를 나눴는데 그때도 소윤이와 시윤이의 빈자리가 제법 굵직하게 느껴졌다.
만남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그때가 10시 30분쯤이었는데 막 자려고 누웠다고 했다. 사실 그 통화도 서윤이가 언니와 오빠가 보고 싶다고 해서 걸었다. 시윤이가 막 잠들었다가 깨기도 했고 서로 정신이 없어서 금방 끊었다. 서윤이가 제일 아쉬워했다.
저녁이 좀 부족했는지 출출했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아내도 그렇다는 걸 알고는 잠시 마트에 들러서 요깃거리를 좀 샀다. 사실 걱정이 좀 되긴 했다. 과연 아내가 서윤이를 재우러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게 가능할지 의문이었다.
“여보. 서윤이 금방 자겠지?”
“어, 그럴 거 같은데. 근데 여보가 더 먼저 잘 거 같은데?”
아내도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심신의 피로도가 충분히 그럴 만하다는 얘기였다. 아니나 다를까 아내는 다시 나오지 못했다. 할 일을 모두 끝내고 ‘딱 10분만 앉아서 놀다 들어가야겠다’라고 마음먹은,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다시 나왔다. 물론 곧바로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나도 함께.
아내와 서윤이가 매트리스 위에 누웠고 나 혼자 바닥에 누웠다. 평소에는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 사이에 찌그러져 자던 공간인데, 몸을 활짝 뻗어도 걸리는 게 없을 정도로 넓었다. 그렇다고 딱히 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좀 구겨져도 애들 손이나 발 잡고 이리저리 부대끼며 자는 게 더 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